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월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 May 30. 2018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 떠나는 두 사람의 여정

<델마와 루이스>_ 이렇게까지 깨어있었던 적은 처음이야.

 나는 '인생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들이 굉장히 많은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가 있다. '어떤 영화를 좋아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꼭 꺼내놓는 영화. 바로, <델마와 루이스>이다. 흔히들 이 영화를 두고 하는 말이 있다. 여성영화의 마스터피스라고. 나는 이 말에 굉장히 동의하는 바이다. 여성을 굉장히 입체적으로 그려냈으며, 무엇보다 시대적으로, 그리고 현재까지도 현존하고 있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직설적이고도, 대담하게 그리고 통쾌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무척 사랑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사랑하고 있다. 그렇게 마음에 품고 있던 이 영화를 얼마 전, 영화관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델마와 루이스

 처음 이 영화를 알게 된 계기를 나는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그 장면은 바로,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마지막 엔딩 장면이었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차와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광야의 풍경. 그것이 내가 처음 <델마와 루이스>라는 영화를 알게 된 계기이다. 이 장면을 보고 궁금증이 생겨 그 장면이 들어간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고, 영화를 시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말했다. 왜 나는 바보같이 이 영화를 이제 알게 되었을까,라고. 이 영화의 주된 주제는 여성에 대한 것이다. 요즘 굉장히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페미니즘의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두고 남녀 성차별에 대한 설전을 벌이고자 쓰는 리뷰가 아니다. 그저, 영화적으로 그리고 한편으론 매우 사실적으로 나열해놓은, '여성'으로서 살면서 겪게 되는 상황을 범죄와 버무려놓은, 한편의 통쾌한 여성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할 뿐이다. 



늘 당하기만 하던 그녀들, 세상 밖으로 나오다!
사랑스러운 ‘델마’와 ‘루이스’의 거침없는 휴가에 동참하라!
상상 그 이상의 우아하고 짜릿한 일탈! Let’s Keep Going~

보수적인 남편을 둔 가정주부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루이스’(수잔 서랜든).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함께 휴가를 떠난 두 친구는 휴게소에서 그녀들을 강간하려는 한 남자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되고 즐거웠던 여정은 순식간에 끝을 알 수 없는 도주가 되어버린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뒤로 한 채 사막을 달리며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그녀들.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멕시코로 향하는 길목에서 매력적인 카우보이 ‘제이디’(브래드 피트)가 나타나게 되고,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델마’를 지켜보며 ‘루이스’는 조금씩 불안감이 커진다.
한편, 강력범으로 수배가 된 그녀들은 좁혀오는 수사망과 함께 점차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되는데…



이런 여성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글을 조금씩이라도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글을, 이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지 않을까. 사실 나는 그렇다. 언제나 내가 머릿속에, 가슴속에 담고 있는 영화의 분위기와 이야기는 <델마와 루이스>와 아주 맞닿아있다. 이 영화는 1991년에 만들어졌다. 말이 되는가, 이런 영화가 1991년에 만들어졌다니. 요즘 나오는 영화들과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는다. 아니, 내가 봤던 영화들 가운데 아직까지 이 영화만 한 영화를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생영화라 말할 수 있는 영화 리스트에 떡하니 올라와있는 것일 테지만. 우선, 이 영화는 잠시도 한눈을 팔게 만들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하면, 끝을 향해 무서운 속도와 방향으로 달려가기 때문에 그 영상을 보고 있는 관객들 역시 오롯이 영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는다. 그만큼 굉장한 몰입력을 가지고 있다. 일단, 이 영화는 도입부부터 인물들의 매력이 철철 흘러넘친다. 절친처럼 보이는 델마와 루이스의 대화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나오게 된다. 대체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억지스러움 없이 물 흘러가듯 이어져나간다. 사건이 발생하고, 도망치는 와중에 또 다른 사건을 맞이하게 되면서 이야기의 탄력성과 스피드를 배가 시켜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의 핵심을 잘 표현하고 있는 배우들의 호연 역시 무척이나 돋보인다. 사실 나는 두 배우의 다른 작품을 본 적이 없다. 오롯이 이 영화를 통해서만 두 배우의 연기를 봤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미 그들은 이 영화를 통해서 인생 연기를 선보였기 때문에. 전적으로 내 기준에서 일 테지만 말이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 떠나는 두 사람의 여정

