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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Oct 11. 2018

슬픔을 내색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소년의 이야기

<린 온 피트>_ 우리의 삶은 해피엔딩일까.

 나는 동물이 나오는 영화들에 약한 편이다. 강아지와 함께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영화 속 인물이 동물과 이별하게 되는 장면이나 동물들이 괴로워하는 장면을 잘 보지 못한다. 그들의 고통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 그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이 영화도 아마, 그런 느낌을 받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감성적인 포스터 속 소년과 말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예상했었다. 그들의 우정을 다루다, 끝내 말이 나이가 들어 자연스럽게 이별을 하게 되는 내용이지 않을까, 하고. 그러나, 이 영화는 내 예상을 빗나갔다. 그것도 아주 깊고 진하게. 그리고 이 영화를 만남과 동시에 나의 여러 종류의 영화 리스트 중 한 켠에 새롭게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문득 울고 싶어 질 때 찾아갈, 찾게 될 영화로.






린 온 피트

 딱, 내 취향의 영화 같았다. 딱, 내 취향이라고 함은,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느린 템포를 가진 담담한 영화,라고 말하면 되려나. 이 영화의 첫 느낌이 그랬다.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서, 그리고 짧은 예고편을 보면서 더더욱 그렇게 느꼈다. 이 영화는 분명 나의 취향이겠구나. 이 영화는 분명 나를 실망시키지 않겠구나. 어쩌면 요즘 내게 필요하다 느꼈던, 그냥 울게 만들 수 있는 영화가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분명 내 취향이면서,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톤을 가진 상당히 매력적인 영화였다. 아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고, 깊었으며, 너무도 담담하여 차오르는 감정을 진정시키기 꽤나 힘이 들었다. 영화는 전반에서 다루는 내용과 후반에 다루는 내용이 조금 다른 것처럼 느껴지는데, 끝으로 달려갈수록 끝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더욱 뚜렷해지고 깊게 다가온다. 영화가 시작하면 약간 예상하였듯, 사람에 대한, 가족에 대한 결핍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 말을 만나게 되면서 삶에 안정감을 찾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는 내용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아이를 부양할 능력이 부족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소년은 유일하게 행복했던 자신의 어릴 적 추억을 가슴에 품은 채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아버지가 직장을 옮길 때마다 이사를 다녔던 소년은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 하나 없이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자신의 감정을 발산시키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달리기이다. 그렇게 동네를 달리다 우연히 보게 된 경마장에서 찰리는 운명처럼, 끝없이 달리는 피트를 만나게 된다.



"괜찮을 거야, 약속해"
 
 매일 혼자 달리는 소년 찰리는 우연히 경주마 ‘린 온 피트'를 만나 함께 달리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로 아빠를 잃은 찰리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고,
 몰래 피트와 홀로서기를 위한 여정을 떠난다.
 길 위의 다양한 만남과 헤어짐 속,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과도 마주하게 된 그들.
 과연 찰리는 계속 달릴 수 있을까?



그래, 삶에 영원한 건 없어

 살아가면서 애착을 갖게 되는 관계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사람이 유일한 것 같아 애착을 갖게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꼭 필요해서, 지금 이 순간 사라져 버리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 쉽사리 놓지 못하는 관계들도 있다. 이 영화는 그렇게 애착을 갖게 되어서,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서, 포기하지 못해서 애절하고 절절하게 붙잡게 되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속 찰리가 놓지 못하고 붙잡게 되는 인물들은, 관계들은 하나 같이 소년의 삶의 끈처럼 느껴진다.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주었던, 그의 마음을 받아주었던 것들뿐이어서 찰리는 도저히 놓을 자신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내내 생각했다. 부디, 찰리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과거 자신이 느꼈던 사람의 따뜻한 정을, 손길을 다시금 느낄 수 있기를 영화를 보며 수도 없이 빌고 또 빌었다. 엄마 없이 아버지 하고만 지냈던 찰리에게는 어렸을 적 소중했던 기억 하나가 있다. 바로, 고모인 마지에 대한 기억이다. 엄마를 대신해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마지와의 기억을 찰리는 잊지 못하고 언제나 가슴에 품으며 지내왔다. 유일했고, 그래서 더욱 붙잡게 되는 그 옛 기억을 찰리는 외로울 때마다, 자유롭게 달리는 그 순간들 속에서도 마음에 담아두며 소리 없이, 내색 없이 그렇게 조용히 기다린다. 마지가 다시 우리 집에 놀러 오길. 그래서 다시 그 따뜻한 온기와 대가 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아마도 찰리는 발을 땅에 내딛는 내내, 숨을 쉬는 내내 기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언젠가, 라는 덧없는 기다림을 지속해가던 찰리의 삶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조금은 허무하게 또, 조금은 무책임하게 찰리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게 되고,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애틋하게 대했던 피트마저 사람들에게 팔릴 위기에 처하자, 찰리는 피트를 몰래 차에 싣고 무작정 마지를 찾아 길을 떠나기 시작한다.



