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7주기
어렸을 때는 친척들과의 모임이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어른들끼리만 아는 얘기를 하고 사촌 간에도 별로 친하지 않아서 가기 싫고 지루하기만 한 자리였다.
어색하게 인사하고 뻘쭘하게 앉아서 들어가지 않는 밥을 억지로 먹고
어른들의 대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집에 오는 게 어찌나 지루하고 답답했었는지 모른다.
어느덧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해보면서
누군가의 경조사에 참석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새로 알아가고 있다.
달력에 미리 표시를 하고, 그날의 일정을 비워 놓고,
행사가 열리는 지역까지 가기 위해 휴일의 늦잠을 포기하고,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게 준비하고, 이동하고…
와서 밥 한 끼 함께 먹는 게 얼마나 많은 이들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인지.
딱히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한날한시에 한 곳에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특별한 일이라는 걸 3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느낀다.
한동안 비가 오고 날이 흐렸는데 엄마의 기일에는 어김없이 화창한 날씨가 기분을 들뜨게 했다.
모두가 인사말로 꽃 이야기를 나누는 예쁜 시절이다.
“올 해는 꽃이 빨리 피고 져버렸어. 원래 엄마 기일쯤이 만개할 때였는데 말이야.”
그렇게 모두 나른한 휴일을 반납하고 엄마 앞에 모였다.
엄마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 덕분에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인다며 공을 엄마에게 돌려준다.
3주기까지는 4월 9일이 너무 괴롭고 슬픈 날이었다.
다신 돌아오지 않았으면 싶은 날짜.
그 후 2~3년 정도는 원망하는 날이었다.
왜 하필 우리 엄마에게,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억울하고 화가 나는 날.
어쩌면 이제야 조금은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좋은 날에 모이게 해 줘서 고맙다는 생각도 드는 것을 보면.
눈물로, 원망으로, 서로의 탓만 하며 보낸 시간이 수년이다.
그 시간이 우리의 관계 속에 들어와 알게 모르게 찰기를 만들었다.
엄마 없이도 자주 모이고, 대화를 하고, 나름의 모양을 만들어 가는 걸 보면 말이다.
엄마는 없지만 엄마 덕분에 남은 우리 가족이 조금씩 더 끈끈해지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밖에는 우리 가족이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고모의 말처럼 엄마가 정말로 가족들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이렇게 화창한 날 모이게 해 준 것 같다.
그런 엄마가 있다는 것도,
우리 가족이 이렇게 돈독해지고 있다는 것도,
기꺼이 시간을 내 멀리서 찾아와 주시는 친척분들이 계시다는 것도
전부 다 고마운 하루였다.
이제는 고마운 날이 된 4월 9일.
내년, 내후년, 몇 년 뒤의 4월 9일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