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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Mar 08. 2024

반전매력

사실 제가 한의사랍니다. 

"아가씨! 여기 좀 와봐요."

놀랍게도 한의사가 되고 대학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시절 환자분들께 들었던 말입니다.

매번 그랬던 건 아니지만, 간혹 남자분들은 저를 '아가씨'로, 여자분들은 "언니~"하고 부르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저희 한의원에 방문하시는 각종 기사님들이나 외부인들이 제게 "원장님은 어디 계세요?"하고 묻곤 해요. 환자분들이 주로 누워서 치료를 받으시다 보니 제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목소리만 듣다가 고개를 들어 힐끗 저를 보시고는 "의사였어요?" 하고 묻는 경우도 왕왕 있지요. 


어느 날 우연히 아빠와 이 일화에 대해 말하게 됐어요. 아빠가 한참 뜸을 들이시더니 사실 자기도 병원에서 간호사를 '아가씨'라 불렀다가 된통 혼난 경험이 있었다고 하셨어요. 아빠가 "아가씨" 하고 부르자 간호사 한 분이 오셔서 이렇게 말하셨다고 해요. 


"아가씨라 부르지 마시고 선생님 아니면 간호사님이라 불러주세요."


저도 예전에 인턴으로 근무할 때는 누가 아가씨나 언니라고 부르면 대답을 안 하거나, "여기 언니나 아가씨는 없어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사회생활에 미숙했던 제가 수동적으로 화풀이를 했던 거죠. 내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에 기분이 나빴던 거겠죠? 아빠는 덧붙여 이런 설명을 해주셨어요. 


"사실 우리 세대에서 '아가씨'라는 표현은 여자들을 낮추기 위해 쓰던 말은 아니었어. 오히려 젊은 여자를 부를 때 존중하는 표현이었지. 솔직히 '선생님'이라던지 '간호사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 알았는데, 막상 그 표현을 쓰려니 잘 쓰지 않아 버릇해서 그런지 좀 쑥스럽더라고. 그런데 네 경험을 들어보니 왜 기분이 나빴을지 이해되."


아빠 고백을 들은 후로는 행여나 '아가씨'라는 말을 들어도 불쾌하지 않아요. 다른 감정 싣지 않고 담백한 마음으로 제가 할 일을 할 수 있게 됐어요. 반대로 환자분들께서 제게 정중한 표현을 해주실 때 거기에서 느껴지는 고마움은 배가 됐고요.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나니까 '이렇게나 나를 존중해 주시는구나.' 하는 마음이 더욱더 감사하게 와닿아요.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아 무슨 글을 써볼까 생각해 보니 그동안 마음속에 고인, 아직은 어지러운 이야기들이 참 많았는데요. 마음을 잡고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왜인지 이 이야기가 제일 먼저 튀어나오네요. 아, 아빠한테는 정 민망하면 "저기요"라고 부르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앞으로는 저만의 색깔로 한의원을 운영해 나가는 한의사로서의 제 이야기를 담아보려 해요. 부족한 게 많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용기 내 쓰는 첫 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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