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월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 Jun 29. 2018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 루시!>_ 괴상한데 자꾸 마음이 간다.

 내가 봤던 다양한 영화들 중 쉽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영화들이 몇몇 존재한다. 그러니까, 분명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게 무슨 내용이지', '왜 이렇게 전개가 흘러가는 거지', '아, 제발 그렇게는 하지 말아줘'라고 속으로 외치며 보고 있었는데, 그래서 이 영화 별로다, 생각하며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영화가 끝난 뒤엔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을 울렸던 영화. 좋고 싫다, 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렇게 쉽게 단정 지을 수 없었던 영화. 아주 가끔 그런 경험을 하게 해줬던 영화들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이 영화 그러한 울림을 전달해줬다. 보는 내내 내가 생각한 느낌이 아니라 조금 실망하면서 봤지만, 이상하게도 다 보고 나니 또 묘하게 생각나고 좋았던 영화.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계속 곱씹게 만들었던, 그런 영화.






오 루시!

 이 영화는 정말로 아무런 정보 없이 보러 갔다. 얼마나 정보가 없었냐면, 이 영화가 일본 영화였는지도 몰랐을 정도였다. 사실 조쉬 하트넷이 주인공이고, 서브로 일본 배우가 나오는 미국 영화인 줄 알았다. 그렇게까지 정보가 없었는데도 이 영화를 보러 갔던 이유는, 요상한 포스터와 조쉬 하트넷의 존재, 그리고 영화를 홍보하는 아주 짧은 문구 때문이었다. 그 문구의 정확한 문장이 생각나진 않지만, 감정을 서서히 물들이는 영화 같다는 인상을 갖게 만들어줬던 문구였다. 그래서 그 문구처럼 이 영화 <오 루시!>는 그런 감정이 짙게 깔린 영화 일거라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예상했던 영화와 무척 달랐다. 그래서 처음엔 좀 당황했고 보는 내내 이게 무슨 내용이지, 생각하다가 이내 이상하게도 이 영화에 빠져버렸다. 이 영화는 무척 독특하다. 흔히 일본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유머 코드들이 속속 들어가 있지만, 보편적이지 않다. 또 그렇다고 완전 다르지도 않다고 해야 할까. 새롭고 독특해서 예상되지 않았는데, 또 예상 가능했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어떠한 단어로도 확실히 이 영화를 표현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고 난 뒤엔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감성이 이미 마음에 출렁거리고 있었다.


 

 안녕? 나는 사랑에 빠진 루시라고 해!
 친구도, 가족도, 사랑도 없는 외로운 중년 여성 세츠코.
 어느 날, 엉뚱한 조카 미카의 권유로 영어 학원을 등록하게 되고
 그곳에서 꽃미남 영어강사 '존'에게 첫눈에 반한다.
 금발의 가발을 쓰고 '루시‘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된 그녀.
 세츠코는 전과는 달라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하지만,
 그녀에게 처음으로 설레는 감정을 일깨워 준 존은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 버린다.
 상심도 잠시, 세츠코는 오랜만에 만난 사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과감히 미국행을 결심하는데…   
 세츠코는 과연 진짜 사랑을 붙잡을 수 있을까?



