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_달달한 사랑 영화이면서 동시에 꿈을 찾아나서는 성장영화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것은 당연할 일일 것이다. 그러한 서로의 다른 시선을 이야기하는 것 역시 영화를 보고 난 뒤 재미 중에 하나일 테니 말이다. 다르게 해석되는 영화들은 참으로 많겠지만 특히 나에겐 <라라랜드>가 시선의 차이, 해석의 차이를 가장 많이 느끼게 했던 영화였던 것 같다. 처음엔 '어떻게 그렇게 해석할 수가 있지?'라며 이해를 하지 못했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고 영화를 한 번 더 보면서 '아, 또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 나름 이해를 하려 애쓰다가도, '그렇게 해석하기엔 이 영화는 너무 좋은 걸' 아쉬움을 품기도 했다. 이 영화를 사랑 영화로 볼 것이냐, 꿈의 영화로 볼 것이냐는 끝내 보는 이가 살아온, 그가 주안점을 두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갈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라랜드>가 개봉했던 해에 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영화가 개봉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영화관을 찾으려 했지만,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관객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보류해두고 있었다. 예전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내 옆에서 영화를 생중계해주었던 어떤 분 덕분에 나는 가능하면 어느 정도 사람이 많이 본 후에 영화관을 찾는 습관 아닌 습관이 생겨버렸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었다. 빨리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당시, <라라랜드>를 보고 왔다며 사장 부부가 미소 지으며 말했었다. 나는 스포일러는 되도록 하지 않고, 짧은 평을 해달라고 말했었는데, 나의 말을 들은 남자 사장님께서 아주 짧은 평을 남겨주셨다. '끝내 여자 주인공이 나쁜 X이더라고'. 나는 영화의 예고편을 본 상태였고, 직접적인 설명이 없는 글들을 몇 번 읽어본 적이 있던 터라 '그런 영화가 절대 아닐 텐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말하는 이유가 있겠지라며 내 속마음을 숨겼었다. 그리고 남자 사장님의 영화평 때문인지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얼마 뒤, 영화관을 찾았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남자 사장님의 영화평을 미워했고, 영화 속 인물 때문에 주책 맞게 울고 있었다. 눈으로도, 마음으로도.
황홀한 사랑, 순수한 희망, 격렬한 열정. 이 곳에서 모든 감정이 폭발한다!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별들의 도시 ‘라라랜드’.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만난 두 사람은 미완성인 서로의 무대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시작과 끝이 모두 음악으로 연결되어있다. 시작부터 이목을 끌었던 오프닝 속에서도, 처음 미아와 세바스찬이 만났던 장면에서도, 가슴 절절하게 만들었던 엔딩 장면에서도 모두 음악은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인물의 감정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고, 비유적으로 그들의 관계를 이야기해주기도 하면서 영화의 매력을 배가 시키는 음악의 힘이 굉장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라라랜드>의 빠로서 영화의 OST를 무척 좋아한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바로 나의 플레이 리스트 상위권에 자리를 잡고 있을 정도로 언제나 들어도 마음을 경쾌하게 만들어주기도, 눈물 날정도로 아리게 만들어주기도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의 개인적인 습관 하나를 말해보자면, 나는 음악에 장면을 입히는 습관이 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듣고 있는 노래 속에 나의 감정이나, 그날 걸었던 거리의 풍경들을 입히는, 기억하는 습관. 그래서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그 음악을 들었을 때, 그때 그 거리의 냄새가 기억난다거나, 그때 만났던 사람이 떠오르게 하는 나름의 기억 방식이, 추억 방식이 있다. 하지만 <라라랜드>의 OST는 그 작업에 번번이 실패했다. 내 기억으로 덮혀지기보단 영화 속의 그 인물들의 감정과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만큼 영화의 OST와 영화 속 장면들은 정말 찰떡같이 내 머릿속에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이젠 반대로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나의 기억이나 추억들이 아니라 미아와 세바스찬의 기억과 추억들이 떠오른다. 웃었던, 즐거웠던, 다퉜던, 화냈던, 화해했던, 놓아주었던 그리고 아파했던 모습들이 고스란히.
이 영화를 로맨스 영화라고, 사랑 영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다, 이 영화는 꿈에 대한 영화라고, 성장 영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두 가지다, 맞다. 이 영화는 달달한 사랑 영화이면서 동시에 꿈을 찾아다니는, 꿈을 꾸는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여기서 내가 바라본 라라랜드을 말해보자면, 나는 꿈에 대한 영화라는 생각이 더 우세했고, 현재까지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아마 내가 가지고 있는 '꿈'에 대한 집착 때문일 수도 있을 테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랑 영화로서도 이야기할 거리들은 차고 넘치니까. '시작이 어긋났던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알아가고, 관심이 생기고, 연애를 하며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그리고 끝내 꿈을 이루게 되는 이야기'쯤으로 과연 이 영화를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아주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내 필력으로 이 영화를 설명하기엔 벅찬 부분들이 많다.
