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배움은 경계를 넘어선다 (김우인 지음)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나는 사랑으로 한다, 사랑을 위해 한다.
(평화·환경 운동가, 슈마허대학 설립자, 사티시 쿠마르)
각종 재테크 관련 경제 서적들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내 안에 존재하는 지혜와 사랑에 대해 기꺼이 논하고, 나와 너 그리고 지구 어머니와의 연결을 통한 치유를 이야기하는 책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게 새삼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한 자 한 자가 소중했고, 글을 눈과 마음에 꾹꾹 눌러 담느라 책장을 넘기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살아가는 이 시대 청년, 사람들에게 닥친 가장 큰 비극은 길을 잃는 걸 비정상으로 보고, 그런 사람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길을 잃어도 괜찮다고 말해줄 사람, 길을 잃어도 집으로 데려다 줄 마음 따뜻한 사람이 드문 세상이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사회적 긴장감, 고립감, 분리감이 짙은 안개처럼 이 땅을 자욱이 덮고 있다.
「새로운 배움은 경계를 넘어선다」중에서
길 잃는 것을 이상한 일로 여기는 사회. 그렇기 때문에 표준에 맞춰가며 사는 것이 익숙해진 사회. 나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고, 안타깝게도 그런 환경에 완벽히 적응했다. 즉, 길 잃어버리는 걸 극도로 무서워하고,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아 살고 있다는 뜻이다. 절대로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길을 나서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서 이런 삶이 안전하고, 안정적이고, 편안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나의 내면은 이런 삶이 내가 추구해야할 것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안전하고 편안했다면, 그리고 만족스러웠다면 적어도 한들한들 불어오는 살랑바람에 매 순간 휘청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외로움과 내 곁에 상주하는 불안함. 뭐 하나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내 인생이 끝나버릴 것만 같은 밑도 끝도 없는 두려움. 이런 정서가 그야말로 안개처럼 자욱이 깔려 있었기에 아무것도 시작할 용기를 낼 수 없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저는 여러분이 이 문제와 어려움을 기꺼이 환영하길 바랍니다. 곧 그것을 해결할 기회가 찾아올 테니까요.
당신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고, 당신만의 프로젝트를 만들고, 사람들을 돕고, 세상에 봉사하려고 한다면, 어려움은 당연히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문제가 없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기꺼이 문제와 어려움을 환영하세요. 문제나 어려움이 생기면 안 된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나쁘다고 여기지 마세요. 이것은 모두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여러분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는 가슴에서 나옵니다. 용기를 내고 싶다면 당신의 가슴을 가꿔나가야 합니다. 느낌, 직관, 상상력은 여러분의 가슴에서 나옵니다. 용기와 믿음은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줄 것입니다.
「새로운 배움은 경계를 넘어선다」중에서
만약 일이 생각한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그만 인데, 나는 언제나 ‘틀리면 안 돼. 문제가 생겨선 안 돼. 모든 게 순조로워야만 해.’라는 강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절대 길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는 사회 분위기도 그런 생각에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런 나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문제가 없는 게 진짜 문제'라는 작가의 말은 생각보다 큰 위로와 힘이 됐다. 생각해보면 내가 아무리 만반의 대비를 해도 어려움은 불쑥 찾아왔고 매번 생각지 못했던 방법들로 그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살아왔다. 어려움과 문제가 생기고 그걸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게 인생인데, 나는 난관에 직면하는 것 자체를 순조롭지 않고 불미스러운 일이라 착각했다. 어쩌면 '문제는 생겨선 안돼.'라는 불가능한 생각을 하면서 앞 사람만 보며 놓치지 않으려고, 엇나가지 않으려고 아둥바둥거리느라 정작 내 마음 속에 있는 용기의 씨앗은 싹틔우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교육education은 ‘educare’라는 라틴어에서 왔고, ‘밖으로 꺼낸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교육은 정보를 집어넣는 행위가 아니라, 배우는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지 찾는 행위입니다. 작은 씨앗에서 나무가 나오는 것처럼 진짜 지식은 당신의 상상력, 창조력, 의식에서 나옵니다. 교육은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이것을 밖으로 꺼내주는 도구입니다.
「새로운 배움은 경계를 넘어선다」중에서
‘교육’의 진정한 목적이 내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일이라는 개념은 매우 생소했다. 내가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살며 받아온 교육은 대부분 ‘몰랐던 새로운 정보를 집어넣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내 안에 이미 작은 씨앗이 존재하고 그걸 나만의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싹틔울 수 있다는 게 아직은 잘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내 씨앗은 나만이 싹틔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내고 싶다.
얼마 전 읽은 또 다른 책 <브릿마리 여기 있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화분에는 흙만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밑에서 꽃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겨울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것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며 물을 주어야 한다.
내 안에는 씨앗이 분명 존재하지만 이것을 예쁜 꽃으로, 푸른 잎으로,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나게 하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씨앗을 믿을 수 있는 ‘용기’와 꾸준히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주며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지금 이 고통받는 지구를 위해, 지구 속에 사는 우리를 위해, 나를 위해,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길은 ‘온전한 내’가 되는 것이다. 작고 빛나는 선(strand)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작고 빛나는 무수한 선들과 연결되는 것, 그것을 온 마음과 온 몸으로 감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대전환의 작은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
「새로운 배움은 경계를 넘어선다」중에서
긴장감, 고립감, 분리감으로 짙게 뒤덮인 사회에 살아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익숙했던 방식은 외부로 드러난 환경을 바꾸며 방도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내게 필요한 말을 해줄 타인을 찾아다녔다. 그게 책이 됐던 적도 있고, 사람이 됐던 적도 있었고, 인터넷이 됐던 적도 있었다. 때로는 이 상황만 지나가면, ~만 이루어지면 다 해결될 거라 착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대학만 붙길 바랐고, 취업만 되길 바랐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필요한 말을 들어도, 내가 바랐던 어떤 상황이 이루어져도 내 마음속 불안함은 언제나 그대로였고 오히려 또 다른 두려움과 걱정이 새롭게 탄생할 뿐이었다.
지난 30여 년 간 다양한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정작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는 방법은 배워보지 못했다. 80점이라는 숫자를 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20점은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생각하고 마는, ‘부족한 나’를 귀신같이 발견해 내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런 방식은 온전한 나를 알아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더 이상 ‘나는 왜 이 모양인지, 나는 왜 이게 부족한지, 더 잘할 수는 없는 건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기 보다는, 나에게 집중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들으며 ‘작지만 아주 중요하고 빛나는 선’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끝없이 펼쳐지는 두려움에 마음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그는 것 대신, 또 다른 선들과 연결된 것을 느끼고,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지구를 위해 삶의 구석구석을 사랑하며 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