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 Apr 08. 2018

<82년생 김지영>은 죄가 없다

끝내 들어주고 공감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이 책을 알고 있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읽는 '베스트셀러'라고 하길래, '나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 '막연한'이라는 단어처럼 나는 이 책을 그렇게 대하고 있었다. 조금은 무관심하게. 그러다 다시 이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건,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 기사들을 통해서였다. 그저 책 한 권 읽었을 뿐인데, 누구나 구매할 수 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고 하는 그 책이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길래 이렇게 시끄러운 것인가 궁금했다. 다시금 호기심을 갖게 되면서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위에 써놓은 것처럼, 나는 여성임에도 여성문제에 아직은 문외한, 관심은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보통 사람에, 보통 여성에 속해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사실 그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조금은 겁을 먹고 있다. 내가 뭐라고 겁을 먹을까 싶지만 말이다. 겁을 먹고 있음에도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말하자면, 책을 읽었으니까 읽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쓰는 '책 리뷰'이고,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글을, 이 리뷰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열망이 커서였다. 어떠한 것을 봤을 때, 어떠한 것을 읽었을 때 '공감'이라는 것이 들 때가 있다. 그 '공감'이라는 파동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각자의 마음속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책을 통해 나 역시 깊게 '공감'되었던 부분 있었고 그것에 대해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물론, 이 책의 모든 부분이 공감 갔던 것은 아니다. 공감을 갔던 부분도 있었고, 공감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다. 아직은, 이라는 말을 한다면 비약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경험해보지 못해서 공감하지 못한 부분도 꽤 있었다. 서두가 무척 길었지만 요즘 그렇게 핫하다는 <82년생 김지영>을, 이 책의 리뷰를 시작해보려 한다.






 이 책은 우선 무척 빠르게 읽을 수 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시간이 많이 필요한 편인데, 이 책은 한 3시간 정도만에 다 읽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이 책은 읽기 쉽게 이야기를 전달해준다. 김지영 씨가 겪었던 일을 정신과 의사가 서술하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내용은 꽤나 직접적인 서술들이 들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아주 담담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들었던 말이 있다. 여자와 남자를 갈라놓는다, 분란을 조장시킨다는 말들이었다. 항상 꼬리표처럼 달려있던 그 말.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난 것은, '여성이 이렇게 힘들게 살아'라는 말을 강요한다기보다는 여자와 남자의 다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 때부터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은 정해져 있었다. 그런 관습과 습관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온 사람들에겐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사람들 역시 변했다. 그렇기에 이제 과거와 현재의 달라진 '서로의 다른 점'에 대한 이야기가 이제야, 이제서야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은 여성 나름대로, 남성은 남성 나름대로 각자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이 그 서로 간의 이야기를 무조건 배제시키고 '여자만 부당해'라는 말을 전하고자 한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저, 같은 상황에서 겪는 서로 다른 경험들을 이야기했고, 책을 읽는 사람들은 '아,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이런 마음을 갖게 되는구나'라고 듣기를 바랐다고 생각한다. 그저 들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공감해주길 바라는 것뿐이다. '너보다 내가 더 힘들어'라는 말보다, '아, 너에겐 이런 고충이 있구나'라는 공감과 들어줌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크게 공감했던 부분은 3가지 정도가 있었던 것 같다. 첫 번째로는 거의 초반쯤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렇게 인기가 많은 편도 아니었고, 사람들이 따를 정도로 대단한 매력 또한 가지고 있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기에 남성과 관련된 기억이 많지 않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어릴 적 생각나는 일이 하나가 있다. 남자아이가 나를 '아플 정도로' 괴롭혔던 기억이다. 이유 없이 나에게 욕을 하고, 내 머리를 잡아당겼던 기억. 그래서 그 남자아이와 눈 앞에 보이면 도망가기 바빴다. 차라리 먼저 피하자는 생각으로 그 남자아이를 일부러 피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내 친구가 말했다. 책 속에 선생님이 했던 말처럼. '걔가 너를 좋아하나 봐'라고. 



