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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pr 19. 2018

너는 봄 냄새를 맡아,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을 담을게

개와 꽃을 함께 찍어보았다

 봄이 되면 감자의 코는 바빠진다. 잠시 열어둔 현관문 사이로, 환기시키려 밀어놓은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냄새를 맡기 바쁘기 때문이다. 코를 벌렁벌렁거리며 냄새를 맡는 감자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바뀐 계절의 냄새를 연신 맡곤 한다. 나는 사실 조금 나쁜 주인이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산책을 자주 시켜주지 않기 때문에. 정말 피치 못한 사정이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귀찮다'는 이기적인 이유로 산책을 미루고 미룬다. 그렇게 산책이 미뤄질수록 감자의 코는 현관문 앞에, 창문 앞에 더 많이 머무르게 된다.


 




 나는 요즘 다시 '강아지 공부'를 시작했다. 한 프로그램을 선생님 삼아.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사람을 선생님 삼아서. 뒤늦게 재미를 붙인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반려견 행동 교정 프로그램을 보며 과거 감자가 했던, 혹은 요즘 가끔 하고 있는 행동들을 되짚어보며 '혹시 내가 잘못 행동한 것은 없었나' 곰곰이 생각해보곤 한다. 그 프로그램 속에서는 참 다양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이, 몸이 아픈 아이, 예민한 아이, 거친 아이까지 마음의 상처로, 몸의 상처로 지금의 모습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이야기는 가끔은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지만, 안타까움에 눈물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사는 아이들은 대부분 주인에 의해 그러한 점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관심해서 혹은 너무 사랑해서, 아니면 화를 내거나 짓궂게 장난을 쳐서 나타나게 된 행동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니, 사실 좀 반성했다. 내가 너무 못해준 거에 비해 감자는 참 잘 자라줬구나, 정말 착한 아이구나라고.


 나름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 예전보다 조금 더 자주 산책을 다니며 감자의 행동에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봄은 이미 왔고 곧 지나 갈터이니 봄이 지나가기 전에 꽃 냄새를, 흙냄새를, 바람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더 자주 세상을 보여주겠노라 다짐했다. 그런 마음이 들자, 그 날로 바로 감자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나섰다. 예전보다 감자의 걸음걸이에 맞춰 걷고, 냄새를 맡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주면서.


언니도 맡아봐, 냄새가 아주 좋아


 감자는 산책을 할 때마다 냄새를 맡고 밖을 구경하기 바쁘다. 그렇게 좋아하는 간식도 먹지 않고 연신 사람 구경을, 세상 구경을 하느라 나는 안중에도 없다. 그러면 나는 작전을 바꾼다. 그럼 너는 밖의 냄새를 마음껏  맡으렴, 나는 그런 너를 찍을게. 냄새 맡는 감자를, 사람 구경하는 감자를, 신호를 얌전히 기다리는 감자를, 뒤에서 잘 따라오고 있다 나를 쳐다보는 너를 사진으로 남길게. 오늘을, 지금의 우리를 기억할 수 있게. 먼 훗날 사진을 보며 너와 나를 추억할 수 있게, 너를 찍을게.  


 사진을 찍다 보면 욕심이 생길 때가 있다. 뭔가 더 예쁜 사진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일상적이고 그 일상 속에서 얻게 된 사진도 좋지만, 나름의 설정을 하며 남길 수 있는 소위 '인생 사진' 남기고 싶다는 욕심. 아, 감자는 '견생 사진'이겠구나. -나의 욕심의 결과물이 이러했다.


만세를 한 채, 눈보다 입과 코가 더 크게 나온 감자


 감자는 8킬로다. 아, 그것도 재본 지 꽤 되어서 더 쪘을 수도 있겠다. 예전에도 한 손으로는 무리였지만, 두 손으로 들으면 그나마도 무리 없이 들었었는데 무게가 점점 늘어가면서 감자를 드는 것이 가끔 벅찰 때가 있다. 몸을 보면 그렇게 살이 쪄보이지 않는데, 근육이 붙는 건지 점점 무게가 늘어나고 있다. '꽃과 개'라는 나름의 주제로 사진을 찍어보려 했으나, 감자의 무게를 까먹어버렸다. 쉬었다, 들고. 쉬었다, 들고를 반복하며 '견생 사진'의 욕심을 채워갔다.


감자 웃어봐, 스마일.


헤헤, 스마일 -


 이번엔 성공! 나름 '꽃과 개'의 모습이 잘 담긴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나는 사진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뻐했지만, 감자는 다른 곳으로 가보자며 보채기 바빴다. 감자와 동네를 천천히 거닐며 어제보다 바람의 차졌지만 냄새는 더 상쾌해졌어, 괜스레 감자에게 말을 걸곤 했다. 감자는 내 말을 듣기는 한 건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감자 나름의 방식으로 계절을 느낄 뿐이었다.


 집 근처엔 공원이 없다며 혼자 투덜거렸었는데, 생각해보니 한 곳이 있었다. 잘 찾아보지도 않고 투덜거리기만 했다. 오늘의 산책길은 어릴 적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공원이었다. 꽃과 풀, 흙냄새를 제대로 맡을 수 있는 곳. 줄을 조금 길게 풀어두어도 마음이 편안한 곳. 어릴 적에는 작다고 생각했었는데 공원은 생각보다 컸고, 무척 한가했다. 시간이 무척 더디게 흐르는 것 같은 신기한 곳. 감자는 나무와 풀을 보고 신이 났는지 앞장서서 걷기 바빴다.


내가 알아서 냄새 맡을게, 언니. 손 좀 놔줄래?
눈 부시다. 다른 곳으로 가자, 언니.


우리, 봄이 지나기 전에 또 오자.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그리고 또다시 봄이 와도 우리 꼭 같이 오자, 감자.


 우리 꼭 그러자, 감자. 봄이 가기 전에, 여름이 되면, 가을이 오면, 겨울이 다가오면 그리고 또 봄이 찾아오면 그때에도 이 곳으로 오자. 이 곳에 와서 네가 좋아하는 냄새 마음껏 맡게 해줄게. 걷고 싶은 만큼 걷게 해줄게. 서서 구경하고 싶은 만큼 기다려줄게. 그러니까 우리 꼭 함께하자. 될 수 있으면 오랫동안, 가능하다면 평생도록 우리 함께하자. 그러면 그때에도 나는 너를 사진으로 남길게. 너는 마음껏 세상을 구경하고 냄새를 맡아, 나는 너를 간직할 수 있게 사진을 찍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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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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