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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Jul 22. 2018

만들어진 가족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가족 이야기

<어느 가족>_ 스스로가 선택한, 가족.

 보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영화들이 있다. 몸이 몹시도 안 좋은 날, 엄마가 끓여진 따뜻한 흰죽 같은 영화. 지친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응원을 해주는 것만 같은 영화. 나에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이 대체적으로 그랬다.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도 한 몫하거니와 인간의 생을 다루는 감독만의 따뜻한 시선과 깊은 울림을 주는 대사들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무척이나 기다렸다, 그의 신작을.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다 드디어 보게 된 <어느 가족>. 가슴 저릿하게 웃음 짓게 하더니, 이내 눈물을 쏟을 만큼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어버렸다.






어느 가족

 처음, 영화 <어느 가족>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칸 영화제 때문이었다. 한창 영화 <버닝>이 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인터넷 기사 때문에 영화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버닝>이 아니라 <어느 가족>이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워낙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상까지 받았다니 이 영화는 꼭 봐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무척이나 더웠던 날 <어느 가족>을 보러 영화관을 찾았다, 무척이나 지친 상태로. 더위 때문에 온몸이 끈적끈적했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정말 신기하게도 피로감이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좋은 영화, 행복감을 주는 영화를 만나면 이런 감정을 느끼곤 한다. 여태까지 느꼈던 피로감이 사라지고 알 수 없는 충만한 마음이 가득 차는 기분. <어느 가족>을 보고 난 뒤에 그 느낌을 받았다. 장면들이 생각나서 피식거리다가, 이내 인물의 대사에 마음이 먹먹해지다가, 마지막 엔딩에 속이 울렁거리게 만들었던 영화. '진짜' 가족 이야기를 담아냈던, '진짜' 가족 영화.  



할머니의 연금과 물건을 훔쳐 생활하며 가난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어느 가족.
우연히 길 위에서 떨고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가족처럼 함께 살게 된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각자 품고 있던 비밀과 간절한 바람이
드러나게 되는데…



스스로가 선택한, 가족

 개인적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참 한결같지만 뻔하지 않게 다루는, 가족 영화계의 장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전작들을 한 번쯤은 아니, 어떠한 영화는 여러 번을 봤을 정도로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팬인데, 그의 영화는 겉으로 보기엔 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각각 다른 결의 이야기를 아주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참, 새삼, 굉장히, 대단한 감독이라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이 영화 역시 가족 영화계의 거장다웠다. 여태까지 그가 만들어 낸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섬세한 결들이 또 다른 새로운 가족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한국영화 한 편이 생각났었다. 바로, <가족의 탄생>이다.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와 사정을 대면하다 포용하며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 라는 이야기의 큰 틀이 무척이나 흡사하다 느꼈기 때문에. 그러나 <가족의 탄생>과 <어느 가족>의 차이점이 있다면, <가족의 탄생>은 '진짜' 가족이 되었다는 그 사실에 초점을 두었다면, <어느 가족>은 '진짜' 가족이 되었던 사람들의 각자 사정에 대해서, 더 나아가 그들이 그렇게 가족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메시지에 더 초점을 두었다는 점이 차이이지 않을까, 영화를 보며 개인적으로 생각했었다.



만들어진 가족이라 아니라, 만들어가는 가족 이야기

 우리들이 흔히 쓰는 말이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 가족이라는 집단이 가지고 있는 아주 끈끈한 정을 비유적으로 쓰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다면 다들 이런 말을 쓸 것이다. 피보다 진한 물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듯이, 이 영화의 큰 이야기 줄기는 이러하다. 서로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들이 물건들이 아주 빽빽이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집에서 옹기종기 모여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 왠지 문장으로 정리하면 정이 뚝뚝 묻어나면서 오롯이 따뜻함과 포근함만이 존재할 것 같은 분위기이지만, 이 영화는 결코 이렇게 예쁘기만 한 착한 가족 영화는 아니다. 각자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가족에 보탬이 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처절한 생존이 담겨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회의 어두운 면 역시 많이 담겨 있다. 부모에게 학대받는 아이,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 가정 폭력을 당한 여자 등 사회적 약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가장 아픈 상처들을 담아내기도 했다. 또다시 이렇게 단어들을 나열해보면, 가슴이 턱턱 막히곤 한다. 왠지 마음이 묵직해질 것 같아 영화보기가 겁이 나기도 하고.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선 전혀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가족 영화의 장인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들어 낸 가족영화이니까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있었다. 바로, 가족이 되어야만이 알 수 있는 세월의 변화에 관련된 장면들이었다. 부모에게 학대를 받던 유리를 가족으로 맞이하며 시작된, 잔잔하게 흘러가는 가족들만이 추억 쌓기. 온 가족이 기차를 타고 바닷가에서 추억을 만들고, 오빠와 동생이 된 유리와 쇼타가 함께 곤충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고, 유리의 흔들리던 이가 빠지자 쇼타가 지붕에 던져 새로운 이가 잘 자라나길 바라는 가족의 풍경들까지. 섬세하게 표현된, 가족이 되어야만이 알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는 장면들이 가슴을 쿡쿡 찌르곤 했다. 그리고 그 장면들을 보며 나의 지난 추억들이 떠올랐다. 함박눈이 내리던 날, 오빠와 만들었던 눈사람. 흔들리는 이에 흰 실을 걸어주던 아빠의 손길. 가족들과 갔던 바닷가의 까끌거리던 모래의 감촉. 영화의 장면 장면마다 이제는 추억이 된, 가족들과 함께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온몸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내 영화 속 가족들의 화목한 모습이 저물고 시작되는 가슴 아픈 이야기 전개에 마음이 울컥거리기도 했다.