슬픔을 내색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소년의 이야기

 사람은 살아가면서 몇 번의 이별을 겪으며 살아가게 되는 걸까. 이 영화를 다 본 후, 나의 감상을 짧은 문장으로 표현해보자면 이랬다. 우리는 어딘가를 도달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느 지점을 뛰어넘기 위해 수많은 이별을 겪으며 살아가게 된다. 이 영화 역시 찰리가 고모인 마지를 만나기 위해 겪게 되는 수많은 이별의 순간들을 담고 있다.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와의 이별의 순간, 자신을 투영해 바라봤던, 그래서 더욱 지켜주고 싶었던 피트와의 이별, 그리고 그 이별들을 넘고 넘어 비로소 그토록 원했던 마지 고모와의 만남까지. 한 고비고비를 넘어가며 앞을 향해, 마지를 향해,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미래를 향해 찰리는 담담히 고통을 견뎌낸다. 우리에게도 그런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헤어져야 할 때. 그 헤어짐이 준비가 되었건, 준비되어있지 않았건 어쨌든 우리에겐, 우리의 삶 속엔 '헤어짐'이라는 순간이, 미션이 삶의 곳곳에 존재하게 된다. 절친이었던 친구의 전학이, 어릴 적 오백 원을 주고 샀던 병아리와의 짧은 만남이,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떠나보냈던 과거의 인연들까지. 우리는 삶아오면서 의식하였던, 하지 못하였던 수많은 이별을 겪으며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존재하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삶처럼 영화 속 찰리의 삶 역시 그러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별을 겪었을 때, 겪고 난 뒤의 찰리의 반응이었다. 영화 초반, 찰리에게 가장 큰 시련이었을 아버지의 죽음에서도 찰리는 아주 짧게 눈물을 흘릴 뿐 다시 자신이 나아갈 길을 빠르게 결정해나간다. 아니, 어쩌면 도망쳐 나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아버지의 죽음 후 슬픔을 채 느낄 새도 없이 찰리는 보호소에 가지 않기 위해 아버지를 병원에 내버려둔 채 병원을 떠난다. 병원에서 도망쳐 나와 찰리가 찾아간 곳은 피트가 있는 경마장이었다.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그렇게 찰리는 피트를 온갖 정성을 다해 돌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피트 역시 체력적인 한계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팔릴 위기에 처하자, 찰리는 무작정 말을 가지고 길을 떠나기 시작한다. 아니, 피트와 함께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누군가에게 보호를 받기 위해 피트와 함께 마지를 찾아 떠난다.

 