 이 영화는 한편의 성장 영화이다. 매우 뼈 아픈 성장영화. 나는 개인적으로 어른이 되었다고, 성장이 멈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신체적인 성장은 이미 끝이 났겠지만,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정신적인, 내면의 성장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고 믿는 편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성장을 바탕으로 한다. 이미 가정을 꾸리며 사는 여자와 직접 돈을 벌며 살아가던 여성이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그 여행을 통해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자신이 억압하고 있던 진정한 자신의 자아를 찾게 되는 영화. 물론 나는 그들의 범죄를 타당하다 말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선택은 그것뿐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여성'이니까, 라는 말로 면죄부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처했던, 비교적 약하고 여러 가지의 편견과 억압을 가지며 살아가던 여성이 할 수 있었던 최후의 수단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영화이기 때문에 더 타당성을 갖게 되는 면도 있겠지만. 영화는 영화이니까. 하지만 그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다른 점에 대해, 성별에 대해, 편견과 선입견에 대해 각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두 인물의 각성에 대한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델마는 첫사랑과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남성은 전형적인 가부장의 모습을 띄고 있다. 아침부터 여자의 큰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며 한소리를 하는, 델마의 자아와 자율권을 굉장히 억압하는 인물로 나오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훈련이 되어서인지 델마는 극초반 순종적인 모습을 띤다. 아마 그녀가 남편과 살면서 가장 크게 용기를 낸 부분이 루이스와 함께 여행을 가게 되는, 그 선택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루이스는 델마에 비해 비교적 깨어있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자신이 직접적으로 일을 하며 경제력을 가지고 있고, 처음 여행을 계획한 것도 루이스였다. 그리고 영화의 사건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던 그 일에서도 저항의 모습을 제일 먼저 보였던 것 역시, 루이스였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고 후반으로 다다를수록 그들의 '깨어남'과 '저항력'은 비례해졌다가, 가끔은 반대적으로 변하기도 하면서 영화의 흥미를 더욱 증폭시키곤 한다. 



이렇게까지 깨어있었던 적은 처음이야

 두 사람이 각성하게 되는 계기가 아주 여러 번 나오게 되는 데, 대부분 다양한 남성을 만나게 되면서 각성을 시작하게 된다. 왜 하필 각성하게 만드는 대상이 남성이었는가, 라는 점만 보아도 이 영화가 두 인물을 통해 어떠한 이야기를 분명히 전하고 싶었는지, 충분히 눈치챌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그런 말이 나온다. 델마라는 인물이 그 상황을 자초한 것이 아니냐고. 델마가 그러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시작하게 된 것이 아니냐고. 아마 이러한 질문을 수없이 받았던 수많은 순간들을 직간접적으로 보게 되면서 이 이야기를 쓰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씌어지는 수많은 프레임과 억압, 그리고 편견들이 이 영화와 사건의 발단이며, 이 영화가 본격적으로 나누고자 하는 대화의 주제가 되지 않을까. 영화 속에서 보편적인 여성으로 대표되는 델마와 루이스라는 인물들이 수많은 사건과 사고, 범죄를 저지르면서 여성으로서의 겪게 되는 불합리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며 끝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 멕시코로 도망치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국 그녀들은 그 도망에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정말 끝을 향해, 내가 처음 알게 되었던 그 장면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런데 나는, 그리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그 끝을 마냥 절망적이라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인 내 생각을 말하자면, 나는 그랬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두 사람의 인생은 끝이 났겠지만, 그들이 스스로를 각성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한편으론 정신적인 각성의 시작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끝맺음까지 완벽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영화관에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큰 스크린으로 보았을 때의 기분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황홀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조금 과장해서 전율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그 장면을 보는 동안 잠시 숨 쉬는 것을 까먹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큰 스크린에서 봤던 마지막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



나에게도 이런 친구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델마와 루이스는 많은 남성을 통해 스스로를 각성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에서 보자면, 델마는 루이스로 인해, 루이스는 델마로 인해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하고 더 나아가 각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내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많은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만약, 루이스가 그 일을 당하고 있는 델마를 외면했다면. 네가 더 조심했어야 했다고 다그쳤다면, 이 영화는 아마 시작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루이스 역시 남자를 죽이고 난 뒤, 델마가 그 일에 대해 책임전가를 했다면, 바로 경찰서에 찾아가 자백을 했다면, 이 영화 속의 대사처럼 답답하고 어이없는 법정 영화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끝내 내 옆에 존재하는 이의 생각과 행동력에 따라 나의 인생의 방향과 생각이 많이 변화할 수도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들자, 델마와 루이스와의 관계가 몹시 부러워졌다. 나에게도 그러한 사람이, 그러한 관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내가 델마나 루이스 같은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 안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나의 진정한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겐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더욱 성장하는,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무척 좋은 영화이다.






-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사월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런 대가 없이 나를 보듬어주었던 건 가족뿐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