 조금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나를 좋아한다고? 그런데 왜 나를 괴롭히지'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를 괴롭힌다'라는 사실보다 '나를 좋아한다고?'라는 그 가정의 말에 더 큰 방점이 찍혔다.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나를 좋아하니까 괴롭힐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그 어린 나이에 했던 것 같다. '부끄러우니까, 표현이 서투니까 그렇게 표현하는 거야'라는 설득 아닌 설득을 당해버린 것이다. '그렇구나, 그럴 수 있구나'로.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당연히 알게 된다. 여성과 남성을 떠나서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서 관계를 맺어갈 때, '아직 서툴고, 부끄럽고, 잘 모르니까'라는 말로 나를 괴롭히는 사람보다 나를 배려해주는 사람에게, 나를 아껴주는 사람에게, 나를 위해주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두 번째로 공감이 갔던 이야기는 가족들의 대화 속에서였다. 나는 1남 1녀 중 막내이다. 가족들에서 꽤나 이쁨을 받고 컸고 무척 다정한 남매까지는 아니지만 오빠와 대화도 나누는 그저 지극히 평범한 '현실 남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 아빠도 그렇고, 우리 엄마도 그렇고 '우리 아들'이라는 말을 달고 사시는 편도 아니었다. 당연히 남자와 여자로서 차별을 받으며 살아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이 부분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요즘엔 요리를 하는 유명한 셰프들이 많기에 요리를 하는, 음식을 만드는 남성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부엌'에 있는 여성을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요리를 하고 음식을 하는 여성을 넘어서, '부엌'에 있는 여성을 자연스럽게 여긴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가정에서 여성이, 엄마가, 딸이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 풍경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말일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아주 자연스럽게 엄마를 많이 도우는 편이다. 특히나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자발적으로 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부엌을 찾아가진 않았다. 그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그리고 내 엄마를 도와주고 싶어서, 내 엄마가 힘들어하니까 자연스럽게 옆자리를 찾아가곤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저 사람. 그중에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래서 그냥, 여자인 사람. 그리고 우리 엄마도 사람. 나와 같은 성별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래서 그냥, 나와 똑같은 여자인 사람. 엄마가 힘드니까, 사람이 힘드니까 사람인 내가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도와주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도와주는 것과 오빠가 도와주는 것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오빠는 '특별히 해주는' 도움이었고, 나는 '당연히 해주는' 도움이었다고 해야 할까. 오늘은 특별히 해주는 것이었고 오늘만 해주는 일이었다, 오빠에겐.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되었던 부분이 있었다. '몰카'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니, '불법 촬영'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불법 촬영'을 직접적으로 당한 적은 없다. 그러니까 내 앞에서 혹은 뒤에서, 누군가가 휴대폰을 들이밀어 내 몸을 찍는 일을 당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하지만 그 무수한 구멍들은 화장실을 갈 때마다 항상 마주하게 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구멍들 앞에서 나는 일을 볼 때가 정말 많았다. 그래서 화장실에 갈 때마다 그나마도 구멍이 덜 나있는 곳을 찾거나, 그것도 안되면 휴지를 뜯어 일일이 구멍을 막고 일을 보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일을 보기 했다. 그러니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찍혔을 수도 있다. 일부러 찾아본 적도 없고, 아직까진 다행으로 누군가에게 '너 얼굴이 찍혔어'라는 말도 듣지 않고 살고 있다.



 글쎄, 사실 나는 이 부분을 보고 생각했다. 정말 저렇게 생각할까,라고. 정말 나는 그저 보기밖에 안 했다고, 그저 공유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을 받을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궁금했다. 내가 맘에 들지 않는 사진을 누군가가 공유하고 그 사진을 보며 웃기만 해도 불쾌감을 느끼고,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사람인데 자신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동의도 없이 불법으로 찍어 보는 것이 그저 '보내주니 봤다'라는 말로 가볍게 끝낼 수 있는 일인 것일까. 아, 여기서 나는 '불법 촬영을 하는 사람'을 남성으로 국한시켜서 말하지 않았다. 언제였는지까진 생각나진 않지만, 여성이 여자 탈의실에서 불법 촬영을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으니, 여성과 남성 모두 가리지 않고 '불법 촬영을 하는 사람'은 모두 죄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어떠한 죄의식 없이 보고 공유는 하는 '사람들' 역시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그저 '재미'로 시작된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삶을 지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선 엄마로서 갖는 엄마의 고충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나는 아직 미혼이어서 결혼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미리 비난으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돈을 벌고 경제적인 생활을 하는 일만큼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일 역시 그리 쉽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다. 어떻게 아냐고. 나는 돈도 벌어보고 엄마 대신에 집안일도 해본 적이 있으니까. 물론,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만큼 경험해봤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돈을 버는 일과 집안일을 모두 경험해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하는 일, 사람과 부대끼며 하는 일에 대한 평가만큼 집에서 하는 일에 대한 평가도 해주어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저 돈을 벌고 있지 않으니까, 집에서 편하게 일 할 수 있으니까, 라는 말로 폄하할만한 일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엄마가 항상 하는 말씀이 있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티가 별로 안 나는데, 안 하면 티가 확난다고. 그만큼 집안에 있는 일들은 너무도 당연한 패턴의 연속이지만 그만큼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니까.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하는 말들이 있다. 여성만 힘든 것이 아니라고, 그저 여성 우월 주위로 가는 길이라고. 글쎄, 어떤 면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의무를 다 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대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것은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이지, 여성 때문에 생겨난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어떤 면에서 보면 남성은 남성다움을 강요받고, 여성은 여성다움을 강요받으면서 살아가게 한, 끝내는 그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가장 우선으로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남성의 문제를 '사소한 문제'로 치부할 생각은 없다. 남성들 역시 내가 알지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무수한 일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의 문제는 그보다 조금 더 무겁다는 생각은 한다. '생존'이 걸렸으니까.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이기에, 여성은 더 큰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과격해지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이기에, 여성의 문제를 더 유리하게 대변한다기보다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소외되는 우선순위는 여성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다. 






 끝내는 '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말의 반복인 것 같지만 말이다. 사람이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서로의 이야기하기만 바쁘면, 상대방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어떠한 이야기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다. 그저 내가 더 불행해, 내가 더 힘들어, 라는 말 밖에 남지 않고 감정만 상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좋은 대화는 끝내 들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무조건 여성의 문제를 들어달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씩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 조금은 들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여성의 문제를 남성이 듣고 또, 남성의 문제도 여성들이 귀 기울여 들어준다면 어떠한 것이, 어떠한 사회적 시스템이 문제인지 더 정확하고 명확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사월 인스타그램 


작가의 이전글 안녕, 나의 13년 지기 친구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