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버드>_ 좋아하게 될, 좋아하게 된 영화
이 영화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던 계기는 '그레타 거윅'때문이었다. 그녀가 출연했던 작품을 모두 다 챙겨보지 못했지만, <프란시스 하>를 통해 그녀의 매력을 알게 된 나는 그녀의 연출 데뷔작이 곧 개봉한다는 소식이 무척이나 기쁘고 반가웠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연기는 언제나 과하지 않고, 현실적이면서 사랑스러움이 듬뿍 들어가 있다. 나는 그녀의 매력 때문인지, 그녀가 만든 <레이디 버드>가 가지고 있는 영화의 매력 때문인지 아직까지 이 영화의 여운이 짙게 남아있는 채 이렇게 영화 리뷰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렇다. 나는 이 작품에 매료되었다 말할 수 있다. 영화를 다 본 후 든 생각이 '아, 이 영화 한번 더 봐야겠다'였으니까. 앞으로 이 글을 읽게 되시는 분들께 미리 말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이 영화를 본격적으로 영업할 작정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던 영화 한 편이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두 편이겠다. 한편은 내용이나 형식이 매우 비슷하다 느껴지는 영화이고, 한 편은 나만의 상상이 가미된 영화이다. 먼저 내용적인 면이나, 전개되는 과정이 비슷하다 느껴졌던 영화는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다. <보이후드>는 한 인물의 성장을 아주 긴 흐름으로 천천히 보여준다. 그와 반면에 <레이디 버드>는 고등학교를 시작으로 대학에 진학하게 되는 흐름을 아주 빠르게 진행시키며 주인공의 성장을 보여준다. 진행되는 흐름의 속도뿐만 아니라 두 영화가 다르다고 느껴지는 차이점 한 가지 더 존재한다. <보이후드>는 실제로 영화 인물이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였기에 영화를 다 본 후에 '내 친척의 성장'을 보았다고 느껴지는 영화라면, <레이디 버드>는 '과거 내가 겪었던 나의 이야기를, 성장을' 떠올리게 만든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난 또 하나의 영화는 감독의 영향 때문인지, 노아 바움백의 <프란시스 하>가 떠올랐다. <레이디 버드>의 크리스틴이 뉴욕으로 대학을 진학하여 삶을 계속 살아간다면 <프란시스 하>의 프란시스가 되지 않을까 상상했다. 영화 안에선 전혀 두 인물의 점접이 보이지 않지만, 감독인 그레타 거윅의 또다른 집필작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프란시스 하>의 팬이라서 그런지 뉴욕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크리스틴이 삶을 살아가면서 어른으로써의 성장을 거듭해간다면 프란시스가 되어 또 다른 성장통을 겪게 되지 않을까 상상하게 되었다. 생각에 잠겨 거리를 걷고 있는 크리스틴의 모습이 프란시스가 뉴욕의 거리를 쓸쓸히 걸었던 모습과 너무 비슷해 보였기에.
안녕 내 이름은 "레이디 버드"라고 해. 다른 이름이 있지만, 내가 나에게 이름을 지어줬지.
모두가 나에게 잘 살아보라고 충고로 위장한 잔소리를 해.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이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수다를 떨고, 이성에 눈을 떠 궁금한 게 많아지는 나이. 이것저것 정신없이 사고를 치고 다니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나이. 엄마와 아빠가 지어진 이름을 거부한 채 자신이 자신에게 지어진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라는, 누군가가 규정시키는 나의 존재보다 내가 나인 것을 증명하고 싶어 지는 나이인 영화 속 레이디 버드의 모습이, 그러니까 크리스틴의 모습이 그때의, 과거의 내 모습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영화 속 인물처럼 또 다른 이름을 만들었다던가, 중2병이 돋은 사람처럼 사건사고를 몰고 다녔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지난날의 회상하게 만들어주기 충분했다. 친구들과의 나누었던 대화 속에서, 가족들에게 반항기 어린 말과 행동을 하는 모습에서 과거 내가 저질렀던, 저질렀을 일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특히나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가슴 한 곳이 콕-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지금의 나도 경험하고 있지만 참 묘한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낳아준 엄마이면서, 같은 여성임과 동시에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친구 같은 느낌을 갖게 해주는 존재이기에. 그러한 미묘한 엄마와 딸의 관계를 잘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특히 실컷 말싸움하며 다투다가 맘에 드는 옷을 보고 바로 냉정 모드가 전환되는 모습이 어느 날의 엄마와 내 모습같이 느껴졌다.