변두리의 사랑일지라도

 이 영화는 분명 사랑에 관한 영화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상처의 치유, 관계의 치유에 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론 각성의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초반 세츠코는, 그러니까 루시는 감정에 무감각한 사람처럼 보인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아주 충격적인 일을 바로 눈 앞에서 경험했음에도 무척이나 태연한 얼굴로 회사에 출근을 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혼자만의 동굴 같은 집에서 조용히 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 모습들을 보면 초반의 루시는 무수한 관계 속에 들어가 있지만, 또 역설적으로 그 어떠한 관계도 맺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무감각하고 무덤덤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녀에게 아주 찰나의 새로움이 찾아오게 되고 그녀는 그 새로움에, 관계에, 사랑에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한다. 바로, 루시라는 이름을 얻게 되면서부터. 조카의 부탁으로 우연히 찾아간 요상한 분위기의 영어학원에서 만나게 된 존. 다짜고짜 세츠코를 껴안으며 인사를 나누고 뽑기를 통해 얼떨결에 얻게 된 루시, 라는 새로운 이름. 그리고 그 이름과 함께 뽀글거리는 가발을 쓰며 진행된 수업에서 존이라는 사람에게 호감을 갖게 된 루시. 세츠코는 그렇게 새롭게 루시, 라는 이름을 부여받으며 그녀가 지금껏 외면해왔던 상처와 본능에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녀의 사랑은 굉장히 충동적으로 시작되고 급작스럽게 빠지게 된다. 그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변두리의 사랑일지라도 그녀는 불같은 사랑을 꿈꾸기 시작한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루시의 사랑은 참으로 처절하고 과감하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축복받지 못하는, 혼자만의 사랑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가슴이 아팠고 안쓰러웠으며 외로워 보였다. 존과의 아주 짧은 포옹으로 그녀의 삶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는데, 영화 안의 루시는 존을 만난 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존과 자신은 운명일 거라고. 수업의 일종이라고 하더라도, 너무나도 따뜻했던 존의 포옹이 무감각해서 차갑게 변해버린 루시의 마음을 천천히 사랑으로 물들게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루시는 이 포옹은 운명의 시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마음을 유추해서일까. 루시의 사랑은 보는 사람이 말리고 싶을 정도로 너무도 저돌적지만 그 마음과 반대로 계속해서 외면받고 만다. 자신의 조카와 연인이지만,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 차지하고 싶다는 강력한 마음으로 존에게 끊임없이 구애하는 루시. 자신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다는 듯이 안쓰러울 만큼. 그러나 루시는 존에게 있어서 그저 자신의 조카인 미카의 대체제일 뿐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루시의 애처로운 구애를 보는 내내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론 가슴이 절절해질 정도로 그 감정이 이해가 되었다.

 

 사람들은 아니, 사실 나는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세상의 중심이 나, 라서 나를 중심으로 모든 일이 일어나고 모든 일이 소멸되는 거라 착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한 시각을 갖게 되면 이런 착각을 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게 되는, 사랑하게 되는 관계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 일거라는 착각. 그 중심엔 언제나 내가 있어서 끝내 모든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진행될 거라는 착각. 그리고 그와 나의 관계는 남들과 좀 다르다고도 생각한다. 그 사람과 나의 관계는 굉장히 특별하다고.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사이에 흐르는 다른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고 있다고.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어긋나고 잘 이뤄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끝내 그 관계의 결론은, 그 관계의 주인공은 내가 될 거라는 간절한 착각. 루시의 마음이 이러지 않았을까. 자신의 언니에게 빼앗긴 옛 연인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사람은 존일 거라는 착각. 그래서 지금은 비록 조카의 남자이지만, 곧 내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란 간절하고도 열렬한 욕망. 그러나 루시는 끝내 알게 된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내가 그 관계의, 그 사랑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괴상한데 자꾸 마음이 간다

 이 영화는 정말 괴상하다. 도저히 예측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쏙 드는 인물도 하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간다.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루시의 사랑이, 그녀의 외로움이, 그녀의 처절함이 내가 살아냈던 어느 날의 한 모습 같아서, 한 감정 같아서, 한 순간 같아서 자꾸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정말 말없이 꽈악 안아주고 싶었다. 마지막 톰과 루시의 포옹처럼. 끝내 사람은, 사랑은 다른 사람으로,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노랫말이 있다. 이 영화와 참 어울리는 노랫말 같다고 생각했다. 친언니에게 빼앗긴 사랑을, 상처를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준 존에게 치유받고 또, 존에게 받은 상처를 톰에게 치유받게 되는 루시. 그녀는 존을 따라 자신의 팔뚝에 새겨놓았던 문신에 대해 톰에게 이렇게 말한다. 예전부터 있었던 반점을 지워버린 거라고. 그 반점의 존재는 언니에게 뺏긴 옛 애인과 함께 존의 존재도 들어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애달프지만 모든 감정을 쏟아냈던 지난날의 자신까지 포함해서.


 이 영화는 중간중간 이해되지 않는 부분과 설득되지 않는 부분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묘한 감성으로 관객을 설득시킨다. 나는 그랬다. 그 묘한 분위기에 설득당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며 살짝 당황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수위가 셌다는 점이다.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에 당연히 이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찾아보니 15세 관람가였다. 15세치곤 조금 수위가 센 것 같아서 부모님과 함께 보기엔 살짝 민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아주 작은 사담과 함께, 그럼에도 이 영화를 꼭 보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의 저면에 우울이 깔려있지만, 이상하게 위로가 되고 희망적이었다. 누군가의 아주 짧은 포옹으로도 누군가의 삶엔 빛이 비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던 영화. 내가 느꼈던 그 묘한 위로와 응원을 이 영화를 통해 당신도, 그대도 느껴봤으면 좋겠다.






-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사월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 떠나는 두 사람의 여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