괜찮을 거야, 약속해

 영화는 중반부부터 찰리의 치열한 생존에 대한 이야기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피트를 돌보며 받았던 돈도 다 떨어지고, 마지를 찾아 헤매지만 정확히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찰리는 피트를 데리고 끝도 없는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이 부분에서 찰리가 피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장면이 나오게 되는데, 바로 피트를 대하는 태도이다. 찰리는 피트가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절대 피트를 타지 않는다. 그만큼 찰리에게 피트는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이면서, 동등한 위치에 있는 생명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평생을 어딘가에 묶여 삶을 지속해왔을 피트를 보며 찰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해 배려하며 피트를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피트와 함께 길을 걸으며 이전까지는 전혀 설명되지 않았던,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던 찰리의 고독함이 묻어나는 대사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자신의 속마음을, 대답할 수 없는 피트에게 다 털어놓게 된다. 이 장면에서도 찰리가 가지고 있는 괜찮다, 라는 담담함이 묻어나 있다. 친구와 이별하게 되었지만, 괜찮아. 혼자 많이 외로웠지만, 괜찮아. 우리 지금 이렇게 힘들지만 분명 괜찮을 거야, 약속해. 피트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에게 거는 약속이자 암시 같은 느낌이 들어 더욱 가슴이 먹먹했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피트까지 잃게 된 찰리는 오래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다시 마지를 찾아다닌다. 우연히 만나게 된 노숙자와 함께 잠을 자고, 간간히 돈을 벌며 찰리는 간절히 기도하고 바란다. 너무나도 무모해서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마지와의 만남에서도 찰리는 너무 기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되려 자신을 밀어내도 괜찮다고, 그래도 원망하지 않을 거라고 차분히 거절할 수 있는 방안까지 마련해준다. 왜 그럴까 생각했다.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 그렇게나 간절히 바랬던 만남이었을 텐데, 그렇게 수도 없는 이별을 겪어내며 만난 마지인데 왜 그렇게 자신을 버려도 된다고 미리 말을 해두는 것일까. 그러다,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무언가에게 상처를 받는 일은 언제나 적응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러므로 스스로에게 거는 암시였을 것이다.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하지 마. 고모가 나를 반가워하지 않아도 내색하지 마. 그렇게 찰리는 살아오면서 그러한 습관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이별에, 상처에, 외로움에. 조심스럽지만 기대에 찬 채, 그러나 내색하지 않은, 마지와 찰리의 그 대화 씬에 나는 정말 오열했다. 너무 잘 알고 있는 감정이라서. 그 마음이 이해가 되어서. 그래서 그 말을 하고 있는 찰리의 덤덤함에 마음이, 가슴이, 머리가 연신 울렁거렸다.

 


우리의 삶은 해피엔딩일까

 이미 영화에 대한 스포를 많이 해놓긴 했으나, 조금 더 조심스럽게 결말에 대한 스포를 해볼까 한다.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어쨌든 찰리는 마지를 만나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삶을 살아가게 되었으니까. 해피엔딩일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해피엔딩이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난과 역경을 겪었는데, 새드엔딩까지 되면 온몸에 아파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으니까. 그래서 정말 다행이다, 잘됐다 라고 생각하긴 했으나, 영화를 곱씹을수록 이 영화는 분명 해피엔딩이나, 어떻게 보면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찰리가 겪었던 그 이별은 찰리의 인생 어느 한 지점에 겪게 된, 겪었던 일이었을 테니까. 마지를 만나 행복한 상황이 펼쳐지게 되었지만, 이내 또다시 찰리의 삶엔 마지를 만나기 위해 겪었던 그 많고 많았던 이별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물론, 이별뿐만 아니라 마지를 다시 만났을 때만큼 기쁜 일이 생겨날 것이다. 피트와 닮은 구석이 있는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고, 그 만남들 사이에 좋은 추억도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그 행복한 순간들 사이사이에 알 수 없는 이별과 시련도 겪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의 삶일 테니까. 행복했다가, 한순간 갑자기 너무도 슬퍼졌다가, 다시 조금 나아졌다가, 어느 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또 복에 겨운 행복이 경험하게 되는, 그것이 우리의 삶일 테니까. 그래서 마냥 이 영화가 해피엔딩이라고 단언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괜찮을 거야, 잘 견뎌낼 거야,라고 다시 마음을 먹게 되었던 건 찰리의 굳건함 때문이었다. 이별하는 순간들 마다 단단하게 견뎌냈던 인물이었기에. 나보다 훨씬 단단하고 힘 있는 인물이었기에. 찰리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을 아주 잘, 버티고 견디며 살아낼 테니까.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찰리만큼 삶을 단단하게 살아나갔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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