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 받고 싶었다.
얼마 전 독자분께서 엄마와 사이가 좋았던 것 같다고, 글에서 다정하신 어머니의 사랑이 많이 느껴진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저 엄마랑 사이 엄청 안 좋았는데요? 시니컬한 나의 대답에 글에서 그런 느낌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며 놀란 눈치였다. 그간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정말 따뜻하고 인자한 엄마가 그려졌다. 왜 그런 글들만 쓰게 된 걸까?
처음으로 떠오른 마음은 일종의 죄책감이었다. 엄마는 다 나 잘되라고 그랬던 걸 텐데 내가 함부로 나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좋았던 기억보다는 나빴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는 편이니까 내 멋대로 나쁜 감정을 내비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거기에 심지어 엄마를 위하는 척하는 마음까지 보탰다. 엄마는 이미 돌아가셨는데 내가 너무 나쁘게 묘사하면 변명할 기회조차 없어 억울할 테니까 하고.
그래서 한동안 글에서 엄마를 빼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아빠였다. 아빠에게 속상했던 장면, 서운했던 장면이 하나, 둘 튀어나왔다. 열심히 토해내듯 써봤지만 갈무리가 되지 않았던 마음은 그저 보기 싫은 토사물 같았고, 시원하긴 커녕 오히려 복잡해졌다. 글을 쓰며 격해지는 마음에 카페 구석에 앉아 엉엉 울다가 결국 썼던 글을 모두 지웠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일기를 쓰다 처음으로 솔직한 마음과 마주했다. 사실은 엄마, 아빠가 다 미웠다. 너무 미운데 그럼 안될 거 같다는 마음이 가로막고 서 있으니까 애써 미운 마음을 다 소화시킨 척, 보기 좋은 모습들만 쏙쏙 골라내 ‘분명 좋았을 때도 많았을 거야.’ 하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자신을 세뇌시키면서 까지 엄마,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을 숨기고 싶었던 이유도 분명 있을 것 같았다. 그 마음은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 걸까? 내 마음의 진짜 민낯은 울컥하며 소리쳤다. 나도 다정하게 말 걸고, 친구같이 친근한 부모를 갖고 싶어! 부모님의 사랑만을 있는 그대로 듬뿍 받고 자랐을(그런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까 하고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내 상상 속엔 분명히 존재하는) 아이들이 다 부러웠다. 부모님의 왜곡된 표현 방식을 해석해 내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마음을 나의 부모라는 이유로 믿어보려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
일기장에라도 마음껏 휘갈기고 나니 속이 좀 후련했다. 누군가가 부럽다는 마음은 너무 창피해서 혼자만 보는 일기장에서 조차 마주치고 싶지 않았었나 보다. 아무리 숨겨봐도 사실은 부러운 걸 어쩌겠나. 항상 진실 앞에 눈을 가리고 있을 때 가장 두려웠다. 막상 직접 보면 단지 그런 마음일 뿐, 나를 해치지도, 무너뜨리지도 못하는데. 그냥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마음을 무시하니 사랑받지 못할까 불안한 마음으로 모습을 바꿔 나를 자극했을 뿐이었다. 그동안 뭐가 그리 무서워 피해만 다녔을까.
다다음주면 엄마의 7주기 기일이다. 이번 기일에는 좀 더 솔직한 마음으로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와 딸은 헤어져서도 지지고 볶아야 하는 관곈가보다. 그리고 나면 영혼이 통할만큼 친한 친구가 되어 있을지도, 어쩌면 영원히 등 돌리고 보지 않을 관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조차도 내가 엄마를 엄마로 만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겠지. “엄마, 나 사실 엄마가 많이 밉고 힘들었어. 그 마음도 잘 돌봐서 소화시켜 볼게.” 나 홀로 눈물, 콧물 쏙 빼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