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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ug 01. 2022

궁중떡볶이에 얽힌 오해

엄마가 나를 사랑했다는 증거

 어떤 음식이든 분명 처음 먹어본 날이 있을 테지만 유독 처음 먹어봤던 순간이 잘 기억나는 음식이 있다. 맛있거나 맛없어서, 난생 처음 먹어본 맛이라서, 음식과 함께한 상황이 좋았거나 싫어서, 특별한 사람이 요리해줘서 등등 그 이유는 갖가지다. 


 나는 궁중떡볶이를 처음 먹어보던 날의 풍경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고, 장소는 우리 집 식탁, 온 가족이 함께였으며, 우리 엄마가 요리한 음식이었다. 떡볶이는 ‘빨간 거’ 라는 개념만 있었던 꼬맹이에게 갈색 떡볶이의 존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또 하나, 우리 엄마가 직접 이렇게 멋진 요리를 했다는 것도 이 음식을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 엄마는 평생을 자신의 엄마(즉, 나의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물론 성인이 되고 얼마간은 따로 산 기간도 있었겠지만 결혼을 하고 다시 엄마와 함께 생활했으니 인생 전체로 살펴봤을 때 따로 산 기간은 짧았고 대부분은 같이 살았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엄마가 괜히 얄미워진다. 


 ‘자기는 평생 엄마 밥 먹으며 살아놓고. 나는 엄마 밥도 몇 번 못 먹어봤는데.’


 우리 집 주방의 메인 셰프는 외할머니셨고 외할머니는 성실히 간식과 식사를 준비해 주시면서 나와 내 동생의 성장기를 책임져 주셨다. 외할머니는 철따라 먹어야하는 반찬과 과일을 모두 알고 계셨고, 특히 봄에는 쑥개떡을, 가을에는 호박죽을 아주 맛있게 만들곤 하셨다. 그런 음식들이 어떻게 가정집에서 탄생할 수 있었는지는, 어설프게나마 살림이라는 걸 꾸리고 있는 지금까지도 불가사의다. 


 할머니의 음식은 충분히 맛있었고 덕분에 우리 남매는 배고플 새 없이 성장기를 지나왔지만 어쩐지 나의 마음 속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엄마가 전업 주부인 친구들이 부러웠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챙겨주는 간식과 음식을 먹고 싶었다. 어쩌면 엄마와 마음을 나누고 싶었는데 방법을 잘 몰랐던 것도 같다. 


 엄마가 해주셔서 난생 처음 맛봤던 궁중떡볶이는 내 입맛에 딱 이었고, 맛있다는 이야기를 연발했다. 엄마는 직장일로 바쁘셨던 탓인지, 안타깝게도 그 후로 엄마가 해 주신 궁중떡볶이를 맛 본 기억은 더 이상 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궁중떡볶이 하면 바로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가 한참 아프실 때 우리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셨다. 그동안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딸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것 같다는 이유였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3년 정도 지나서야 그 말에 어폐가 있음을 알게 됐다. 


 엄마는 내성적인 나를 위해 매년 담임선생님들께 따로 인사를 드렸고, 내가 좋아하는 첼로도 배울 수 있게 해주셨고, 강아지도 키울 수 있게 해주셨다. 공부 욕심에 1등으로 학교에 가고 싶어 했던 고3 딸을 위해 매일 아침 등굣길을 함께 해주셨고, 혼자 공부하는 주말이면 따뜻한 도시락을 끼니때마다 배달해주셨다. 


 사실 엄마는 나에게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엄마였는데, 철없던 딸은 궁중떡볶이 같은 사건들만 모아모아 마음 한편에 정성스레 전시해왔다. 올해로 엄마와 잠시 이별한지 6년째에 접어들었다. 이제야 당시에 나는 나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서로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음을 안다. 

아파도 행복했던 시절의 엄마

 기억이 쉽게 미화되는 성질은 영원한 이별을 겪고 있는 내게는 축복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속 엄마 방에는 슬프고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행복하고 좋았던 추억들이 반짝이며 자리 잡는다. 오늘로써 ‘궁중떡볶이’와 ‘요리하는 엄마’에 대한 기억도 좀 더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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