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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Jul 11. 2018

이 영화를 만나기 위해, 그 많은 영화들을 봤나 보다

<하나 그리고 둘>_  우리는 평생 반밖에 보지 못하는 것일까.

 사실 나는 영화를 정말 닥치는 대로 보는 편이다. 요즘엔 대부분 새로 개봉하는 영화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래도 틈틈이 오래된 고전영화들을 많이 챙겨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보니, 이름은 알고 있지만 아직 영화는 보지 못한 감독들의 작품도 꽤 있다. 그리고 여전히 부족한 지식 덕분에 처음 알게 된 감독과 영화들도 더러 있기도 하고. 나의 영화에 대한 얇고 좁은 지식을 한탄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하나 그리고 둘>을 보고 나서 오랜만에 그 한탄을 하게 되었다. 왜 나는 이 영화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일까. 그래서 왜 이제야 이 영화를 보게 된 걸까,라고. 이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아주 천천히 흐른다. 물감이 물에 서서히 퍼지듯이, 이 영화는 천천히 내 마음에, 머릿속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하나 그리고 둘

 정말 부끄럽게도 나는 이 영화의 존재를 재개봉을 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이 영화의 첫 이미지는 미장센이 참 이쁘다,였다. 영화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미장센이 너무도 좋아서, 이 영화 무조건 챙겨봐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곤 했으니까. 뒤늦게 오래전에 개봉했던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에드워드 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 그리고 둘>의 존재도 이제 알게 되었던 난, 너무나 당연하게도 에드워드 양 감독의 존재도 잘 알지 못했다. 그나마도 감독의 이름을 알게 되었던 이유는 아는 선생님의 추천 덕분이었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작품 중 하나인,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추천해주셨는데, 추천을 해주시면서 하셨던 말이 있었다. 꽤나 오래전 개봉한 영화라는 말과 함께, 러닝타임이 세 시간 정도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추천해주셨을 당시, 정말 아주 막연하게 추천해주셨으니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솔직히 세 시간이나 되는 러닝타임을 감당해내기 힘들 것 같아 미루고 미뤘던 영화였다. 정말 왜 그랬을까, 나는. 그 영화를 봤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하나 그리고 둘>을 만나지 않았을까. 참으로 한탄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이 영화를 이제라도 만나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8살 소년 양양은 아빠 NJ로부터 카메라를 선물 받는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찍는 양양 
  
 양양의 사진 속에는 
 사업이 위기에 빠진 시기에 30년 전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된 아빠 NJ 
 외할머니가 사고로 쓰러진 뒤 슬픔에 빠져 집을 떠나 있게 된 엄마 민민 
 외할머니의 사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누나 팅팅 
 그리고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진실의 절반’을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



누군가는 열리고, 누군가는 경험하며, 누군가는 닫힌다

 이 영화는 사람의 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족의 구성원들을 통해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아주 잔잔하고 고요한 흐름으로 진행시킨다. 누군가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감정을 배우기도 하고, 누군가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허탈함을 느끼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이제 생과 이별할 준비를 하며, 그렇게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주 사려 깊은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어떤 장면에선 내 인생의 단면을 담아놓은 것 같고, 어느 장면에선 누군가에게 들었던 그 사람의 감정을 풀어놓은 것 같고 또, 어느 장면에선 먼 훗날 내가 겪게 될, 경험하게 될 현실이 담아 놓은 것만 같았던, 아주 신기했던 영화. 그만큼 이 영화는 아주 현실적인 면들을 가득 담아놓았는데, 그것이 지루하다거나 뻔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 가득 따뜻함이 스며들듯 아주 천천히 나의 마음을, 나의 고민을, 나의 불안함을 진정시켜주는 것만 같았다. 그저 누군가의 생을 세 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들여다봤을 뿐인데, 이 영화는 나를 아주 잔잔히 안아주며 위로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세 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결코 길다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영화의 끝이 오고 있음을 아쉬워할 따름이었다.



이 영화를 만나기 위해, 그 많은 영화들을 봤나 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났던 영화가 하나 있다. 바로, <보이후드>였다.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으며 누군가의 생을 오롯이 느끼고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 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의 한 지점을 영화를 통해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나는 <보이후드>를 보며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어서 그 영화를 봤던 당시, 굉장히 흡족해했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보이후드>와는 조금 다른 감동의 느낌이었지만, 오랜만에 <하나 그리고 둘>을 통해서 또다시 그런 경험을 하게 되어 너무도 행복했었다. 그저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울 수 있다는 것. 내가 살아왔던 어느 한 점과 접점이 되는 경험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보는 내내 어느 한 켠이 쓸쓸하면서도, 계속 마음과 머리에 따뜻하고 긴 여운을 남기게 만드는 것. 이 영화를 통해 요즘따라 생각이 많았던 나의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경험하게 될 나의 인생을 조금 의연하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정말, 참 좋았다. 너무 좋았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영화의 장면 장면이 떠올라, 어느 부분부터 좋다고 말을 해야 할까. 어떤 장면이 감명 깊었다 이야기해야 할까, 생각이 가득 차서 글로 옮기기가 버거울 정도니까 말이다. 


