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포기할 용기로 꿈을 바라볼 것.
꿈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니, 사실은 자주 매우 빈번하게 생각하곤 한다. 아마 꿈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동력 같은 존재이지 않을까. 하고 싶은 것이, 도달하고 싶은 곳이 있기에 조금 더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그렇게 만드는 존재이지 않을까. 나 역시 지금까지 그 꿈이라는 것을 가슴 아주 깊은 곳에 품으며 살아왔다. 비록 그 꿈이 숨쉬기 힘들 정도로 답답함을 느끼게 하더라도. 하지만 가끔씩 아니, 사실은 자주 그 꿈이라는 것 때문에 흘려보낸 시간이, 흘러가는 시간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철들지 못한 사람처럼 이루지 못할 꿈을, 도달할 수 없는 꿈을 붙잡은 채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보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반문하게 된다. 과연, 꿈을 꾸는 것이 좋은 것일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자주 바뀌긴 했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꿈이 뭐야, 물을 때면 언제나 당당하게 말하곤 했다. 나의 꿈은 OO라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첫 번째 꿈은 화가였다. 그때 한창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그림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터라 그 해 내 장래희망 칸엔 화가라는 꿈이 적혀있었다. 그 이후에도 바뀐 나의 꿈들은 아주 다양했다. 수의사, 수영선수, 선생님, 파티시에, 기자 등 지금은 잊혔지만 참 많고 다양한 꿈을 꾸며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나는 꿈을 가진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속 가능한 꿈이든 아니든 꿈은 언제나 내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고등학교 3학년 때, 친했던 친구 한 명이 떠오른다. 한창 어떤 학교, 어떤 과를 가야 할지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있을 때 그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지금 꿈이 없어서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고. 그때 나는 한창 입시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라 꿈이 없다는 친구의 고백에 그럴 수도 있나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그만큼 그 당시 나에게 꿈은 당연한 것이어서. 그러다 내가 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 친구도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친구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들을 떠올리며 어떤 과가 좋지 않을까,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친구는 끝내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점수에 맞는 학과를 선택해 대학을 가게 되었다. 다행으로 선택한 과가 적성에 맞았는지 친구는 즐거운 대학생활을 보내는 듯 보였다. 되려 그 친구의 관심사를 함께 고민했던 나는 입시를 망친 후, 원하지 않은 대학에 들어가 아주 깊고 깊은 방황을 시작하며 뒤늦은 사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당시, 처음으로 꿈에 대해 반문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여태까지 꿈을 위해 노력해온 건 친구의 우연한 적성보다 못한 것이었나. 혼자 반항기 가득한 물음을 던지곤 했었다. 그때 처음으로 느낀 꿈에 대한 생각은, 반문은 삶의 어느 순간마다 고개를 내밀며 나를 흔들어 놓기 시작했다.
오래전, 친한 친구와 영화 한 편을 본 적이 있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여자에 대한 영화였는데, 영화 안에서 여자는 꿈을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고, 꿈을 버티기 위해 돈을 벌고,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해도 꿋꿋하게 웃으며 견뎌내는 모습들이 차례대로 나열되었다. 그렇게 꿈을 지켜 온, 버텨 온 여자는 마지막 엔딩에서 원래 하고자 했던 꿈이 아닌 그와 관련된 일을 직업으로 가지며 영화는 끝이 났다. 영화를 다 본 후, 친구와 결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친구는 영화가 ‘해피엔딩’이라고 했고, 나는 ‘새드 엔딩’이라고 생각했다. 왜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생각했는지 친구에게 물었는데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쨌든 꿈의 근처에서 삶을 지속할 수 있지 않냐고.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 작지만 집까지 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해피엔딩, 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와 똑같은 이유로 새드엔딩, 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여태까지 품어왔던 꿈을 포기하고 그 근처에서 계속 삶을 살아간다면 눈 앞에 계속 그 꿈이 보이지 않냐고. 그러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냐고. 포기한 꿈을 보고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겠냐고 말했었다.
몇 년이 지난 후, 우연히 그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했던 말이 이제야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영화 속 여자를 보며 꿈을 타협했다고 생각했었다. 타협이라는 말이 좀 웃기긴 하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진짜 가지고 있는 꿈은 여기 앞에 있는데 나는 다른 곳에서, 한 발자국 뒤에서 그 꿈을 계속 보고만 있으면 굉장히 괴로울 거라고. 그래서 그건 진정 꿈을 이룬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현실적인 면만을 생각하며 정말 이루고 싶은 꿈 언저리에서 타협했다고 속으로 질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알게 되었다,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 속 여자가 그렇게라도 꿈의 언저리에 자리를 잡고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자신이 노력해서 번 돈으로 삶을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한 거였다는 걸. 여자는 참 꿋꿋했구나. 자신의 꿈을 우회할 용기를 가지고 있었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한동안 꿈을 포기한 내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꿈의 언저리도 가지 못한 채 그냥 우회해버리는 삶을 말이다. 꽤나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던 이 꿈을, 시선을, 생각을 포기한다고 했을 때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 내 옆에 자리 잡고 있는 꿈에 관련된 것들을 지워버리기엔, 한순간에 없애버리기엔 이미 너무나도 달라붙어 있어서, 달라붙어버려서 어느 것부터 떼어내고 적응해야 할지 막막함이 밀려왔었다. 그렇게 한동안 열병을 앓듯 꿈을 포기한 나를 생각하며 고통 속에서 살아가다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대상을 잊어버리기엔, 지워버리기엔 대단히 겁쟁이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나는 꿈을 포기할 때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꿈을 포기할 만큼 결단력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오늘도 꿈을 꾼다. 포기할 수 없어 꿈을 꾸고, 포기하고 싶지 않아 꿈을 꾼다. 누군가는 아직도 그런 꿈을 꾸고 있느냐고, 지치지도 않냐고,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냐고 상처 내는 말들을 할지라도 여전히 나는 그 꿈이라는 것의 끝, 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대단한 무언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영화 속 여자처럼 그 꿈의 언저리에 자리를 잡고 꿈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주 화요일, 책에 담겨 있는 글을 소개해드립니다.
제 1화 <관계를 망치고 있던 건 바로, 나였다>
제 2화 <누군가의 취향을 알아간다는 것>
제 3화 <맥주를 마시는 어른이 되었다>
제 4화 <꿈을 포기할 때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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