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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순이는 인생을 허비하는 있는 것일까

집순이도 괜찮아, 괜찮을 거야.

by 사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나는 집순이다. 그것도 꽤나 지독한 집순이. 집에 있는 것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프로 집순러. 내가 언제부터 집순이가 된 걸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마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긴 하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것보다 혼자서 고요히 보내는 시간을 더 좋아했고 그러한 성향을 타고 난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다양한 성향들 가운데 나는 집순이라는 성향을, 혼자서 고요히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가끔 아니, 생각보다 자주 내가 내린 이 결론이 맞는 걸까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유난히 기피하는 곳 세 가지가 있다. 바로 어두운 곳, 사람 많은 곳, 시끄러운 곳이다. 이 세 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되는 공간이 있다. 바로, 클럽과 영화관. 하지만 후자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 정도의 소란스러움은 견딜 수 있고,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클럽은 정말 자신이 없다. 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지 않나. 안 하고 후회할 바엔 하고 후회하라고. 나에게 클럽은 굳이 안 해도 후회하지 않을, 아주 완벽한 기피 공간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클럽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래, 이 정도는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기피할 수 있는 공간일 수 있다. 하지만 요즘엔 나의 이러한 증상이 더 심해졌다 느껴지게 만드는 공간이 하나가 더 있는데 바로, 고깃집이다. 그것도 저녁시간의 고깃집. 나는 그곳에서 밥을 먹게 되면 내가 지금 밥을 입으로 먹고 있는 건지, 코로 먹고 있는 건지 도저히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너무 버겁다 생각하곤 한다. 나는 보통 사람들이 많이 없는 시간에 늦은 점심 한 끼를 먹는 편이라 아주 한가하고 조용한 상태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음식을 사서 집에서 한가롭게 먹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소음과 엄청난 연기,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불안감 등이 쌓이게 되는 저녁식사를 하게 되는 날이면 항상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곤 했다.


사실 나도 바꾸고 싶었다. 이러한 나의 증상과 많이 결여된 사회성을. 그런데 뭐랄까. 도저히 잘 바뀌지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하는 자리에서도 나는 항상 집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계산을 하기도 한다. 내가 여기서 집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릴까. 조금이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눕고 싶다. 대부분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꽉 차 있는 편이다. 어느 날은 나의 이런 표정을 읽었는지 빨리 집에 가보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쁜 얼굴로 지하철에 몸을 싣곤 했다. 그리고 아는 동생은 나에게 이런 말도 했다. 그 날은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함께 밥을 먹고 있었는데 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 나를 유심히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언니, 오늘 표정이 유난히 밝아요. 언니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만나면 엄청 활기가 넘치고 기분이 좋아 보여요. 그 말에 나는 진심이 담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맞아, 너무 편해. 그래서 오랫동안 밖에서 놀 수 있을 것 같아, 오늘은. 그리고 옛날에 한 친구는 나에게 이런 말도 했었다. 너는 집에 무슨 꿀단지를 가져다 놨길래 매일 일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가는 거냐고 툴툴거리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기도 했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항상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말하곤 했다. 우리 집에 엄청난 꿀단지가 있어서 빨리 집으로 가봐야 한다고. 나에게 꿀단지, 란 아마 내 침대이지 않을까 싶지만.


하지만 가끔 이러한 나의 모습을 보며 나를 뒤흔드는 말을 혹은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젊고 좋은 나이에 왜 항상 집구석에만 있냐는 말. 사람들은 모두 밖에서 바쁘게 지내는데 항상 집으로 가려고만 한다는 말. 지금은 그나마도 그 말에 변명을 할 수 있긴 하다. 집에서도 무지 바쁘고 나름 나에게 굉장히 알찬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금 이 글도 우리 집 식탁에 앉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나름 당당하게 말하고 있지만 항상 많이 고민하게 되고 흔들리게 되는 부분이긴 하다. 밖에 나가서 새로운 친구도 만들어야 할 텐데, 이제 남자 친구도 만들고 세상을 더 바삐 돌아다니며 살아야 하는데 그저 편하다는 이유로, 그저 마음이 안전하다는 이유로 너무 집안에 박혀서 나의 이 귀한 시간과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 문득 내가 지금 삶을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나 정말 잘 살고 있는 걸까. 이미 남들보다 뒤처지긴 했지만 나중에 정말 도태되는 것이 아닐까. 지금 내가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동안 누군가는 앞으로 인생에서 보탬이 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밖을 잘 돌아다니는 사람, 친화력이 좋은 사람, 나처럼 유난스럽게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이 조금 부럽기도 하다. 내가 자꾸 많은 사람들을 피하려고 하는 것도, 기회가 되는대로 나의 마음을 안정적으로 만들어 놓으려고 하는 것도 끝내 사람 때문에, 관계 때문에 만들어진 습관일 테니 말이다. 정말 그랬다. 예전에는 아무리 시끄러워도 고깃집에서 고기를 참 잘 먹었었는데, 고기 맛도 참 잘 느꼈었는데 고기 맛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는 요즘은 정말 증상이 심각해졌다. 이러다가 더 심각해지는 거 아닌가 불안감이 엄습해오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치고 관계에서 허무함을 느끼게 될수록 더욱 집으로, 집으로 도망치게 되었던 것 같다. 나를 안전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곳으로, 나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곳으로, 나의 약점을 들키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내 몸을 숨기기 급급했던 것 같다. 그러한 관계와 마음의 상처들이 거듭되면서 나는 집순이로, 그것도 프로 집순러로 진화하게 된 것 같다.


