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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ug 20. 2019

그래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 거야?

<우리집>_나는 이 영화가 너무나도 불편했다, 그리고 수없이 아팠다

 가끔 영화를 보며 이상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이상하리만치 영화에 집중을 할 수 없었던, 이상하리만치 보는 내내 무언가 불편한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영화에 대해 딱 떨어지는 결론을 내릴 수 없던, 그런 경험. 그리고 영화를 보고 집을 가는 동안, 잠을 자고 난 뒤 그 다음 날까지 삶의 어느 한 순간마다 문득 영화의 장면이 떠오르던, 기묘한 경험. 나에게 <우리집>은 그랬다. 처음부터 이상할 정도로 영화에 집중을 할 수 없었고, 보는 내내 왠지 모르게 계속 불편했으며, 알 수 없는 이질감을 수없이 느끼게 만들었다. 이 낯선 경험 때문에 나름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에 대한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까. 영화에 대한 감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에 대한 리뷰를 쓰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리뷰를 쓰기 위해 아니, 사실은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는 영화의 잔상의 이유를 찾기 위해 생각을 묵히고 묵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곱씹고 곱씹다 비로소 내가 경험한, 이 기묘한 느낌의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집

 사실 영화를 다 본 후 제일 처음 느꼈던 감상은 그리 긍정적인 편은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영화에 마음을 다 내어준 느낌을 받지 못했다. 뭔가 영화를 제대로 체험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너무나도 단순하고, 한편으론 무책임하게 영화가 생각보다 별로였다, 라는 짧은 감상평을 남겼다. 뭔가 좀 아쉬워, 내내 이 생각만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름 짧은 감상을 남겼으니 영화에 대한 결론을 어느 정도 내린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잔상이 쉽게 떠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음 날 아침잠에서 깨어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문득문득 영화 속 아이들이 떠올랐다. 영화 안에서 하나가 지었던 표정이, 하나와 유미가 나누었던 대화가, 하나의 부모님의 다툼들이. 그리 긍정적으로 평가를 내린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왜 자꾸 생각을 곱씹게 만드는 건가. 왜 자꾸 아이들이 머리 안을 돌아다니는 걸까, 궁금함이 밀려왔다. 이유를 찾아야겠다. 왠지 모르게 찝찝한 이 느낌을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몇 날 며칠 동안 영화에 대한 생각을 꽤나 곱씹어보았다. 열심히 곱씹고 소화시키며 알아낸 이유는, 처음부터 영화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내내 불편한 이질감을 느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나'의 문제였다. 조용히 기억에서 지워버린, 애써 잊고 싶었던 과거의 내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다시 그 기억을 끄집어내기 싫어서 영화의 오프닝부터 나는 영화를 밀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 집은 진짜 왜 이럴까?”
 
 매일 다투는 부모님이 고민인 12살 하나와
 자주 이사를 다니는 게 싫기만 한 유미, 유진 자매는
 여름방학, 동네에서 우연히 만나 마음을 나누며 가까워진다.
 풀리지 않는 ‘가족’에 대한 고민을 터놓으며 단짝이 된 세 사람은
 무엇보다 소중한 각자의 ‘우리집’을 지키기 위해 모험을 감행한다.
 
 “우리 집은 내가 지킬 거야. 물론 너희 집도!”



나는 이 영화가 너무나도 불편했다, 그리고 수없이 아팠다

 나는 윤가은 감독님의 단편영화와 장편영화 <우리들>을 몇 번이나 돌려봤을 정도로 나름 그의 팬이다. 그의 영화마다 느낄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사려 깊은 태도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도 꽤 높았다. 역시나 그가 항상 영화 안에서 추구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그려내는 감성은 여전했다. 영화의 예고편과 스틸컷에서 느껴지듯 영화 내내 따뜻한 빛과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에 미소 짓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방식이 비슷할 뿐, 결은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전작인 <우리들>처럼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것과 아이들이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직접 돌파해나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전작과 흡사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마치 '아니, 너의 예상과는 다를 거야'라고 말하듯 영화는 오프닝부터 전작과는 다른 갈등의 요소를, 절대 쉽사리 풀리지 않을 크나큰 시련 같은 것을 던져놓는다. 하나에게는 부모님의 다툼을, 유미에게는 부모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우리집'을. 전작인 <우리들>은 아이들의 세계를 다뤘다고 한다면, <우리집>은 더 확장하여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세계를 그려나간다. 전작과 가장 다른 점이자, 어쩌면 결말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아이의 힘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른들의 세계를 아이들의 시점으로 진행시켜나간다. 나는 그걸 알아차린 순간부터 이 영화가 굉장히 불편하게 다가왔다. 미리 짐작해서일까. 아니면 어린 날의 내가 이미 겪어봤기 때문일까. 영화 속 아이들이 순수한 생각으로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려 할수록 나는 이 영화에 깊게 몰입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몰입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이의 마음에 동화되어버리면 과거의 내가 떠올라 수없이, 어쩌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아파질 수도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