영화는 크리스틴의 성장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매사 반항기가 가득하고 엄마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반항기 가득한 인물이다. 흔히들 말하는 중2병. 누군가의 사정보다 내 사정이 제일 중요하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길 바라는 아이, 크리스틴. 크리스틴은 영화 안에서 돌발적인 행동을 많이 한다. 마치 관심을 갈구하는 아이처럼. 내가 여기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가족들에게 비수 꽂는 말을 던지곤 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행동하는 크리스틴의 말과 행동에서 '나에게 관심을 가져줘', '나를 사랑해줘'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나를 그냥 내버려 둬'라는 말을 수없이 하지만 그 말은 마치 '나를 더 많이 아껴줘'라고 말하는 듯 다가왔다. 사람은 다수 속에 들어가 있다고 하여도 외로움을 느끼는 동물이다. 그러한 느낌은 아이였을 때도, 성인이 되어서도 유효하다. 그러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을 달래주고 채워줄 수 있는 건 연인과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가족 간의 사랑일 것이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유대감을 유머 있고 발랄하게, 하지만 가슴 찡하고 한편으론 쓸쓸하게 잘 담아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내 우리를 성인으로써, 어른으로써 성장시킬 수 있는 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에서 비롯된 것일 테니까. 자신이 집을 떠나오긴 전까지 몰랐던 사랑과 관심을 집을 떠나온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 크리스틴이 본인의 소개를 '레이디 버드'가 아닌 '크리스틴 맥퍼슨'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영화 안에서 아린 성장통을 잘 견디며 어른이라는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하게 된다.
좋은 기운을 담고 있는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 나만의 영화 리스트들이 있는데 아마도 이 영화가 그 리스트 안에 새롭게 자리를 잡게 될 것 같다. 인물이 살고 있는 집, 동네의 풍경,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들을 통해서 영화의 톤을 연상할 수 있듯 이 영화는 시종일관 밝다. 유머가 영화 중간중간 자리 잡고 있는데 그 만들어놓은 포인트들이 과하지 않고 아주 매끄럽다.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연신 미소를 띠며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굳이 굳이 이 영화의 흡을 잡아보자면 컷의 전환이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입학해서 졸업하기까지의 과정을 빠른 호흡으로 담으려고 하다 보니 초중반쯤에 '아, 조금 빠른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순간들이 다가올 때면 웃음의 포인트로, 가슴 먹먹한 에피소드로 영화의 매력을 증폭시켜준다.
그레타 거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나는 크리스틴이 그녀처럼 느껴졌다. 단 영화 몇 편으로 '그녀를 안다'라고 말할 순 없지만, 이 영화는 그녀가 지금까지 연기해왔던 그녀의 연기톤과 무척 닮아있다. 자연스러우면서 차분하고, 유쾌하면서도 쓸쓸함을 닮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크리스틴이 되고, 크리스틴의 엄마가 되고, 크리스틴의 친구 줄리의 모습으로 차근차근 담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앞으로 그녀가 만들어 나갈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다음 작품에선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어떠한 이야기로, 어떠한 색을 담은 영화가 탄생될지 궁금하다.
영화의 많은 비중을 맡고 있고 흐름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인물인 크리스틴을 연기한 시얼샤 로넌의 전작을 몇 편 본 적이 있다. <어톤먼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브루클린>에서 그녀의 연기를 보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그녀의 매력이 십분 발휘되었다고 생각한다. 연기하는 이에 따라 어쩌면 밉게 보일 수 있을 법한 인물을 현실적이고 발랄하게, 다부지면서도 과함 없이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안에서 만들어놓은 강약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잘 구현해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참 기분 좋게 만드는 매력적인 연기를 펼쳐 보였다. 그리고 크리스틴의 엄마 매리언 맥퍼슨역을 연기한 로리 멧칼프의 힘 있는 연기가 인상 깊었다. 자칫하면 붕 뜬 느낌을 줄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엄마'라는 존재감을 묵직하면서도 따뜻하게 연기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 크리스틴의 친구 줄리 역을 연기한 비니 펠드스타인, 크리스틴의 첫 남자 친구였던 대니 오닐 역의 루카스 헤지스의 자연스럽고 친근한 연기가 마음속에 맴돈다.
이 영화를 어떤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사실 나는 모두에게 추천해주고 싶었다. '성장'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꼭 추천을 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엄마와 함께, 친구와 함께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15세임에도 생각보다 수위가 꽤 있다. 첫 섹스에 관련된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이, 비교적 자세히 나오는 편이라 엄마와 함께 보면 좀 민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영화를 다 본 후엔 그 장면 때문에 느껴졌던 조금의 민망한 마음보다 엄마의 손을 한 번 더 잡고 싶게 만드는 영화가 될 것이다. 그리고 친구와도 함께 보면 참 좋을 것 같다. 가족과의 이야기와 함께 친구들과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들이 아주 따뜻하게 담겨있으니 말이다. 이제 시작되는 봄과 닮아있는, 아주 잘 어울리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도 이 영화를 좋아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이 영화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앞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될 분들에게도 이 영화가 그런 느낌을 가져다주길 바란다. '좋아지게 될 것 같아'를 넘어선 '좋아하게 된' 영화가 되길 바라본다.
*영화 <레이디 버드>의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로 영화 시사회 감상 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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