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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pr 05. 2018

당신의 청춘은 안녕하신가요

<소공녀>_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미소가 나를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나에겐 다양한 종류의 영화가 있다. 울고 싶을 때 찾아보는 영화, 웃고 싶을 때 찾아보는 영화, 그냥 시간을 빨리 보내고 싶어서 찾게 되는 영화, 누군가의 추억이 떠올라 꺼내보는 영화. 아주 다양한 종류의 영화들 중 이 영화는 어느 편에 속할까 생각해봤다. 여러 카테고리 중에서 찾은 곳은 '응원을 받고 싶을 때 찾게 되는 영화'였다. 지금 살아가는 것이 잘 못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는 영화. 너의 삶을 너의 방식대로 풀어가도 좋다고 말해주는 영화. 그래서 지금 방황하고 있는 나에게, '방황' 역시 그리 나쁜 것이 아니라 다독여주는 것 같은 영화. 나에겐 이 영화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소공녀

 내가 처음 <소공녀>를 알게 된 건,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였다. 나는 영화를 몹시 좋아하고 있음에도 영화제를 찾아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그 당시에도 곧 영화제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고, 알게 됨과 동시에 이 영화의 존재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 상영하는 영화들의 정보를 잘 모르고 있던 터라, 지인에게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먼저 물어본 뒤 알려준 영화들 위주로 정보를 찾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운이 좋게도 지인이 티켓팅을 성공하면서 <소공녀>를 보러 서울극장에 갔었다. 이솜 배우가 나오고 지금 내 나이 또래와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영화를 사실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을 조금 했었다. 너무 '청춘'의 모습을 힘들다, 방황한다 절절하게 단면적으로 다루거나 아니면, '청춘'의 모습을 그저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로 다루거나 그중 어떠한 방법을 선택했을까 궁금했었다. 영화가 거의 끝나가는 그즈음, 나는 함께 영화를 봤던 지인에게 말했다. '이 영화가 내 생각과 같아'라고.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 친구만 있다면 더 바라는 것이 없는 3년 차 프로 가사도우미 ‘미소’.
새해가 되자 집세도 오르고 담배와 위스키 가격마저 올랐지만 일당은 여전히 그대로다.
좋아하는 것들이 비싸지는 세상에서 포기한 건 단 하나, 바로 ‘집’.
집만 없을 뿐 일도 사랑도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현대판 소공녀 ‘미소’의 도시 하루살이가 시작된다!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찬, 삶

 영화 속 주인공인 미소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마이웨이의 최강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뭐라 하더라도 내 삶의 방식은 내가 정하겠다는 의지가 아주 강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의 몸값은 나날이 올라가지만, 내 노동의 값은 발맞춰 올라가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듯한 이 영화는 그런 세상에 대한 깊은 좌절감을 극적으로 표현하기보단 굳건한 자신의 신념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과장됨 없이 전달해준다. 인물이 너무 굳건해서일까, 누군가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아서 일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라는 인물이 참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듯 하지만, 미소와 나는 분명히 달랐기 때문에. 미소는 집세가 올리겠다는 주인의 말에 고민을 한다. 집을 뺄 것인가, 담배를 끊을 것인가, 위스키를 포기할 것인가. 보통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집을 지키기 위해 담배를 끊거나, 위스키를 몇 달에 한번 먹자는 결정을 하지 않을까. 하지만 미소는 달랐다. 나에게 지금 당장의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선택보다, 지금 당장 나를 행복하게 하고 좋아하는 것을 선택한다. 선택이 끝나자 미소는 트렁크 하나만을 가지고 집을 나선다, 자신이 좋아하는 담배를 피우며.


  영화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나에게도 미소처럼 포기할 수 없는 '좋아하는 것'이 있는가에 대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떠오른 것은, 그러니까 내가 지금 현재 돈이 몹시 없지만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나름의 사치는 두 가지 정도 되는 것 같다. 영화관을 찾는 것과 커피를 마시는 것. 이 두 가지는 현재 돈이 없는 내가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이 두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는 선택보다 조금 더 싸게 볼 수 있는 방법을, 싸게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서는 편이다. 미소와 한솔이 피를 뽑으며 데이트 코스를 정하는 것처럼 나도 나름의 발품을 팔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당신의 청춘은 안녕하신가요

