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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ug 29. 2018

이렇게 사랑스러운 병맛은 처음이야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_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열정

 보통 사람들에겐 영화를 보는 취향, 같은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여러 장르들 중 유난히도 선호하게 되는 장르들. 또는 유난히도 나와 맞지 않아 좋아하지 않는 장르들. 이 두 장르의 중간 어디쯤에서 취향, 이라는 것이 생겨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도 있다. 영화의 취향이. 대체적으로 영화는 편식해서 보지 말자, 는 나름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나, 여전히 보면서도 흥미가 가지 않는, 아니면 아예 선택의 손길조차 닿지 않는 영화들이 분명 존재한다. 사실 이 영화 역시 그랬다. 나의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을 거라 단언했다. 그래서 절대 이 영화는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포스터만 봐도 이건 내 취향 아니야, 단언했던 나의 생각은 영화를 보면서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이 영화 여러 의미로 굉장하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해도 될까,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계속 좋아해도 된다며 용기를 주는 영화였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내가 이 영화를 선택했던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존재했다. 하나, 사람들의 후기글을 보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이 영화가 진짜 재미있다는 후기들을 꽤나 많이 보았다. 포스터에서부터 풍겨져 오는 B급 코미디의 기운 때문에 그 후기를 보며 생각했다. 이런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좋아할 수 있는 영화겠지. 그러다가 또 다른 후기를 봤다. 절대 스포를 당해선 안된다고. 마지막 반전이 아주 대단하다고. 올해 역대급 영화라고. 내가 예상했던 느낌과 전혀 다른 후기들 때문에 이 영화에 조금씩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 하나, 때마침 시간이 맞아서. 요즘 나는 '영화의 날'이라 지칭하며 하루에 영화를 두 편 몰아서 보곤 하는데, 때마침 연속해서 볼 수 있는 타이밍이 맞았다. 사람들의 의견때문에 꽤나 궁금했고, 때마침 시간도 딱 맞고 해서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보길 잘했다. 굿 타이밍, 굿 초이스였다고.



원 테이크로 담아낸 아비규환 좀비 출몰 현장!
당신은 좀비와 싸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음산한 기운의 창고 안, 좀비 영화를 찍는 촬영 현장.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자 격해진 감독과 배우들은 쉬는 시간을 갖는다. 
그 순간, 어디선가 등장한 ‘진짜’ 좀비 떼들이 
사람들을 하나둘씩 죽이기 시작하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는데!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이 궁금한 당신,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부디 30분을 참아내길,

 솔직히 영화가 시작하고 한 30분 정도, 후회했다. 아, 영화 잘못 선택했다. 망했다, 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앞부분은 정말 노잼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보는 앞부분은 실로 대단히 노잼이다. 하지만 그것을 견뎌낸다면 느낄 수 있다. 이 영화의 참맛을. 나는 개인적으로 좀비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 생각하고, 가끔은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좀비 영화는 집중해서 보지 못하는 편이다. 그나마도 재미있게 봤던 건, <부산행> 정도. <부산행>은 꽤나 현실적인 분장과 빠른 스피드로 치고 나가는 영화이기에, 보는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반면, 이 영화는 정말 어설프기 짝이 없다. 좀비 분장부터 시작해서, 배우들의 과잉된 연기.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낼 건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정말 신기하게도 30분 정도의 어설픈 좀비 영화가 끝이 나고 시작되는 또 다른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후반부터가 이 영화의 본격적인 주제이자,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조심스럽다. 이 영화는 정말 정보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과연, 어느 정도의 선까지 영화의 내용을 적어야 할지 고민이다. 어쩔 수 없이, 영화의 후기를 쓰는 글이기에 이제부터는 어느 정도의 스포를 하지 않을 순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이 영화를 정말 볼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문장을 끝으로 스크롤을 더 이상 내리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병맛은 처음이야

