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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May 04. 2018

아무런 대가 없이 나를 보듬어주었던 건 가족뿐이었다

<미스 리틀 선샤인>_ 원래 가족이 이런 거 아니겠어.

 내가 즐겨보는 영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영화당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보통은 두 편의 영화를 선정해서 대략적인 줄거리와 함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30~40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전적으로 이동진 평론가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가 출연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가 추천했던 영화는 실패한 적이 거의 없다. 물론, 나와 취향이 맞지 않아서 힘들었던 영화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얻는 것들이 꼭 하나씩은 담겨있었다. <미스 리틀 선샤인>이라는 영화 역시 영화당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니, 사실은 알고는 있었지만 '언젠가 봐야지'정도로만 남아있던 영화였는데, 영화당에서 나오는 줄거리와 추천의 말을 듣고 찾아보게 되었다. 좋았다, 아주. 이틀 연속 찾아볼 만큼.






미스 리틀 선샤인

 영화의 기본적인 색감에서 느껴지듯이 이 영화는 일단 무척 사랑스럽고 유쾌하다. 그렇게 느끼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인물의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초반, 하나하나 각자의 사연을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소개하는데, 개개인의 캐릭터들이 워낙 입체적이다 보니 처음에 몰입하기가 아주 좋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는 인물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정말 하나같이 쎄 보이지만 어딘가 조금씩 어설퍼보이는 구석들이 존재한다. 나는 이 어설퍼보이는 인물들의 모습 속에서 유쾌함과 귀여움, 더 나아가 사랑스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영화 보면서 장면 장면마다 우리 가족의 모습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은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특이한데, 그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가족의 이야기는 어딘가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식사를 하며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버스 안에서 일어나게 되는 다툼 속에서, 영화의 끝에서 보이는 가족의 모습 속에서 살짝살짝씩 우리 가족의 얼굴들이 오버랩되었다. 그렇다는 건, 보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족'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과 감정들을 잘 담아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대학 강사인 가장 리처드(그렉 키니어)는 본인의 절대 무패 9단계 이론을 팔려고 엄청나게 시도하고 있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 이런 남편을 경멸하는 엄마 쉐릴(토니 콜레트)은 이 주째 닭날개 튀김을 저녁으로 내놓고 있어 할아버지의 화를 사고 있다. 헤로인 복용으로 최근에 양로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앨런 아킨)는 15살 손자에게 섹스가 무조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전투 조종사가 될 때까지 가족과 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아들 드웨인(폴 다노)은 9개월째 자신의 의사를 노트에 적어 전달한다. 이 콩가루 집안에 얹혀살게 된 외삼촌 프랭크(스티브 카렐)는 게이 애인한테 차인 후에 자살을 기도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방금 퇴원한 프로스트 석학이다. 마지막으로 7살짜리 막내딸 올리브(애비게일 브레슬린)는 또래 아이보다 통통한(?) 몸매지만 유난히 미인대회에 집착하며 분주하다.
 그러던 어느 날, 올리브에게 캘리포니아 주에서 열리는 쟁쟁한 어린이 미인 대회인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 출전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리고 딸아이의 소원을 위해 온 가족이 낡은 고물 버스를 타고 1박 2일 동안의 무모한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좁은 버스 안에서 후버 가족의 비밀과 갈등은 점점 더 커져만 가는데.. 할아버지와 올리브가 열심히 준비한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의 마지막 무대는 가족 모두를 그들이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과연 후버 가족에겐 무슨 일이 생긴 것 일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항상 내 옆에 존재하기 때문에 무심하게, 가끔은 함부로 대하는 대상이 있다. 바로, 가족이다. 당연하다 여기기 때문에 무신경하게 대하는 관계. 우리 가족도, 영화 속 가족도 그랬다. 영화 속 인물들은 가족이라는 관계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접점이 없어 보인다. 함께 밥을 먹고, 많은 대화를 나눠도 대화의 끝은 항상 서로의 대화를 듣지 않는 무신경함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게 멀어지려는 찰나, 막내딸 올리버의 미인대회 출전을 위해  가족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함께 차에 오르게 된다. 각자의 사연과 상처를 안은 채. 권위적인 아버지, 중간 역할을 하는 어머니, 사춘기가 온 듯 삐딱한 아들, 가족의 분위기 메이커를 맡고 있는 딸, 고집불통 할아버지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삼촌까지. 설명만으로도 비범함을 지니고 있는 가족들의 사연이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굉장히 재미있다. 잘 만들어진 인물들이 어떻게 대화를 만들어가는지, 더 나아가 캐릭터를 연기하며 만들어내는 연기의 앙상블이 어떠한지 아주 흥미롭게 볼 수 있다. 함께 차를 타고 길을 떠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처음엔 하나로 모아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인물들이 하나 둘 각자의 사건을 맞이하게 되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천천히 서로를 이해해나가며, 진정 '가족'이라 말할 수 있는 유대감을 갖기 시작한다.  