 내가 과연 '청춘'이라는 말을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지금 나는 다행으로 '청춘'이라는 말에 숨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한 시간을, 좋아하는 것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청춘'이라는 말에 숨어 이렇게 철없는 행동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마음만 청춘이라면, 나이가 들어도 청춘이다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지만, 정말 평생을 '내 마음은 청춘'이라고 변명하며 지금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을 했고, 지금 역시 그 고민은 현재 진행형인 상태이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마음에 담고 있는 생각 한 가지는 있다. 초조함에 몸서리치기보단,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에, 하고 싶은 것에 더 마음을 실어보자고 말이다. 그런 내 나름의 굳은 결심을 하고 있던 그때에 이 영화를 만나서, 미소를 만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 속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미소가 나를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라고 당당히 말하는 미소가 부러웠고 고마웠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어떠한 것에도 정답은 없다, 그저 다른 답안지들이 있을 뿐이지. 나는 이 영화 <소공녀>가 아주 유쾌하고 한편으론 가슴 먹먹하게 그런 말을, 그런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소는 과거 자신과 추억이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가 하룻밤을 보내면서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미소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아주 이상적인 인물로 그려진다면 미소가 찾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몹시도 현실적이다. 시부모와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는 가정주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노총각, 이혼을 하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이혼남, 능력 있는 남자와 결혼해 평온한, 평온한 듯 보이는 아이 엄마까지. 그리 멀리 가지 않아도 주변에서 볼법한 인물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실적인 모습들을 그려내고 있다. 미소와 그들의 삶의 모습이 달라서 일까.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미소가 집을 찾아가기 전, 찾아간 후의 그들의 모습은 아주 조금씩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에겐 위안이, 누군가에겐 삶의 용기를, 또 누군가에겐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을, 현실을 마주한 모습들이 미소 짓게 하다가, 가슴 아리게 하다가, 한숨 쉬게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모두의 삶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짧은 GV가 있었다. <소공녀>의 감독인 전고운 감독님과 미소 역을 맡은 이솜 배우님이 오셨었는데, 다양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중 전고운 감독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조심했던 부분이 혹시나 미소가 민폐 캐릭터로 보이지 않을까였다고. 그래서 미소라는 인물을 만들 때 더 많이 신경을 썼다고 말이다. 사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가 민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집이 없어 잘 곳을 찾아다니고 있지만 '집'이 없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 누구보다 삶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졌었다. 단지, 집이 없을 뿐. 하지만 그럼에도 미소의 행동이 민폐 캐릭터처럼 비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미소가 민폐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저 남들처럼 살고 있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들처럼 안정적인 직업을 찾지 않으니까, 남들처럼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니까, 남들처럼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니까 민폐처럼 보이는 것이지 않을까. 현실이라는 것에 맞춰 살아야 하는 데 그렇게 살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보기에는 철없고, 한심하고, 민폐다 말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미소는 그저 집이 없어서 잠 잘 곳을 찾아다니는 것뿐이지 돈을 버는 행동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누구처럼 많은 돈을 탐하지 않고 지금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며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영화 안에선 많은 선택들이 그려진다. 집을 포기할 것이냐, 좋아하는 것을 포기할 것이냐. 궁핍하더라도 꿈을 지킬 것이냐, 안정감을 위해 꿈을 포기하고 돈을 벌 것이냐.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없다. 그저 자신의 선택만이 있을 뿐. 그 선택의 모습이 극명하게 보이는 것이 미소와 한솔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미소는 한솔을 위해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지만, 한솔은 앞이 보이지 않은 현실에, 너무도 불확실한 미래에 꿈을 포기하고 돈을 벌겠다 결심한다. 마지막 떠나기 위해 한솔과 작별인사를 하던 미소는 한솔에게 노트 하나를 선물한다. 그곳에서도 결코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마음에서. 네가 좋아하는 것을 잊지 말라는 뜻에서.  영화는 대체적으로 무척으로 유쾌하게 즐겁게 흘러가지만, 이렇게 가슴 묵직하게 만드는 장면들도 꽤나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영화 속에 존재하는 모든 인물들을 아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소의 삶도, 한솔의 삶도, 영화 속에 존재하는 지금의 청춘들에게도 옳고 그른 것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당신이 어떠한 삶을 살더라도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았다. 

 


힘을 내요, 청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용기'라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시작할 용기, 무언가를 포기할 용기, 무언가를 지속할 용기, 무언가를 선택할 용기, 무언가를 변화할 용기, 무언가를 지킬 용기. <소공녀>는 영화 속 인물을 통해, 미소를 통해 수많은 용기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그 용기가 앞으로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기를 갖고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무언가를 놓아주기도 해야 한다. 그렇게 수많은 용기를 내며 살아야 하는 우리를 위로해주고, 응원해주고, 박수를 쳐주고 있는 듯한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을 내요, 청춘. 그대의 삶은 그저 그 자체만으로도 멋있으니, 빛이 나니 그대의 삶대로 살아보아요'라고 이야기해주는 이 영화를 보고 나는 힘을 냈으니, 그대 역시 힘을 내라고. 아니, 굳이 힘까지 내지 않더라도 충분한 위로는 분명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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