 이 영화는 두 가지 톤을 가지고 있다. 포스터에서부터 풍겨지는 병맛 가득한 분위기와, 그런 병맛 가득한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놓은 가슴 저릿한,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 사실 이 두 가지의 톤을 아주 적절하게 잘 섞어놓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하기엔, 앞부분을 견뎌내는 게 나는 살짝 힘들었기 때문에. 그러나, 마지막 그들이 만들어낸 조금은 말도 안 되는 영화의 과정들이 계속 마음을 건드려, 이내 머릿속 가득 이 영화 정말 굉장한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놓는다. 이 영화는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끝내, 사람을 설득시키는 힘. 끝내,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곱씹게 만드는 힘. 그래서 앞부분을 기꺼이 다시 견뎌내며 한 번 더 보고 싶게 만드는 힘. 이 영화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우스꽝스러운 좀비 영화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이 우스꽝스럽고 어이없는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차근차근 전달해주기 시작하는데, 고통스럽게 봤던 앞 장면의 좀비 영화가,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마치 퍼즐을 맞춰나가듯 하나 둘 이해되기 시작한다. 이때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왜 그렇게 얼빠진 표정을 지었는지 딱딱 맞아가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유쾌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누군가의 열정에 사람은 반하게 된다고.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고. 개인적으로 이 대사를 참 좋아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대사가 떠올랐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을 가슴에 품고 최선을 다해, 힘이 닿을 때까지, 모든 열정을 다해 영화를 만들어낸다. 비록 만들어 낸 영화가 다소 어설프고 병맛이라 하더라도 끝내 온갖 돌발상황을 다 이겨내고 완성해내는데, 그 과정을 아주 유쾌하고 가끔은 우스꽝스러우며 이내 코끝 찡한 감동을 선사해준다. 우리가 고통 속에서 본 어설픈 영화는 좀비 영화를, 원테이크로, 그것도 모자라 생방송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을 품은 채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리허설을 하게 되는 데 그 속에서 연기하는 인물들의 독특한 캐릭터들이 극의 활력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 독특한 캐릭터들이 본 촬영에 들어가 인물 속의 인물로 발현되기 시작하면서, 겹겹으로 쌓아 올린 캐릭터 속 캐릭터들이 유쾌한 상황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생방송을 하기 위해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긴장 가득한 상태에서 본 촬영이 시작되면서 전개되는 웃음 폭탄들은 뒤로 갈수록 점점 정점을 찍게 된다. 가끔 중간중간에 약간 억지스러운 감동 요소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내 끝으로 갈수록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완벽히 하나로 모아지면서 끝내 후유증이 깊은 감동을 만들어낸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열정

 좀비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인 배우들에겐 각각의 독특한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각자 다른 캐릭터들이지만 공통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하나같이 까탈스럽다는 것. 미팅과 리허설을 할 때마다 시나리오의 개연성을 문제 삼거나, 자신의 이미지가 손상될 것 같은 부분들은 삭제해달라 요구하거나, 마시는 물과 화장실의 위치까지 깐깐하게 따지던 사람들이 레디, 액션이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수용하는, 마법 같은 상황들이 촬영 현장에서 펼쳐지게 된다. 사실 그 모습들 때문에 더 많이 웃게 되고 재미있어지지만,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좋아하기 때문에 감내할 수 있는 거라고. 진정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물론, 이미 생방송은 시작되었고, 원테이크로 진행되는 영화이기 때문에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돌발상황 때마다 어떡해서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넘어지고 쓰러지더라도 계속해서 전진, 하게 되는 것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 영화에서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이었다. 실제로 이 영화가 만들어졌던 과정을 담은 메이킹 필름. 영화 속 인물들이 입었던 단체복을 입고,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했던 행동들과 거의 흡사하게 행동하며 진짜, 영화를 만들어내는 스태프들의 모습. 그들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몇 번의 리허설을 했을까. 영화 속의, 영화 속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흡사한 장면을 몇 번이나 연기했을까, 생각하게 만들었던 마지막 엔딩 크레딧. 영화의 제목처럼, 카메라를 멈추면 안 되는 생방송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뛰다 넘어지고, 잠시 쉬는 동안 급하게 물을 들이켜며,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온갖 불편함을 감수하며 만들어 낸 마지막 엔딩씬은 가슴이 벅찰 정도로 굉장한 울림을 주었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는 진짜 현실의 영화는 꽤나 성공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 속 영화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것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괴상하고, 어차피 실패했어도 괜찮았던, 아무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은 영화였지만, 그래서 박수받지 못할 영화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한, 다했던, 다 하고야 말았던 '영화인'의 열정을 중점적으로 담아냈다. 그래서 좋았고, 기뻤으며, 행복했고, 슬펐다. 그리고 고마웠다, 진심으로, 이 영화에게. 이 영화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한 번이라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궁금해했던 사람이라면 굉장히 만족할 수 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루함에 몸부림을 치다가, 피식- 미소를 짓다가, 자신도 모르는 새 깔깔거리며 웃음소리를 내다가, 이내 가슴 찡해지는, 그래서 영화관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엔딩 크레딧 속 사람들의 땀과 옅은 미소가 계속해서 떠오르는, 그런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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