 사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이 영화 속 인물들처럼. 내가 즐거울 때, 행복할 때, 신이 날 때보다 내가 더 가족을 찾게 되었던 건 힘들 때였다. 내가 무척이나 아플 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을 때, 위로받고 싶을 때 찾게 되는 존재. 혹시나 나를 받아주지 않을까 봐,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까 봐 걱정하지 않고 기댈 수 있는 존재. 언제나 나를 안아주는 존재. 그렇더라, 가족이. 정말 대가 없이 나를 안아주었던 건, 나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던, 그래서 나조차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가족이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나를 보듬어주었던 건 가족이었다

 가족은 누군가가 힘들 때 진가를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똘똘 뭉친다, 그렇게 어색했던 사이도. 정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던 영화 속 인물들도 누군가가 상처받고, 아파하고, 예상치 못한 이별을 맞이하게 되고, 혹시나 상처받을지 모를 일을 함께 겪어가면서 천천히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이 영화를 봤던 많은 분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 나는 영화 안에서 차를 탈 때마다 행했던 행동들이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초반, 차가 고장 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반 정도 고장이 난다. 동력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속도를 만들어내야지만 차에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차를 탈 때마다 운전석의 한 사람을 제외하고 온 가족이 밖으로 나와 차를 뒤에서 밀어줘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동력을 받게 되면 하나 둘, 차 안에 몸을 싣게 된다. 이 모습이 우리의 가족 모습 같았다. 한 명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뒤에서 밀어주는 것.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운전석에 앉으면 가족들은 운전석에 탄 사람을 위해 기꺼이 뒤에서 밀어주는 것. 그리고 앞을 향해,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이자, 가족이라는 모습에서만 느낄 수 있는 모습 같았다.


사실 너를 사랑하고 있어

 사실 우리는 가족들을 사랑하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소리 같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된 것 같다. 누군가가 꿈을 위해 달려갈 때 힘껏 소리 내어 응원하는 것도, 마음에 상처가 났을 때 보듬어주는 것도, 예상치 못한 이별을 하는 순간 함께 이겨내는 것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있어서 나눌 수 있는 마음이니까 말이다. 이 영화는 표현이 서툴러서, 쑥스러워서, 민망해서 뒤로 미루고 있던 마음을 가슴 찡하게 표현해낸다. 마지막 이 가족들의, 이 캐릭터들의 앙상블이 최고조로 표현되는 장면 한 가지가 있는데, 살짝만 말하자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다. 그 장면은 정말 유쾌하다. 하지만 웃기만 하면서 지나갈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민망함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처럼 느껴졌다. 너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너를 지키기 위해서, 너의 꿈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함께 할 수 있는 사랑의 춤 같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건 어떠한 관계도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모두 다 당연한 건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에선 당연한 건 정말 하나도 없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이해해야지만 진정 가까워진다. 우리는 보통 아니, 나는 사실 가족에겐 그러한 마음을 덜 가졌던 것 같다. 이름 그대로 가족이니까, 가족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알게 되는 건 가족도 타인만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피를, 같은 성을 가지고 있다고 모든 것을 다 알 수도, 당연하게 모든 걸 이해할 수도 없으니까. 타인에서 가지는 마음가짐을, 조심스러움을, 너그러움을 가족에게도 적용한다면 우리는 가족과 더 즐겁고 행복하게, 오랫동안 웃으며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5월과 어울리는 영화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들 한다. 그걸 노리고 이 영화를 추천한 건 아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5월이 가기 전에 가족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면 좋을 것 같다.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영화니까 말이다. 웃으며 즐겁게 보다가도 마지막에 눈물을 찔금 흘리게 하는 가슴 따뜻해지는 영화. 그래서 가족의 따뜻함을 대리 만족하고 싶을 때마다 찾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아플 때 혹은 무언가를 실패했을 때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영화 속 대사를 통해서. '자신이 고통받았던 날들이 자기 인생의 최고의 날들이었다고. 그때가 자신을 만들어 낸 시간이었으니까'. 돌아보면 그랬다. 그렇게 믿고 싶지 않지만, 끝내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것도 상처받았던 과거의 나였으니까. 영화를 보며, 영화의 대사를 곱씹으며 위로와 위안을, 그리고 가슴 따뜻해지만 사랑스러움도 느끼게 해주었던 영화. 나의 영화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영화. 그대들에게도 내가 느꼈던 그러한 따뜻함과 위안을 이 영화를 통해 느끼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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