엄마는 나와 동생이 어렸을 적부터 자식들의 배우자 상을 정해두셨다. 특히 나에게는 큰 고모부같이 자상한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신신당부 하셨다. 큰 고모부는 말이 굉장히 많으시고 유머러스하신데, 우리 엄마의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을 맡기도 하셨던 특별한 분이다. 아마도 19살 소녀의 눈에 고모부는 매우 자상하고 인기 많은 선생님으로 각인돼 있었던 듯 싶다. 그런 사람이 배우자 감으로 최고라고 생각하셨던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아빠가 말수가 적어 표현도 없고 무뚝뚝 한 것이 못내 아쉬우셨던 나머지 딸내미는 그런 고충을 몰랐으면 하셨던 거겠지.
덕분에 나는 ´말 많은 사람´은 ´자상한 사람´ 이라는 재미난 관념을 갖게 됐고, 수다쟁이 수집가가 되었다. 수다쟁이 친구들을 수집하며 하늘 아래 같은 수다쟁이는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일한 수다쟁이는 한 명도 없었지만 이들을 비슷한 범주로 묶는 나름의 기준은 있다. 하나는 '우리' 이야기 하길 좋아하는 수다쟁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기' 이야기 하길 좋아하는 수다쟁이이며, 마지막 하나는 '남' 이야기 하길 좋아하는 수다쟁이다. 20대 초반의 나는 이걸 구분할 줄 몰랐기 때문에 각종 수다쟁이들을 몸소 체험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어느덧 서른 하고도 한 살을 더 먹은 나는 '우리'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자상한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게 됐다.
솔박사의 퇴근이 늦어졌던 어느 저녁, 매콤한 닭도리탕에 시원한 사이다를 마시며 이런 이야기가 오갔다. "오빠, 우리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오빠랑 우리 가족이 함께 할 때 어떤 풍경이 펼쳐졌을까?" 잠시 생각에 잠긴 솔박사의 시간을 제치고 내가 먼저 자문자답 했다. "아마도 엄마는 처음엔 분명 오빠를 탐탁지 않아 하셨을 것 같아. 그런데 결국엔 오빠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됐을 거야."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하다. 오빠가 우리 집에 오면 집 전체에 활력이 돈다. 사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오빠와 함께 할 때 나에게 활력이 돈다. 조용하던 집에 쑥덕쑥덕 말 소리가 생기고, 먼저 다가와 말 한 마디 걸어주고 재미있게 대화할 줄 아는 솔박사를 엄마도 분명 즐거워했을 게 뻔하다. 여기에 솔박사는 이런 첨언을 했다.
"그럴 수도 있는데, 어머님이 나 싫어하셨을 거 같아. 아버님이랑 내가 둘 다 술 마시는 걸 좋아하잖아. 어머님 계셨다면 아마 집에서 아버님이랑 같이 술 마시기도 어렵지 않았을까? 그럼 이렇게 까지 금방 친해지기도 힘들었을 거야."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우리 엄마가 수다쟁이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술 마시는 걸 유난히 싫어하고 이해하지 못하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오히려 엄마와 심적으로 더 가까워짐을 느끼곤 한다. 원리 원칙이 중요했고, 자기 주관이 뚜렷했던 엄마는 사실 나와 부딪힐 때가 많았다. 겉모습은 소름 끼칠 만큼 비슷했는데, 생각도, 감정도, 성격도 많은 것이 달라서 서로를 사랑하지만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오히려 사랑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몸은 내 곁에 없지만 마음 만은 항상 나와 함께하는 엄마가 이제는 내 생각에 딴지를 걸지 않으신다. 내 감정과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엄마를 새롭게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사위를 정말 많이 좋아하셨을 거라는 걸 안다. 나는 엄마가 솔박사에게 어떤 말투로 말을 걸지, 어떤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했을지 모두 상상이 되는데, 정작 사위 본인에게는 그걸 보여줄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