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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Feb 17. 2020

지금도 용기를 내고 있을 작은 아씨들에게

<작은 아씨들>_지금 가장 필요한 이야기.

작은 아씨들

좋아하면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 왜 그럴 때 있지 않나. 너무 좋은데 이 좋아하는 마음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 내 몸과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이 감정을 표현할 만한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어떠한 말도 쉽사리 꺼내놓지 못할  때. 혹여나 이 마음이 조금이라도 덜 담길까 봐 한없이 조심스러워지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이 영화를 처음 만났을 때 이 감정을 느꼈다. 너무 좋은데 좋다고 생각하는 마음들이 서로 뒤엉켜있어서 쉽사리 말을 꺼내 놓지 못하겠는 상황. 그래서 일단 마음을 조금 더 묵혀둘 겸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생각을 꺼내보자 생각했다. 그렇게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난 뒤에는 더 좋아서. 더더 좋은 점들을 발견해버려서. 당연하게도 영화에 대한 마음이 조금 더 커져서. 다짐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갖고 나서야 비로소 뒤엉켜 있는 마음을 조금 풀어낼 용기를 갖게 되었다.


Dear women
그해 겨울, 사랑스러운 자매들을 만났다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엠마 왓슨)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이웃집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는 네 자매를 우연히 알게 되고
각기 다른 개성의 네 자매들과 인연을 쌓아간다.
7년 후, 어른이 된 그들에겐
각기 다른 숙제가 놓이게 되는데…



사실 나는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다. <작은 아씨들>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았을 뿐,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인지 전혀 몰랐다. 그래서 처음엔 의아한 마음을 조금 가지고 있었다. 왜 이 시기에 굳이 고전 작품을 리메이크하려고 하는지. 많고 많은 이야기들 중 왜 이 이야기를 선택했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팬으로서 '분명 이 작품을 선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굳은 믿음을 가지고 영화가 개봉하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렇게 만나게 된 영화는 역시나 좋았다. 그에 대한 내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만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레이디 버드> 때도 느꼈지만, 그레타 거윅 감독은 각본을 참 잘 쓴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인물을 구축하는 방식과 각각의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들이 참 좋다. 대사 안에 인물이 가지고 있는 온기를 잘 담아낸다고 해야 할까. 무심하게 툭툭 내뱉는 말 안에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마음이 묻어나 있어서 대화하는 장면들을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영화는 거의 시작과 동시에 인물들의 캐릭터를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각각의 인물들을 아주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인물의 말과 행동, 선택하는 단어들까지 정말 조 입에서만, 메그 입에서만, 베스 입에서만, 에이미 입에서만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대사들이 영화 안을 가득 채운다. 그렇게 사실적으로 구축해낸 인물들은 영화 안에 생동감과 현실성을 높여주고 몰입력을 강화시켜 끝날 때까지 영화를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냈다. 각각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들이 워낙 다르지만 그중에 가장 마음이 갔던 인물을 꼽자면 역시나 조였던 것 같다. 영화 안에서 시작과 끝을 책임지고 있는 중요한 인물이어서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글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조의 긴장된 뒷모습으로 시작된다. 한참 숨을 고르더니 이내 큰 결심을 한 듯 문을 열고 북적거리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사무실 안에서 조는 내내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친구가 쓴 글을 가지고 왔다는 변명처럼 자신에 대한 평가엔 아직 익숙하지 않다. 그 익숙하지 않은 태도는 그 뒤로 이어지는 프리드리히의 평가에서도 이어진다. 프리드리히의 형편없다는 말에 발끈한 조는 이제 당신과 친구가 아니라는 선언을 할 정도로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 앞에, 사람들의 평가 앞에 한없이 작아진다. 처음 이 부분을 봤을 때는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라고 생각을 했다.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영화를 다시 보니 전혀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쓴 글이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은연중에 알고 있어서. 글에 대한 품위보다 돈이 중요했고, 자신이 하고 싶은 글을 쓰는 것보다 잘 팔릴 수 있는 글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자신 역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들켜버린 것 같아 도망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조는 타협하고 싶은 자신과 굴복하고 싶지 않은 자신 사이에서 수없이 싸운다. 그것은 글을 쓰는 행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며 해나가야 하는 수많은 선택들 앞에서도 나타난다. 뉴욕으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로리를 받아들일 것인가. 혼자서도 외로움을 잘 견뎌내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렇기에 조가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적어 보낼 때, 자신의 글 앞에 떳떳하게 앉아 인세와 저작권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 막 만들어진 자신의 이야기를 가슴 안에 꼭 끌어안을 때 조가 느끼는 벅찬 감동은 자연히 우리에게도 전달된다. 조금 부족하고 어설프더라도, 자신의 큰 결심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 용기 내어 자신의 첫 발자국을 만들어내는 것. 영화 안에서 유난스럽게 넘어지고 다치면서도 치맛자락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씩씩하게 걷는 조의 모습은, 그의 성장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영화를 보면서 그레타 거윅 감독이 배우로 출연한 <프란시스 하>와 첫 번째 연출작인 <레이디 버드>가 많이 떠올랐다. 특히 <프란시스 하>의 엔딩에서 느꼈던 기분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다. 자신이 원하는,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된, 이제야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잘하는지 알게 된 인물이 짓게 되는 표정.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 인물이 한발 한발 내딛는 의지 서린 발걸음. 그리고 그러한 희망에게, 용기에게 보내는 묵직한 응원. 마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나에게도 묵직한 응원의 손길을 건네주는 것 같아 행복했다. 그리고 너에게도. '내 꿈과 네 꿈이 다르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야'라는 메그의 대사처럼 조의 꿈과, 메그의 꿈과, 베스의 꿈과, 에이미의 꿈과 다르더라도 너의 꿈 역시 응원한다는 사려 깊은 마음까지. 지금도 어두운 통로를 지나고 있을, 우리의 모든 작은 아씨들에게 바치는 그레타 거윅 감독의 위로의 메시지는 모든 여성들에게,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기 충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반에 한 말을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이 영화는 지금 이 시대에 너무나도 필요한 영화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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