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결심하고 '사월'이라 필명을 지었다. 책방지기 일을 할 때나 독서모임에 참여할 때도 '사월'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종종 왜 사월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이름에 담긴 사연은 총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어릴 적 원어민 선생님께서 April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영어학원에 가면 영어 이름을 하나씩 만들어 오게 한다. 외국에 살아본 적도 없었고, 좋아하는 외국 영화도 없던 터라 어떤 이름이 내게 어울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내 이름이 'ㅈ'으로 시작해서 'J'로 시작하는 이름 중 'Jenny'라는 이름을 하나 골랐고, 이왕이면 예쁜 뜻이 담겼으면 좋겠다 생각하여 '별'이라는 뜻이 담긴 'Stella'라는 이름도 하나 골랐다. 나름 산뜻한 이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원어민 선생님께서는 그 이름들이 내 이미지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April'은 어떠냐고 물으셨다. 사실 그때는(10살 무렵) 'April은 4월이잖아. 그게 무슨 이름이야ㅠㅠ' 하는 생각에 거절했었는데, 몇 년 후 생각해 보니 너무 사랑스럽고 예쁜 이름이었다. 그래서 소중히 간직하다 필명을 정해야 하는 시점에 그 이름을 떠올렸고, 아무래도 영어보다는 한글이 내 이미지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사월'이라 정했다.
두 번째, 엄마가 4월에 돌아가셨다.
이 이야기는 잘하지 않는 편인데 말하고 난 후 잠시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두 번째 이유가 내게는 더 뜻깊다. 엄마는 벚꽃이 만개한 4월 초, 기분 좋은 바람이 불던 봄날에 돌아가셨다. 3일간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온 우리 남매에게 아빠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살다 보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날짜 같은 건 까먹을 수도 있어. 충분히 이해해. 그런데 숫자는 잊더라도, 벚꽃이 활짝 피면 엄마 생각을 꼭 한 번 하자. 그것만큼은 꼭 기억하자."
덕분에 벚꽃이 만개하는 화창한 봄이면 우리 가족은 꼬박꼬박 모여 밥 한 끼 함께 먹고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게 됐다. 엄마를 보러 가는 길에도 항상 벚꽃이 흩날려 쓸쓸한 느낌보다는 기분 좋은 설렘이 함께 한다.
결혼을 하고 나니 우리 엄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아이를 낳을 생각도 하다 보니 내 자녀들은 외할머니에 대해 모르고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이들을 앉혀놓고 "너희 외할머니는 이런 사람이었단다." 하는 설교를 늘어놓고 싶지도 않다. 그저 누군가가 우리 엄마 이야기를 자유롭게 읽고 생각하고 느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써야 하는구나! 써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만들면 되는구나! 그렇게 글쓰기를 결심하고 엄마와의 추억을 담은 글 두 편을 써서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이름에는 힘이 있다. 부를 때마다 내 몸과 뼈와 DNA에 새겨지고 이름에 담긴 뜻대로 살게 될 거라고 믿는다. 문득 지친 마음에 '내가 왜 글을 쓰고 있었더라.'하고 잊어버릴 때마다 이름을 떠올린다. 그렇게 내 이름은 '사월'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