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월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 Apr 20. 2018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 치유받는다

<월플라워>_ 그저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해줘.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있다. 바로, 성장을 테마로 한 영화이다. 사실 '성장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들은 참 많다. 왜냐하면, 영화 안에서 인물이 성장하지 않은 경우는 몹시 드무니까. 그래서 어느 관점에서 보자면, 영화는 항상 인물의 크거나 작은 성장을 담아낸다. 그 성장이 사랑으로 시작될 수도 있고, 관계로 시작될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로 나이가 흘러가면서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성장일 수도 있다. 그 많은 성장들 가운데, <월 플라워>는 고등학생들의 성장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면서 알게 되는 내면의 성장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월플라워

 이 영화의 제목의 뜻부터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전적 의미로 말하자면 '춤을 추지 못하는 사람 :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설명되어있다. 그렇다. 이 영화는 영화의 제목 그대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예외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이상하게도 이런 영화에, 이런 인물에 무척 약하다. 연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내가 그 연민에 약한 이유는 아마 내가 나를 그렇게 볼 때가 많아서 이기도 할 것이다. 이 영화는 나에게 약간의 추억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 이 영화를 알게 된 경로 정도라고 해야 하나. 정확히 언제였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와 친했던 친구의 추천으로 알게 된 영화였다. 그 아이가 기억하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뭐랄까 너무 어둡다, 정도에서 끝을 냈던 것 같다. 물론, 영화를 보면서 공감이 가기도 하고, 마지막에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감흥이 크진 않았던 것 같다. 아이들의 관계가 참 좋다, 미장센이 아름답다 정도에서 끝났던 영화였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영화 속 대사 때문에 다시 이 영화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영화 대사는 이러했다. "왜 사람들은 자기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걸까요?", "사람은 자기가 생각한 만큼만 사랑받기 마련이거든." 내가 나를 그렇게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겪었던, 겪어냈던 무수한 관계들이 떠올라서일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속 저 대사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우연히 또다시 보게 된 영화는 나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불량품들의 섬에 온 걸 환영해!’
유쾌하지만 쓰라리고, 지치지만 빛나던 청춘의 기억. 
말 못 할 트라우마를 가지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던 ‘찰리’는 고등학교 신입생이 돼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방황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타인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삶을 즐기는 ‘샘’과 ‘패트릭’ 남매를 만나 인생의 새로운 전환을 맞이한다.
멋진 음악과 친구들을 만나며 세상 밖으로 나가는 법을 배워가는 ‘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샘’을 사랑하게 된 그는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가슴 벅찬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불현듯 나타나 다시 ‘찰리’를 괴롭히는 과거의 상처와 ‘샘’과 ‘패트릭’의 걷잡을 수 없는 방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세 사람의 우정을 흔들어 놓기 시작하는데… 

  


넌 충분히 아름다워

 어떤 말을 해야 위로가 되는 걸까 고민한 적이 있다. 어떻게 해야 내가 그 사람을, 그 사람의 아픔을 아주 잠시라도 감싸줄 수 있을까 고민했던 날. 끝내 나는 답을 찾진 못했다. 그저, 그 날은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자. 그리고 무조건 그 사람의 편이 되어주자 생각했다. 그 방법이 잘 받아들여졌는지, 그래서 그 사람은 충분히 위로가 되었는지 사실 나는 잘 모른다. 조금이나마 나의 마음이 전해지길 바랄 뿐. 그런 마음을 가지며 나는 생각했다. 아, 나는 위로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나에게 없는 위로의 재능을 이 영화를 통해 조금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참 위로를 잘 해준다. 말로, 행동으로, 분위기로 한없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영화 속 주인공인 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러니까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것을 힘들어한다. 과거의 상처 때문에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어리고 서툴기에 관계를 맺는 법도 잘 모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몸과 맘이 따라주지 않는 거, 사실 나도 많이 겪어봐서 안다. 군중 속의 고독 같은 것도 겪어봐서 더 이해가 되었던 것 같다, 찰리의 행동에. 다행으로 찰리는 무척 쾌활하고 가끔은 괴짜처럼 보이는 패트릭과 샘을 만나게 되면서 사람과 관계를 맺는 법을, 앞으로 살아가게 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하나씩 배워나가기 시작한다. 


 그럴 때가 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는데 사실은 내 옆에 사람이 존재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 같은데 나를 궁금해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그 순간. 우리는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 덕분에 살아왔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 존재가 나에게만큼은 절대 없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가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을 뿐 나를 사려 깊게 바라보고 있던 사람은 언제나 존재했다. 찰리에게 패트릭과 샘이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만났던 기간은, 나누었던 대화의 양은 사실 큰 상관이 없다. 많은 시간을 공유했다고 그 사람을 모두 다 알고 있다 단언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저 같은 점을 공유하고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 그렇게 서로를 지켜봐 주는 것. 지켜봐주다 누군가 흔들리거나 쓰러지려 할 때 잡아주는 것. 그런 관계를 샘과 패트릭이 찰리에게 알려주고, 함께 배워가게 되는 모습을 영화는 잔잔하게 담아내고 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 치유받게 된다

