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머리가 좋아서"
어떤 말은 한 사람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생각보다 큰 자산이 된다. 그 말이 틈틈이 떠올라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내게 해준다면 그보다 더 수익률이 좋은 자산도 없을 것이다. 살면서 엄마에게 수많은 말을 듣고 자랐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또렷이 울리는 말이 있다.
어릴 적 살던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대학교가 하나 있었다. 주민들을 위해 학교를 항상 개방해두어 저녁이면 학교 전체가 동네 주민들의 산책로가 되곤 했다. 엄마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우리 남매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셨다. 아마도 엄마는 우리와 떠들기 위해 산책을 하셨던 것 같다. 그곳에서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다.
중학생 시절의 나는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 살았다. 다재다능한 친구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며 더 완벽하지 못하다고 자책하고 실망하기 일쑤였다. 특히나 “나는 머리가 나빠서” 병에 걸려있었는데, 오래 앉아 열심히 공부하는 걸 꽤나 부끄러워했다. 놀기도 잘 놀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처럼 열심히 하고도 이 정도 성적이 안 나오면 그게 바보지. 이건 당연한 거야. 나는 머리가 나빠서 이렇게밖에 못해.’
대체 왜 사춘기가 그런 방식으로 왔던 건지 의아하다. 그 시절에 나는 “머리가 나빠서...”라는 말을 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그날은 여름 방학의 끝 무렵이었고, 엄마와 산책하는 내내 푸념을 늘어놓았다.
“동생은 머리가 좋은데 나는 머리가 나빠서 무식하게 오래 앉아 공부해야 하고. 그렇게나 많이 하는데도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애들은 쌔고쌨어. 이렇게 느려서 원. 나는 아무것도 못할 거야. 나 같이 평범한 애가 뭐...”
그때였다. 엄마가 진심으로 버럭 화를 낸 것은.
“그만해. 네가 왜 머리가 나빠? 진득하게 오래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야.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것도 아무나 못하는 일이야. 그것도 대단한 일인데 왜 자꾸 머리가 나쁘대? 너 머리 충분히, 아니 차고 넘치게 좋아.”
그리고는 한동안 아무 말을 못 했다. 엄마가 내가 만들어 놓은 감옥 문을 열어 줬는데, 이렇게 쉽게 나가도 되는 건지 놀라서 그대로 굳어있었다.
성인이 되고서도 그 말이 진하게 남아 마음속을 맴돈다. 해내야 하는 일 앞에서 작아지고 움츠러들 때마다 엄마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는 머리가 좋아서 할 수 있어. 한 자리에서 묵묵히 해 내는 거,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다 네 머리가 좋아서 할 수 있는 거야.”
이 말은 ‘나는 못 한다고, 자신이 없다’고 자꾸만 도망치려 하는 내 습성에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그리고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용기를 내 안 깊은 곳 어딘가에서 건져 올려준다.
말에는 힘이 있다. 그래서 마음 속에 이로운 말을 많이 심어두어야 한다. 심긴 말들은 언제 어디에서 튀어나와 힘이 되고 용기가 되고 위로가 될지 모른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자주 들려줘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