영화 안에서 하나의 취미는 요리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하나가 밥 차려주겠다는 말이 첫 대사로 나올 정도로, 어쩌면 어린애 답지 않게 하나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밥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유미의 취미는 작은 박스를 모으는 것이다. 집 앞에 있는 분리수거장을 기웃거리며 꽤 쓸만해 보이는 박스를 하나 둘 챙겨 집에 모아둔다. 이쯤 되면 두 아이가 가지고 있는 취미가 꽤나 의미심장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나에게 밥은 단순히 매일 먹는 끼니의 존재가 아닌, 함께 밥을 먹는 '식구'라는, 가족과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과 사춘기인지 까칠한 오빠와 함께 둘러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시간. 가족의 관심에 대한 결핍이 하나의 취미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와 더불어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요리를 하며 부모님을 돕는 속 깊은 마음 또한 담겨 있을 것이다. 유미 역시 유미가 가지고 있는 결핍을 박스를 모으는 취미로 대변되었다고 생각한다. 박스는 사방이 막혀있다. 형태로 보자면, 집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영화의 예고편에서도 나오듯, 그렇게 모아놓은 박스로 세 아이가 둘러앉아 그럴듯한 집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신의 결핍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며 조금씩 성장해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아이들이 해결할 수 있는 일

 내가 이 영화를 보며 내내 불편해했던 이유, 내내 마음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던 이유. 그건 아마도 아이들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 정말 냉정하게 말하면 없다. 어린, 어렸던 우리에게는 갈등을 해소시킬 정도의 힘이 없다. 제 아무리 온갖 애교를 다 부리고 재롱을 부린다 하더라도 어른들의 세계를, 그들의 갈등을 해소시킬 수 없다. 잠시 멈추게 할 뿐. 그렇기에 나는 시작과 동시에 보이는 하나의 모습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무서웠다. 내가 잊고 지냈던 어린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지금 생각해보면 각자의 상황 속에서 생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던 다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그 당시의 나에겐, 그 당시의 어린 우리에겐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기 충분했다. 우연이겠지만 나 역시 하나처럼 어렸을 때부터 요리하는 것을 즐겼었다. 손으로 꼼지락거리는 일을 좋아했기에 자연스럽게 생긴 관심일 수도 있으나, 엄마를 도와주겠다는 명목 하에, 엄마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어린 마음이 취미로 발전된 것이지 않을까 어렴풋이 짐작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영화 속 하나의 행동이 더욱 이해가 되었다. 마치 어린 자식에게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묻는 엄마의 모습처럼 하나는 내내 가족과 유미, 유진에게 밥의 존재를 물으며 연신 그들의 챙기기 바쁘다. 하지만 정작 하나는 자신을 챙기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렇기에 마치 엄마의 모습처럼 주변 사람을 살뜰하게 챙기지만 정작 자신은, 자신의 아픔은 잘 챙기지 못하는 하나의 모습이 더 눈에 밟혔다. 눈에 더 밟히는 만큼 그렇게 노력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라는 걸 말해주고 싶기도 했다. 그만 노력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만하면 충분했다고 말해주고 싶기도 했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충분히 다 했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너희를 응원하고 싶었어

 결말이 예상 가능한 일 앞에 서 있을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그 결말이 그리 좋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왜, 굳이라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미리 도망칠 준비를 하지 않을까. 굳이 그 결말에 도달할 필요가 있을까. 굳이 그 일에 시간을 쓸 필요가 있을까. 자연스럽게 계산기부터 두드려보지 않을까. 나에게 다가올 일, 보상받을 수 있는 대가 같은 것을 미리 계산해보는, 그렇게 계산기부터 먼저 두드리게 되는 어른이 되었기에 영화 속 하나와 유미, 유진의 행동에 현실을 모른다며 답답해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무모함을, 그 순수함을, 그 희망을 버리지 않음을 응원해주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 겁이 더욱 많아져버린 나는 아이들의 무모한 순수함에, 절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그 용기에 조금 감동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했다. 이 아이들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겠구나. 조금씩 의연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겠구나. 절대 해피엔딩이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 나였기에 마지막 하나의 대사가 더욱 가슴에 매여졌지만, 한편으론 이 아이는 정말 힘이 강한 아이구나, 라는 생각을 동시에 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대책 없이 응원해주고 싶었다. 결말이 어떻게 나오건 간에, 그 결말이 그리 좋지 않더라도 하나를, 유미를, 유진이를, 그들의 삶을, 용기를 응원해주고 싶다.


*영화 <우리집>의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로 영화 시사회 감상 후 올린 글입니다.


사월 인스타그램 








<나는 막연함에 속았다> 출간 기념 연재

매주 화요일, 책에 담겨 있는 글을 소개해드립니다.


제 1화 <관계를 망치고 있던 건 바로, 나였다>

제 2화 <누군가의 취향을 알아간다는 것>

제 3화 <맥주를 마시는 어른이 되었다>

제 4화 <꿈을 포기할 때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제 5화 <어린아이처럼 울고 싶은 순간이 있다>

제 6화 <집순이는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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