 영화는 몇 장의 스틸 컷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일부러 영화의 질감을 거칠게 만든 것도 한몫하겠지만, 굉장히 어두운 조명과 컬러들이 나열되어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영화는 참 따뜻하다. 인물의 대사가 따뜻하고 인물의 마음이 따뜻해서 영화가 몹시 어둡지만 따뜻하게 느껴진다. 아니, 어둡기 때문에 더욱 따뜻하게, 더욱 어루만지듯이 위로의 말을, 위로의 손을 건넨다. 찰리의 상처 많은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감싸안는 패트릭과 샘의 사려 깊은 마음은 영화 안에서 많은 울림을 전달해준다. 한 인격체가, 한 인격체를 오롯이 이해해주는 것. 그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던 사람과 달라, 라는 생각이 마음과 머리에 박이는 순간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며 마음이 멀어지고 있는 걸 나 역시도 몇 번 경험한 적이 있기에. '그저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 속의 샘과 찰리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러한 관계의 두터움이 느껴진다. 사람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어른스러운 사람과의 관계를 세심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으로 영화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달해준다.


 그들도 많은 질문을 던질 때가 있었다. 왜 우리는 상처 주는 사람을 놓지 못하는 걸까, 왜 나는 너를 지켜주지 못하는 걸까, 왜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그들이 영화 속에서 던지는 질문은 내가 나에게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뱉었던 말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친구들에게, 본인 스스로에게 혹은 선생님에게 묻는다. 그런 관계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 선생님은 답해주었고 친구들은 함께 궁금해했으며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로 시작된다는 것. 너와의 관계도, 우리의 관계도, 먼 훗날 만나게 될 사람들도 모두 '나'라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고, 시작될 수밖에 없다. 영화는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너는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너는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고. 그러니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대사를 통해, 인물의 행동을 통해, 영화의 시선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박수를 쳐주는 듯했다.

 

 

그저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해줘

 영화 속 인물을 지탱해주는, 위로를 건네주는 인물들은 다양하다. 사랑하는 연인일 때도 있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일 때도 있고,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가족일 때도 있다. 우리도 그렇다.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마음에 따라 내 옆에 있어주는 존재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온기는 하나같이 같다. 전달되는 마음은 한없이 깊다. 그런 존재에게는 언제나 말하고 싶어진다. 그저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해줘.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마음의 온기를 나눠줘. 네가 전해준 그 온기를 나 역시 네 옆에서 소리 없이 조용히 잔잔한 마음으로 전달해줄 테니. 그들은 영화 속에서 이렇게 외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으로 받은 상처도, 사람에게 받은 상처도, 나 스스로에게 낸 상처도 결국 사람에게 치유를 받고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고 말이다.


 영화는 희망적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하는 대상과 사랑의 결실을 맺었고 자신의 힘든 과거와 마주할 용기를 가지게 되었으니까. 그러니 앞으로의 미래는 조금은 희망적이고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담아내려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찰리가 손을 활짝 펴고 터널을 지나가고 있을 때, 그렇게 바람을 맞이하고 있을 때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여러 단계들 중 이제 하나를 지나쳤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찰리와 샘 그리고 패트릭은 앞으로도 수많은 상처와 고뇌, 걱정과 불안함과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우리들의 성장에는 결코 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만약 존재한다면, 죽음이라는 정말 종결이라 말할 수 있는 최종적인 단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나는. 그렇기에 인물들은 앞으로도 무수한 상처와 아픔을 대면하게 될 테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의 끝을 희망적으로 느끼는 이유는 '내 옆에 존재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인물들 옆엔 함께 흔들리고 상처를 받고 치유를 원하는 친구와 연인, 가족이 존재하고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들과 함께 삶을 겪어나가며 또 다른 성장의 관문 앞에 다가설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가슴 저리며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옅은 미소를 지으며 가슴에 담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도 그렇게 내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게 인물들처럼 내 옆에 있어주는 몇몇의 사람과 함께 성장의 관문 앞에 섰으면 좋겠다. 가끔은 주저앉고 어쩌면 넘어지고 대부분 주저할 테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바라봐주는 네가 나를 치유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역시 네가 상처받은 마음을, 넘어진 손을 잡아주며 함께 무수한 성장의 관문을 하나씩 뛰어넘어갔으면 좋겠다. 우리의 성장이 언제쯤 끝날까. 그래서 언제쯤이면 잔잔한 마음을 가지게 될까 궁금할 때가 많다. 아직 그 답을 알아내진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있다. 성장의 관문은 옆으로 지나쳐 갈 수는 없다. 그저 머무르거나 아니면 뛰어넘거나 언제나 이 두 가지의 길뿐이었다. 그러니 우리, 함께 가자. 우리 함께 넘어가 보자. 그 길이 과연 어떠한 길인지. 그 길이 과연 나에게 어떠한 상처와 기쁨을 줄지 우리 함께 맞이해보자. 내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내 옆에 있을 너와 함께.





-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사월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청춘은 안녕하신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