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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pr 02. 2020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_친구로 지내도 좋지 않아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아마도 평생 영화를 짝사랑하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앞으로의 삶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찬찬히 돌아봤을 때 영화를 대하는 마음만큼은 크게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유일하게 좋아하고 유일하게 갖고 싶은 것이어서.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면 갖고 싶어 진다. 갖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 만큼 그 누구보다 절절하게 좋아하고 있음을 어필하고 싶어 진다. 커지는 마음만큼 그것을 내 것처럼 한껏 소유하고 싶어 진다. 텅 비어 있는 이 마음을 가득 채워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내 마음에 응답해주었으면. 그 응답이 되도록 나의 마음과 같아주기를 바라면서. 내 마음과 같지 않다면 차라리 너를 포기해버리겠다 선언하기도 한다. 내 마음을 가득 채워주지 않을 거라면, 온전히 내 것이 되어주지 않을 거라면 너를 평생 보지 않겠노라. 너를 놓을 자신은 없지만 너와 이별하는 상상을 해본다. 열심히 모아두었던 너와 관련된 모든 것을 버리는 상상을. 너에 대한 마음을 버리는 상상만을.


“아 망했다. 왜 그리 일만 하고 살았을꼬?”
 집도 없고, 남자도 없고, 갑자기 일마저 똑 끊겨버린 영화 프로듀서 ‘찬실’.
 현생은 망했다 싶지만, 친한 배우 ‘소피’네 가사도우미로 취직해 살길을 도모한다.
 그런데 ‘소피’의 불어 선생님 ‘영’이 누나 마음을 설레게 하더니
 장국영이라 우기는 비밀스러운 남자까지 등장!
 새로 이사 간 집주인 할머니도 정이 넘쳐흐른다.
 평생 일복만 터져왔는데, 영화를 그만두니 전에 없던 ‘복’도 들어오는 걸까?



꿈을 숭고한 마음으로 대했다. 영화를 숭고하게 좋아했다. 마치 선서를 하듯이. 절대 딴 곳에 한 눈을 팔지 않겠습니다.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며 숭고한 이 마음을 다 바쳐 살아가겠나이다. 찬실이가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처럼 그러했다. 찬실이는 영이에게 묻는다. 영화를 안 하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영이는 곰곰이 생각하다 대답한다. 영화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많죠.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것. 영화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찬실이는 영이에게 고백한다. 누가 나를 채워주었으면 좋겠다고. 외롭다고. 그 사람이 당신이길 바란다는 마음으로 영이를 안는다. 찬실이는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처럼 영이를 좋아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영화에게 버림받은 마음을 영이로 채우고 싶어 한다. 아니다, 사실은 영원히 채울 수 없는 마음을 무엇으로라도 채우고 싶어 한다. 든든하게 채워야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 헛헛하고 공허한 마음을 채우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할 거라고 두려워한다.


장국영은 찬실이에게 말한다. 그 남자랑 친구로 지내면 좋지 않아요? 왜 꼭 사귀어야 돼요? 몽땅 가지고 싶다는 마음만 버리면 얼마든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외로운 건 그냥 외로운 거예요. 사랑이 아니에요. 찬실 씨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해져요. 당신 멋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좀만 더 힘을 내봐요. 알았죠? 쌍방의 소통이 이루어져야지만 옳은 선택을 했고,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고, 옳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진득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하고 싶은 일에서 제대로 인정을 받아야지만 진정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은 항상 성급했지만 따라오는 결과들은 시원치 않아서 내내 초초해했다. 이렇게 살면 이번 생은 서서히 망가져버리고 말겠구나 쉽게 좌절했다.



몰랐다. 좋아하는 것을 꽈악 끌어안을 줄만 알았지, 내 마음처럼 쉽게 움직여주지 않으면 내다 버릴 줄만 알았지 함께 걸어가는 법을 몰랐다.  좋아하는 것 말고도 세상엔 내가 관심 있어하고 그만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몰랐다. 언제나 만사 제쳐두고 해바라기처럼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이렇게 너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으니 어서 무럭무럭 자라나 나에게 커다란 씨앗을 안겨주렴. 부담스러운 요구사항만 늘어날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찬실이가 깨닫게 된 것처럼 '좋아하는 것과 친구가 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방식엔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꼭 마주 보는 것만이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나란히 걸어가는 법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너와 가까운 듯 멀게 거리를 유지하며 나의 삶을 돌보는 법을 알아갔다. 찬실이의 말처럼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꿈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알아가게 되었다.


이제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다고,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고 이제 할 일이 많다고, 바쁘다고 말하는 찬실이를 보며 내 일처럼 기뻤다. 어느 날의 내가 느꼈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상상하며 괜스레 가슴이 벅찼다. 이제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조금 알게 되었다는 기쁨. 항상 가닿지 못했던 영화에 대한 속앓이 대신 나 자신과 손을 맞잡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채워나가는 여정. 공허한 마음을 다른 무언가로 채우는 대신 나 스스로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나가는 시간. 나 자신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게 정성껏 보듬어주고 바라봐주는 눈길과 손길. 이것만이 공허하게 뻥 뚫려있는 마음을 가득 채워줄 수 있다는 걸 조금씩 배워나갔다.



콩나물을 다듬으며 할머니는 말한다.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대신, 애써서 . 찬실이는 글을 쓴다.  글자  글자 애써서. 지루해서 하품이 나오는 글일지라도 애써서 오늘의 마음을 글에 담는다. 나도 글을 쓴다. 애써서. 십오분에  번씩 멍을 때릴지라도 애써서 찬실이에 대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는다. 엄마는 밥을 짓는다. 시큰거리는 손목을 매만지며 애써서. 가족들의 끼니를 걱정하며 애써서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든다. 강아지는 나를 바라본다. 애써서. 끔벅끔벅 졸린 눈으로 조금이라도 나를  바라보기 위해 애써서 잠을 쫓는다. 우리는 살아간다, 애써서. 하고 싶은 ,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애써서 살아간다. 어두운 산길 속에서 달을 바라보며 기도한다. 우리가 하고 싶은 , 원하는 , 애써서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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