나는 이 영화를 한 네 번쯤 본 것 같다. 영화관에서 한 번, 영화채널에서 한 번, 다운 받아서 두 번 정도 봤던 기억이 있다. 영화관에선 후반부에 울었고, 영화채널에선 울지 않았고, 다운 받아서 봤을 때는 거의 시작과 동시에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봤던 것 같다. 다 알고, 심지어 대사도 읊을 정도로 이 영화에 대해 잘 알고 있음에도 그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 아프게 만들곤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꿈을 성공한 자와 비교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꿈의 신념 때문에 좌절감을 맛보고, 서로의 꿈을 공유할 때는 몹시도 신이 났으며, 열렬하게 품어왔던 꿈을 포기하려, 외면하려 애쓰는 모습 속에서 내가 겪었고 내 주변 사람들이 겪었던 이야기가 떠올라 눈물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꿈을 가진 자들에겐 언제나 꿈은 아픈 존재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 속의 인물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꿈을 꾸고 사랑을 하는 자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구나,라고.
이 영화를 볼 때마다 통곡하는 두 장면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 같은데 바로, 미아가 'Audition'을 부르는 장면과 세바스찬의 마지막 회상 장면이다. 나는 사실 영화에선 이 두 장면만 보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정도로 이 두 장면이 이 영화를 대변해주기에 충분하고 너무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꿈을 꾸는 사람이 꿈을 품고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는 미아의 오디션 장면,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의 미래를, 자신이 놓쳤다 생각하는 과거를 아주 짧은 컷들로 구성되어 있는 세바스찬의 회상 장면, 이 두 장면은 두 인물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상태를 너무도 효과적으로 잘 담아낸다. 꿈을 포기했던, 나의 욕심일 뿐이라는, 내 능력으로는 안될 거라는 미아의 울음 앞에 다시금 찾아온 오디션의 기회에서 미아는 모든 것을 놓은 듯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이 장면이 특히나 가슴에 와 닿았던 이유는 아마 '없음'이 주는 묵직함 때문일 것이다. 그 장면에선 오롯이 미아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만을 연신 보여준다. 미아를 제외한 모든 것엔 빛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화면 안엔 미아와 미아의 목소리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 '없음'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녀의 꿈에 대한 절절한 감정을 더 배가 시켜 전달되어진다. 그러니 이 장면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많이들 명장면이라 꼽는 마지막 엔딩, 세바스찬의 회상 장면. 이 장면 안에선 이 영화가 결코 꿈만을 담고 있는 영화가 아니라고 이야기해주는 듯 보인다. 보통 많이들 생각하지 않을까. '만약에 그때 내가 이랬더라면..'이라는 가정. 내가 만약 그때 이렇게 행동했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너와의 관계가 달라졌을까. 그랬더라면, 너는 지금 내 옆에 있을까. 그런 무수한 가정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는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미아를 레스토랑에서 마주쳤을 때 바라봤더라면, 밴드의 제안을 거절했더라면, 미아의 연극을 관람했더라면, 너와 나는 달라졌을까. 너의 옆에 내가 앉아있을 수 있었을까. 그 수많은 후회와 아쉬움이 담겨 있는 세바스찬의 회상 장면은 누구다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나의 가족에게 혹은 나의 친구에게, 내가 살아가면서 관계 맺고 있었던 그 누구에게도 대입할 수 있는 '가정'일 테니까.
이 영화는 참 웃기다. 분명 얼마 전에 봤는데 또 보고 싶다 느껴지게 만드니까 말이다. 보면 또 울 거라는 걸, 또 한동안 OST를 달고 살 거라는 걸, <라라랜드>의 후유증에 시달릴 거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찾게 된다. 굳이 거창한 말을 덧붙일 필요 없이 '좋아서', '보고 싶어서' 찾게 되는 영화. 엠마 스톤의 매력에 빠져 그녀의 전작을 찾아보게 만드는, 라이언 고슬링에 빠져 그의 전작 역시 찾아보게 만드는, 그리고 더 나아가 데이미언 셔젤의 전작 역시 정주행 하게 만드는 영화.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듣고 있어도 듣고 싶은, 알고 있어도 또다시 새로운 걸 알고 싶은 영화, 라라랜드. 매력이 참으로 다양해서 어느 한 곳 빠져나올만한 구멍이 보이지 않는 다채로운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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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