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를 든 신부> 오소리 지음
부탁의 말.
동화 내용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의 중반부, 큰 따옴표 아래 초록색 한 문단이 동화책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동화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그 부분을 스킵하고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우리 엄마는 발이 매우 넓은 사람이었다. 활달하고 에너지 넘치는 성격 덕분에 어딜 가든 사람들을 끌어당겼고, 어느 모임에서나 중심인물이 되곤 했다. 엄마의 장점은 그런 자신의 특성을 오로지 스스로의 능력 덕분이라 생각하기보다는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며 감사히 느꼈다는 점이다. 그런 엄마는 내게도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하셨다.
"너는 엄마를 닮아서 인복이 많아. 항상 꼭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사람은 믿는 대로 살아가게 되는 걸까? 엄마와는 달리 수줍음 많고 인맥도 적은 나였지만, 그 말대로 매 순간 필요한 사람은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엄마와 외모가 똑 닮아서 받는 혜택인 걸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도 해보며 나의 인복에 감사하며 살았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사람들과의 인연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사셨던 엄마의 영향으로 어릴 적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이 있었다. 문제는 내 성격이 엄마와는 조금 달랐다는 점이다. 외모는 엄마 판박이였지만 성격은 아빠를 닮았던 나는, mbti로 치면 파워 I성향, 파워 내향인으로서 타인들로부터 받는 자극에 조금 민감하고 쉽게 지치는 성향을 타고났다. 핵인싸 성향이셨던 엄마는 그런 나를 사람들 무리에 밀어 넣어주셨고, 자꾸만 튕겨져 나오고 밀려 나오는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셨다.
나도 그런 내가 미웠다. 그때부터 온갖 서적들을 탐독했다.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맥을 넓힐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교성이 뛰어난 친구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저 친구는 이럴 때 이런 반응을 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구나. 저런 행동을 하는구나. 그런 표정을 짓는구나....
불편한 신발을 신으면 먼 길을 걸을 수 없다.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잠시 잠깐은 책에서 읽은 대로, 유튜브에서 본 대로, 관찰한 친구들의 모습대로 나도 비슷한 사람인 척 흉내 내보기도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자연스럽지 못한 나의 모습에 지치고, 그런 나에게 질려갈 뿐이었다.
당신에겐 기다란 노가 있잖소!
외딴섬에 한 소녀가 심심해하고 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신랑, 신부가 되어 섬을 떠났기 때문이다. 멋진 드레스를 입고 노 하나를 챙겨 신랑을 찾아 떠났지만 그 세상에서 노 하나는 쓸모가 없었다. 노는 꼭 두 개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노를 하나밖에 갖지 못한 나라도 받아주겠다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그런 것을 원한 게 아니었다. 그저 걷고 또 걸었는데, 늪에 빠진 사냥꾼이 구해 달라 도움을 청했다. 열심히 밧줄을 찾던 소녀에게 사냥꾼은 말한다. "당신에겐 기다란 노가 있잖소!" 그렇게 소녀는 노 하나 만으로도 재미있고 즐겁게 사는 방법을 터득해간다. 그리고 진심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향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
우리 모두는 기다란 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노가 두 개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들만 생각하면 노 하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노 하나조차도 쓸모없고 무겁기만 한 짐이 될 수 있다. '내가 가진 게 이것뿐인데, 그런 나라도 괜찮겠어?'하고 나의 가치를 낮추며 나를 받아 줄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나는 이 노를 가지고 요리도 할 수 있고, 운동도 할 수 있거든? 나랑 놀면 재밌을 것 같지 않아?' 하고 내가 먼저 내 장점을 발견하고 함께 놀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아야 한다.
내가 관찰해야 했던 것은 사교성이 좋은 친구들도, 핵인싸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나 동영상도 아니었다. 그저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가진 것들을 어떻게 활용하면 다이아몬드같이 반짝이는 보석이 될 수 있는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노 하나를 들고, 굳이 노 두 개씩 들고 있는 사람들 틈에 섞여 혼자 괴로워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나선다. 피아노도 치고, 요가도 하고, 일기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만의 방법으로 나를 알린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은 공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들과 연결된다. 다른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 온전한 나로서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작은 선들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자기만의 노를 들고 즐겁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이리저리 연결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내향인의 세계도 점점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