 사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그러니까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상영관을 나설 때는 이렇게까지 좋은 감정, 따뜻한 마음, 또다시 찾아봐야겠다는 결심을 바로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생각보다 좋다. 부분 부분 장면들이 삶의 곳곳에서 떠오를 것 같다,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은데, 혼자서 다음 영화를 기다리는 동안, 여기저기 걸어 다니는 동안,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영화의 여운이 몸 곳곳에 더 짙고 깊게 묻어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이 영화 리뷰를 쓰는 동안 이미 온몸에 퍼져버린 영화의 여운 때문에 그저 좋다, 꼭 봐야 하는데, 내가 느꼈던 걸 다른 사람도 느껴봐야 하는데, 정도의 감정적인 리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떠오른 생각 하나. 내가 그렇게 영화를 봐왔던 이유, 그렇게 열심히 영화를 찾아 탐색했던 이유는 이 영화를 만나기 위해서이지 않았을까 싶다. 많은 영화들을 넘고 넘어, 드디어 2000년에 개봉한 <하나 그리고 둘>을 만나게 되어, 만날 수 있게 되어 너무나도 기뻤다. 



우리는 평생 반밖에 보지 못하는 것일까

 이 영화 안에서 가슴을 울렸던 장면과 대사들이 몇 있는데, 양양이 나오는 장면과 양양의 엄마인 민민이 나오는 장면들이다. 우선, 양양이 나오는 장면들, 그러니까 이제 막 삶이라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한, 세상이 어떠한 곳인지 궁금해하는 아이의 시선이 담긴 장면들. 순수한 아이의 시선으로 던지게 되는 질문들이 가슴을 쿡쿡 찌르곤 했다. 그중 특히나 인상 깊었던 장면은 아이가 작은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장면이었다. 개인적으로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고 가끔 소지하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우선 영화 안에 카메라가 나왔다는 그 사실 자체부터 마냥 좋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양양이 사진을 찍는 이유들이 너무도 가슴을 먹먹하게 해서 그 장면이 특히나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양양은 아빠에게 묻는다. 우리는 평생 반 밖에 보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냐고. 그래서 양양은 생각한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반을 내가 카메라에 담아 보여주겠노라고. 그리고 아이는 꼬물거리며 카메라를 들어 이곳저곳 순간들을 담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의 중후반쯤 양양이 찍은 사진의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데, 온통 사람들의 뒷모습들뿐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나는 평생 내 눈으로 보지 못할 나의 뒷모습. 그 모습을 담아내는 양양을 보며, 그리고 사람들의 뒷모습을 담아낸 사진을 보며 혼자 생각한 것이 있다. 아, 다시 사진을 찍어야겠다. 다시 가방 안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 시작해야겠다,였다. 내가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는 것도, 한동안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을 담아냈던 것도 어쩌면 양양의 동기와 그리 많이 다르지 않았을 것 같아서. 양양이 담아낸, 우리가 보지 못할 반의 모습을 다시 담아내야겠다 혼자 다짐하곤 했다.


 그리고 유난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인물은 양양의 엄마인 민민이 나오는 장면에서였다. 민민은 갑자기 엄마가 쓰러지면서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는 인물로 나온다. 의식이 없어 보지 못하는 엄마에게 사소한 이야기들, 예를 들자면 오늘 있었던 일, 먹은 것들 같은 이야기들을 누워있는 엄마에게 전해주면서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이 제대로 된 것인가,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에 대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면서 삶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영화 속 많은 인물들 중, 비중이 덜 했던 인물이었음에도 계속 마음이 갔던 건,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인물인 것 같아서였다. 나도 가끔 아니, 사실은 꽤나 자주 그런 물음을 나에게 던지곤 하니까.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어딘가로 도망치면 내 삶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내 마음도 달라질 수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서. 민민은 끝내 일을 그만두고 절에 들어가 자신이 살아왔던 생을, 앞으로 살아갈 생을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러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 민민은 자신의 남편인 NJ에게 말한다. 그곳에 가니 엄마와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고. 다만, 역할이 바뀌어서 엄마가 내가 되고 절에 있는 그들이 엄마에게 말을 걸었던 내가 된 것 같았다고. 사람들이 교대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게 매일매일 보내는 삶의 연속이었다고. 그래서 알게 되었다고. 삶이 그리 복잡하지만은 않다는 걸. 생각보다 단순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얻은 세배의 삶

 이 영화 안에서 가장 마음을 울렸던 대사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 대사를 뽑고 싶다. 영화가 생겨나서부터 사람들의 수명이 늘었다는 것.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을, 대리 경험을 하게 되면서 우리는 세배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바로 그 대사. 이 대사 안엔 영화에 대한 사랑이 묻어있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만든 에드워드 양 감독이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가 느껴졌던 대사였다. 그래서 나 역시도 영화 속 인물을 통해 들었던 그 대사가 한동안 입안을 맴돌곤 했다. 참 좋은 말 같다고, 참 좋은 대사를 쓴 것 같다고 말이다. 사실 요즘의 내가 그랬다. 정말 하는 일이라고는 영화 보는 것 밖에 없다 말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영화를 보러 다니고 있었는데, 그 상황 속에서 이 대사를 듣게 되니 기분이 참 묘했다. 어찌 되었건 영화를 열심히 보러 다녔던 내가, 그렇게 영화를 보며 경험했을, 수많은 영화 속 인생들이 나에게 차곡차곡 남아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조금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으니까 말이다. 대사는 대사대로, 미장센은 미장센대로, 연출은 또 연출대로, 배우들의 연기는 연기대로 모두 만족스럽게 볼 수 있을 거라 말하고 싶은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려는 이에게도, 인생의 회한을 느꼈을 이에게도, 그저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은 이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었던 영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여운에 허우적거리며 지낼 듯싶지만, 이 허우적마저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영화. 나처럼 기분 좋은 허우적거림을 경험해보실 분들은 꼭 시간이 넉넉한 어느 날, 이 영화를 찾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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