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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취향을 알아간다는 것

앞으로도 그대의 취향을 빼곡히 알아 갈 수 있기를,

by 사월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취향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어떠한 이유 덕분에 생긴 취향일 수도, 직접 겪은 일에 의해 생긴 취향일 수도, 그냥 이유 없이 마냥 좋아져서 생긴 취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 일 수밖에 없는 이 취향이라는 것과 마주하게 될 때면, 문득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 취향, 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빛깔 같다고. 취향, 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향기 같다고 말이다. 그래서 떠올려보았다, 나의 취향을. 그리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대의 취향을.






누군가의 취향을 알아간다는 것만큼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전혀 알지 못하던 누군가, 에서 나의 누군가, 가 되기까지 우리에겐 몇 번의 우연스러운 만남과 필연적인 기회가 지나갔던 걸까. 그저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던 그대와 나는, 겹겹의 우연과 찰나의 기회를 통해 서로의 취향을 알아갈 수 있는 인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어쩌면 우리는, 그대와 나는 아주 소중하고도 귀한 기회를 얻은 셈일 수도 있다. 아무리 원해도, 아무리 갖고 싶어도, 아무리 노력해보아도 인연이라는 것은 제 마음대로 만나지지도, 지속되지도 않는 아주 얄궂은 존재이니 말이다. 그래서 또렷하게 새겨보기로 했다. 하나 둘 마음속에 담아보기로 했다. 그대의 빛깔을, 그대의 향기를, 그렇게 그대의 전부를.


누군가가 나의 취향을 기억해준다는 것만큼 기분 좋고 애틋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너 이거 안 좋아하잖아. 이걸 보니까 너 생각이 나서. 네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 같은 말들은 차갑게 굳어버린 마음을 포근히 안아주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말속에 담겨 있는 세심함은 언제나 깊게 남는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기억하고 있는 나의 취향을 좋아한다. 과거의 내가 좋아했던 그 무언가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었다는 뜻일 테니까. 생각해보면 나의 취향은 때에 따라, 기분에 따라,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변했던 것 같다.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이 한순간에 무뎌지기도 하고, 원래 좋아하지 않았던 것을 문득 나쁘지 않게 느꼈던 것처럼 취향은 무수히 변하고, 사라지다, 이내 섞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게는 결코 변하지 않는 확고한 취향 같은 것이 몇 가지 존재한다. 하나, 찌개에는 무조건 감자를 넣는 것.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감자이다. 나는 감자가 들어간 음식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뭔가, 먹을 때마다 느껴지는 감자의 포슬거리는 식감과 담백한 맛이 좋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우리가 흔히 먹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참치찌개, 고추장찌개 등 찌개류에는 무조건 감자를 잔뜩 넣어서 먹는 편이다. 밥을 먹다가 우연히 감자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잔뜩 신이 난 얼굴로 감자 예찬론을 늘어놓은 적도 더러 있었다. 둘, 보라색 덕후라는 것. 사실 이건 엄마의 영향이 조금 있었던 것 같다. 엄마가 워낙 보라색을 좋아하시다 보니, 나 역시도 자연스럽게 전염된 케이스라고 해야 하나. 물건을 살 때마다 습관적으로 보라색을 찾다 보니, 어느새 내가 쓰는 물건들은 온통 보라색으로 일렁이게 되었다. 그 외에도 아주 자잘 자잘한 취향은 대략 이러하다. 소주보단 맥주를 좋아한다는 것, 구두보단 운동화를 좋아한다는 것, 치마보단 바지를, 봄보단 가을을, DSLR 카메라보단 필름 카메라를, 산보단 바다를.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 일 수밖에 없는 취향들이 내 안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가끔 나와 취향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이에게 낯선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마치 또 다른 나인 것처럼, 먹고 싶은 음식의 주기가 딱 맞아떨어질 정도로 흡사한 패턴을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서 낯선 감정을 느끼게 되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낯섦, 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 나와는 다른, 그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나와 같을 줄만 알았던 그 사람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된 그 날, 나는 이러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자부했던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세계는 어쩌면 극히 일부분일 수도 있겠구나. 극히 일부분만을 보며 마치 그 사람의 전부를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을 수도 있겠구나. 나와 같은 사람이라 착각했을 수도 있겠구나. 그러한 생각이 든 순간, 갑자기 그 사람과 한없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이내 또 다른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나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건, 어쩌면 그만큼 나에게 마음의 문을 더 열어주었다는 신호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와 다르다는 것에 서운해하거나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주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그 사람의 취향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기억력을 테스트해볼 겸,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대들의 취향을 조금 나열해볼까 한다. 내가 아는 그대는 조금 독특한 식성을 가지고 있는데, 물컹거리는 식감을 싫어해 푸딩과 회를 절대 먹지 않는다. 하지만 내 기준에선 충분히 물컹거리는 식감인 족발 껍질과 곱창, 젤리는 곧잘 먹어치운다. 또, 슬라이스 치즈는 싫어한다면서 피자 위에 뿌려져 있는 모짜렐라 치즈는 맛있게 자알 먹는다. 또, 내가 아는 그대는 부대찌개에 라면보다 우동 사리 넣는 것을 좋아하고, 무슨 음식을 먹던 무조건 청양고추를 빼놓지 않고 먹는 그대도 있다. 또, 내가 아는 그대 중엔 콜라를 너무 좋아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콜라를 마시는 콜라 덕후가 있고, 차분한 성격과는 다르게 걸그룹 춤을 추며 스트레스를 푸는 그대도 있다. 또, 마블 영화를 좋아해 같은 영화를 수 십 번도 넘게 본 그대도, 카페모카엔 무조건 휘핑크림 많이라며 산처럼 쌓아 올린 휘핑크림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대도, 생 게 알레르기가 있어 게장을 먹지 못하는 그대도, 월남쌈을 먹을 때 라이스페이퍼에 고기만 넣어 먹는 그대도 있다. 냄새에 예민해 내장 음식엔 손도 안대는 그대도 있고, 김치를 워낙 좋아해 어떤 음식을 먹던 김치를 산처럼 쌓아놓고 먹는 그대도 있다. 이처럼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대들의 취향은 아주 많고, 다양하며, 매우 복합적이고, 또 한없이 단순하다.


과연, 나는 언제까지 그대들의 취향을 알아갈 수 있을까. 또, 그대들은 얼마 동안 내 곁에 머물며 나의 취향을 알아가 줄까. 그대들의 취향을 적어 내려가며 우리가 함께 했던, 그래서 아마도 함께 기억하고 있을 그 추억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그대와 함께 변화해갔던 나의 취향 또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확고하다 믿었던 내 취향은 앞으로 몇 번이나 바뀌고 변화하게 될까. 또, 그대들의 취향은 어떠한 이유로 사라졌다 새롭게 생겨나게 될까. 부디,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그대의 취향을 빼곡히 알아 갈 수 있는 기회가. 그대만이 지니고 있는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기회가. 그대의 빛깔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누군가의 취향을 알아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계속해서 생겨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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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막연함에 속았다> 출간 기념 연재

매주 화요일, 책에 담겨 있는 글을 소개해드립니다.


제 1화 <관계를 망치고 있던 건 바로, 나였다>

제 2화 <누군가의 취향을 알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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