나름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있다 주장하고 싶은 집순이의 장점을 조금 나열해 보자면 이렇다. 우선, 편하다. 내 집에서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와 함께 아늑한 침대에 누워있을 수 있으니 두말할 것도 없이 최고다. 그리고 굳이 불편하게 꾸밀 필요도 없다. 목 늘어난 편한 티셔츠와 고무줄이 넉넉한 반바지를 입고서 머리를 하나로 높게 묶고 다녀도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리고 또 나는 집에서도 나름 바쁘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지 않고 있을 뿐 나름 나를 위해 하고 있는 일들이 무척 많다. 우선, 지금처럼 오늘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해서 글을 써야 하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도 봐야 한다. 또 그 영화의 리뷰도 써야 하고, 미뤄뒀던 책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아직 끝내 놓지 못한 편집도 마무리해야 하고, 새로 계획하고 있는 일도 구상해야 한다. 또 강아지와 놀아줘야 하고 엄마의 말동무도 해 드려야 한다. 어느 날은 그럴듯한 요리를 만들어야 하기도 하고, 방 청소를 해야 하기도 하고, 예전에 사다 뒀던 퍼즐도 맞춰봐야 한다. 이렇게 구구절절 나열해보니 나름 그렇게까지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거 같진 않다. 그저 나는 나의 시간을 정말 오롯이 나에게만 쓰고 있을 뿐이니까 말이다.


나에게 집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나에겐 충전소, 같은 존재이다. 좀 진부한 말 같지만. 밖에서 들었던 말과 눈빛, 뉘앙스들을 깨끗이 닦아낼 수 있는 공간이면서, 슬프고 우울했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곳이기도 하다. 또 나를 사랑해주는 존재와 함께 있어 자존감을 높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위로를 받고 재충전을 할 수 있는 곳은 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재충전을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클럽에 가서 춤을 추며 재충전을 할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문득 새로운 공간으로 떠나는 것을 재충전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오롯이 집에서만 재충전이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각자 아늑함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조금씩 다를 뿐, 그것에 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그저 집이라는 공간이 나에게 주는 에너지가 상당하기에, 그리고 그곳에서만, 그 에너지만이 나를 충전시켜줄 수 있기에 집을 선호하게 되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집순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집순이 파워가 나를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하니 나에겐 무척이나 소중한 충전소이다.


어쩐지 쓰고 나니 집순이의 타당성을 나열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사실 맞다. 한편으론 모든 집순이들을 대표하여 변명을 조금 늘어놓고 싶기도 했으니까. 내가 뭐라고, 참. 아무튼 나를 포함한 모든 집순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 잘못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잘못 살고 있지도 않을 거예요, 아마. 그저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 절대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라고 조금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요즘 들어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있다. 내 멋에 사는 것. 그래서 조금 내 멋대로 하는 것. 그러니까 인생을 막살자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고 좋아한다면 남들이 조금 이상하게 바라봐도 한 번 내 멋대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입고 싶은 옷 스타일대로, 내가 먹고 싶은 음식 스타일대로, 내가 좋아하는 재충전의 방식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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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막연함에 속았다> 출간 기념 연재

매주 화요일, 책에 담겨 있는 글을 소개해드립니다.


제 1화 <관계를 망치고 있던 건 바로, 나였다>

제 2화 <누군가의 취향을 알아간다는 것>

제 3화 <맥주를 마시는 어른이 되었다>

제 4화 <꿈을 포기할 때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제 5화 <어린아이처럼 울고 싶은 순간이 있다>

제 6화 <집순이는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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