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터슨>_보잘것없더라도 나에게만큼은 예술이다
나에겐 소박한 취미 하나가 있다. 바로 글을 쓰는 것이다. 대단한 지식을 품은 글을 쓰진 못하더라도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흔적을 남기는 행위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지금의 내가 느낀 감정을 남긴다거나,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 식으로 소화시켜 글로 옮겨 적은 일. 처음엔 글을 쓴다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워했지만 글을 쓰는 것에 부담을 버리고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면서부턴 먼저 나서서 글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패터슨>의 패터슨처럼. 패터슨이 성냥갑을 보고 시를 읊기 시작하자 나는 영화에 매료되기 시작되었다.
개봉 한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의 포스터나 가끔 인터넷에서 보게 되는 영화 평들을 보며 '왠지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 같아'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특히 영화를 홍보하는 짧은 예고편 안에서 그가 쓰고 있는 시의 구절들이 화면 위를 장식하는 모습을 보고 난 뒤엔 더욱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점점 봄이 오려는 듯 따스해지는 계절과 반대로 왠지 뒤숭숭해지는 내 마음을 조금 다독여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가능하면 최신 영화보단 시간이 꽤 지난 영화의 평을 쓰자고 다짐했던 나는 그 마음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영화를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짐 자무쉬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했다. 사실 '짐 자무쉬'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그의 작품은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지금 생각이 나는 영화는 케이트 블란쳇의 1인 2역을 보고 싶어 찾아봤던 <커피와 담배> 한 편정도.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그의 전작을 다 챙겨봤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미국 뉴저지 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의 이름은 ‘패터슨’이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패터슨은 일을 마치면 아내와 저녁을 먹고 애완견 산책 겸 동네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일상의 기록들을 틈틈이 비밀 노트에 시로 써내려 간다.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하다. 크나 큰 사건 없이 평이하게 흘러간다. 그나마도 작은 사건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역시 다른 영화의 빵 터지는 사건에 비하면 '아주 일상적이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잔잔하면서도 큰 사건이라 말할 수 없는 사건이었기에 이 영화를 더 좋아하고 빠지게 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좀 우스워보일 수도 있지만 패터슨을 보면서 나는 나의 일상을 보는 듯 보였다. 영화 안에서 패터슨은 시를 쓰고, 현실에서 나는 일기 같은 단상 글을 쓴다. 영화 속의 그가 눈에 보이는 것을, 그 날 느꼈던 감정을 시로 옮겨 적듯이 나 역시 오늘 내가 겪었던 일에 대한 것을, 혹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느꼈던 것들을 하나 둘 글로 옮기는 나름의 취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영화 안에서 계속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시를 써 내려가는 패터슨을 보며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낌과 동시에 그의 일상에 소소한 행복과 활력을 주는 존재가 '시'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요즘의 내가 그러하기에.
자신의 생각을 처음 글로 옮기는 것은 생각보다 힘이 든다. 어떤 말을 써야 할지, 혹시 맞춤법이 틀리진 않았는지, 이 문장은 좀 어색하다 라며 스스로 나름의 검열을 하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처음 내 마음을, 감정을 글로 옮기는 작업은 참 더뎠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금은 습관처럼, 나중에는 흥미로운 취미처럼 글을 쓰게 되었던 것 같다. 나의 이런 마음이 영화 속 패터슨의 마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엔 아직 좀 부족하다 느껴지지만 자기 스스로의 만족감을 가지며 쓰게 되는 스스로를 위한 예술.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던 말 하나가 있다. '남들은 모르겠지만,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이라는 말이었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더라도, 그래서 보잘것없다 느껴진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예술을 품고 살아가는 것 같다. 패터슨은 작은 노트에 자신의 시를 적어 내려가고, 그의 아내 로라는 집 안을 캔버스 삼아 곳곳에 자신의 예술을 그려놓는다. 패터슨이 매일 가는 작은 바의 사장은 '패터슨'과 관련된 사람을 하나씩 모아두는 것처럼. 무척 소소하고 사소하더라도 각자의 취미생활과 예술을 하나씩 담아두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예를 들어 독립을 하게 되어 작지만 나만의 공감이 생긴 그곳에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나만의 세상을, 예술을 채워 넣는 것처럼 말이다. <패터슨>의 영화 안에선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의 예술을 찾아 살아가는 듯 보여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것으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한다 하여도 그것을 하는 내가 행복하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한 번쯤을 봤을 법한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하다. 매일 출퇴근할 때마다 만나게 되는 버스 기사님부터 시작해서, 항상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듯 보이는 단골집 사장님, 즐겨가는 카페에서 한 번도 인사해 본 적 없지만 얼굴이 익은 사람들, 타이밍이 맞지 않은 사랑에 가슴 절절해하는 친구까지. 내가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던 사람들의 일상이 이렇지 않을까, 이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영화 속에서 살고 있는 인물들은 정말 현실에서도 살아있는 듯 느껴졌다. 패터슨은 새로 받은 노트에 어떤 시를 써놓았을까. 로라는 기타를 어디까지 배웠을까. 바의 사장님은 또 다른 패터슨을 찾았을까. 마핀은 여전히 패터슨에게 질투를 하고 있을까. 아주 시시콜콜한 그들의 일상이 궁금해질 정도로 영화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이런 일상적인 모습을 연기로 표현하는 데에 과함을 표출한 인물은 전혀 없었다. 말 그래도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아주 일상적이고 담담한 연기들의 향연이었던 것 같다. 그들의 '하는 듯 안 하는 듯한' 연기가 영화의 몰입과 울림을 더해주었던 것 같다. 과한 몰입과 폭발적인 연기가 큰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나는 그리 많은 대사도, 그리 많은 감정 변화도 없어 보이는 영화가 주는 잔잔한 감동이 더 크고 깊은 위로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는 나에게 지금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아끼는 영화 <프란시스 하>와 얼마 전에 봤던 <로건 럭키>에서 짓궂은 모습,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연기했던 아담 드라이버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일상적이지만 너무 매력이 없지도 않고, 낭만이 가득하지만 현실이라는 땅에 딱 달라붙어 있는 모습을 잘 구현해낸 듯 보인다. 그리고 그의 아내로 나오는 로라 역의 골쉬프테 파라하니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굉장히 매력적인 마스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녀 역시 영화에 잘 묻어나는 연기를 선보였는데 그 연기 속에서 인물이 갖고 있는 사랑스러운 기운이 물씬 풍겨 나왔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인물, 마핀. 영화 안에서 큰 사건을 만들어내는 인물인데 어쩌면 이렇게 연기를 잘 하는지 놀라워하면서 봤던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엔 이렇다 할 정답이 없다.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지. 그렇기에 스스로가 원하고 좋아하는 방향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 같다. 나는 이 영화가 그런 말을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단한 업적을 남긴, 역사의 큰 획을 그은, 꼭 이름을 남겨야지만, 그럴듯한 결과가 나와야지만 비로소 좋은 삶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패더슨이 성냥갑을 보고 쓴 시처럼, 어린아이가 '비'에 대해 쓴 시처럼, 우연히 폭포 앞에서 만난 일본 시인의 '때론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라는 말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수많은 빈 페이지를 각자의 예술을 꾹꾹 채워놓은 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삶의 예술이지 않을까 싶다. 줄이 그어져 있는 노트가 아닌,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무지의 노트 같은 우리의 삶에 우리가 각자의 예술을, 시를 적어 내려가며 살아가는 것. 그러니 우리의 삶은 곧 시이고, 시는 바로 우리의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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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