훔치고 팔아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삶

 이 영화를 보면서 입안 가득 씁쓸하게 만들었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바로 '돈'에 관련된 장면들이었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돈이다. 돈보다 큰 가치를 두며 살아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말을 지키며 살아가기엔 사회는 냉혹하다. 그렇게에 이 영화는 대사 곳곳에, 그리고 인물들이 삶을 살아가는 곳곳에 '돈'에 관련된 웃픈 장면들이 존재한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오사무가 일하다 다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왔을 때, 그를 데리고 온 동료가 보험처리가 된다는 말에 기뻐하는 가족의 모습, 더 나아가 조금 더 다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아픈 것은 잠시이지만, 돈은 꽤나 오랫동안 삶에 보탬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가슴을 아프게 한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아키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자신의 젊은 성을 팔곤 한다. 투명한 벽 앞에서 자신의 젊음을 파는 아키는 일하는 그 공간 자체가 그녀의 삶처럼 다가왔다. 삶 곳곳에 존재하는 투명한 벽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 그래서 영화 속 그 누구보다 따뜻한 품이 필요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투정 부리듯 하츠에에게 안기고, 마음의 상처가 많아 보이는 손님에 마음을 주는 그녀의 모습이, 일할 때마다 아키가 짓던 그 덤덤한 표정이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곤 했다. 이처럼 영화엔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경제력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쇼타가 오사무과 팀이 되어 도둑질을 하는 것도, 아직 도둑질이라는 것이 정확히 뭔지 모를 어린 유리에게까지 도둑질에 가담하게 하는 것 역시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외면할 수 없는 생존에 관련된 것들을 조금은 잔혹하다 싶을 정도로 현실적으로 담아냈다.



멀리서 바라보는, 어느 가족

 이 영화엔 1부와 2부로 나눠지는 듯한 흐름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1부라고 할 수 있는 '진짜' 가족의 탄생과 그 가족들이 만들어가는 추억들에 대한 이야기, 2부는 그들을 '진짜' 가족이 아니라, '가짜' 가족으로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 그러니까 사회적인 시스템 안에서 보이는 이미지로만 해석되는 그들의 삶의 이야기, 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부는 엄마 미소 짓게 만드는 훈훈함이 묻어있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2부는 가슴 답답할 정도로 막막함이 느껴지는 이야기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2부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에서 가장 마음을 허하게 만들었던 부분은 뉴스 장면과 형사들과의 심문 장면이었다. 사람 사이에 생겨날 수 있는 사정에 대해서,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 대한 일이 모두 배제되고 그저 팩트로만 냉정하게 전해지는 뉴스 장면과 그럴 수 없다는, 그러면 안된다는 형사들의 위선적인 모습들에서 느껴졌던 왠지 모를 서늘함. 마치 큰 사회가 아주 작은 어느 가족을 바라보는 냉혹한 시선을 담아낸 것 같아 그 장면을 보는 내내 마음이 무너졌다고 해야 할까. 마치 원래 '어느 가족'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예전의 공간으로, 새로운 삶으로 되돌아간 인물들을 보며, 그 새로운 환경에, 그 익숙한 환경에 어떻게든 적응하려는 인물들의 처절한 모습에 더욱 마음을 아리게 만들기도 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을 본격 영업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던 영화 <어느 가족>. 보는 내내 굉장히 만족했고 행복했으며 그만큼 가슴이 아팠던 영화였지만, 꼭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아주 작은 바람이 있다. 이 영화를 강력히 추천하는 데에는 작품성도 물론 있지만, 일단 영화에 출연했던 모든 배우의 연기력들이 정말 대단했다. 키키 키린의 연기는 두말할 것도 없으며, 릴리 프랭키의 유머 가득한 친근한 연기도 좋았고, 두 아역인 죠 카이리와 사사키 미유의 연기는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에 담겨 있는 감성은 큰 스크린으로 확인해봐야 그 진면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며 제대로 영업당한 배우가 있었는데 바로, 안도 사쿠라이다. 사실 이 배우가 나온 작품을 많이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고요하지만 묵직함이 담겨 있는 연기가 정말 탁월했다. 특히 후반부쯤에 나오는 인터뷰 씬에서의 감정은 정말 대단했다. 부디 이들의 연기를 꼭 큰 스크린으로 확인해보길 바란다. 아, 그전에 미리 말해두고 싶었던 것이 있는데, 이 영화는 분명 가족 영화이고 가족들과 함께 보면 정말 좋을 영화임에는 틀림없지만, 15세라는 관람등급에 비해 수위가 생각보다 조금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정말 추천해주고 싶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 시원한 영화관에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 곱씹어 볼 수 있는 좋은 영화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어느 가족>의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로 영화 시사회 감상 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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