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이토씨>_당신을 이해하고 싶었다.
세상에서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은 아빠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의 속내를 도통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만큼 아빠의 돌발적인 행동 역시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아빠는 언제나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사람이었다. 가족 누구에게도 어디를 가겠다, 언제쯤 돌아오겠다 말하지 않고 홀연히 사라졌다 언제 떠났냐는 듯 다시 돌아오곤 했다. 언제부턴가 그 행동에 적응이 되어 무덤덤해졌지만 어렸을 때는 그 점이 몹시도 못마땅했다. 우리는 가족이 아니던가. 내가 배운 가족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닌데 우리 아빠는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거지. 왜 우리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은 거지 심통이 나기도 했다.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아빠가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이.
34세 ‘아야’와 그녀의 남친 54세 ‘이토 씨’가 사는 집에
무단 입주(!)하신 74세 아야의 ‘아버지’
어쩌다 함께 살게 된 세 사람이 만들어가는
무릎 탁! 코끝 찡! 눈물 똑! 가족 시트콤
영화는 이토를 관찰하는 아야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패배자 혹은 낙오자일 거라며 이토를 다소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아야는 우연히 갖게 된 술자리가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면서 자연스레 한 집에서 밥을 먹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아야의 내레이션으로 설명되는 이 오프닝 장면은 이토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일지 유추하고 싶게 만든다. 아야는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이토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둘 만의 잔잔한 생활을 유지하던 아야는 오빠의 갑작스러운 부탁으로 그동안 소원하게 지내던 아버지와 원치 않은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돈가스 소스 하나로도 삐걱거리는 두 사람은 좀처럼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상극의 모습을 하고 있는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하고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갖는 사람은 오직 이토 밖에 없다. 아버지가 원하는 소스가 집에 없자 바로 사 오겠다며 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도, 평소 아버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공구들을 함께 구경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이토뿐이다. 아야는 언제나 먼발치에서 두 사람을 관찰하며 어딘가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고 한동안 아버지와 함께 생활을 했던 오빠와 그의 아내 역시 그저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사실 가족이 아니라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지금껏 함께한 역사가 전혀 없으니 가능한 일이라고 영화를 보며 내내 생각했다.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완벽한 타인이기에 더 맘 편히 속내를 드러내게 될 때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나 역시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어서 더욱 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집에 있는 엄마에게는 무뚝뚝하게 대하다가도 밖에서 우연히 만난 엄마 또래 여성분에겐 한없이 자상하고 친절해질 때가. 아주 찰나의 순간이기에 뿜어져 나올 수 있는 선의의 감정. 이토가 아버지에게 한없이 자상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부분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영화 안에서 이토의 과거에 대한 부분은 아주 짧게 언급된다. 이혼한 경험이 있다는 것과 아이가 없다는 것. 그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부모님은 살아계시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한 후 얻어졌을 법한 느긋한 행동과 사람을 서서히 스며들게 만드는 인자함, 어딘가 해탈의 경지에 이른 듯한 분위기까지 눈에 띄지 않더라도 어딘가에 자신이라는 나무를 뿌리 깊게 내렸을 것 같은 사람처럼. 흔하고 볼품없는 외관을 가지고 있더라도 언제나 그곳에서 자리를 지키며 기다려줄 것 같은 사람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자신을 부담스럽고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아야와 가족들을 보며 돌연 가출을 해버린 아버지는 과거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곳에서 다시 뿌리를 내리고 싶어 한다. 교사로서 제법 멋들어진 대우를 받았던 모습과 가족들과 함께 나누던 저녁식사를 그리워하면서.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아야와 오빠는 이미 훌쩍 자라 앞으로의 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찾았고 그를 유일하게 이해해주었던 아내 역시 이젠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가버린 지 오래다. 싸구려 스푼을 보물처럼 모아두었던 이유 역시 과거에 대한 미련이 한 몫하지 않았을까 유추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며 이토에게 함께 살지 않겠느냐 제안한다. 지금까지의 모습으로 비쳐볼 때 이토는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줄 것 같지만 아버지의 터무니없는 제안에 내가 왜 당신과 함께 살아야 하냐며 단호히 거절한다. 그리곤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다투고 있는 아야와 오빠, 아버지를 남겨두고 아침에 다시 오겠다는 말과 함께 떠난다. 서로를 이해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겠다는 판단으로. 이토의 의도대로 어색하게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세 사람은 과거의 추억으로 조금씩 가까워지는 듯하다가도 연신 삐걱거리며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반복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짐작한다. 아마도 우리와 함께 살고 싶어 하셨을 거라고 아버지도 분명 좋아하셨을 거라고 가족이니까 직접 묻지 않아도 마음을 모두 알아줄 거라고. 가족이기에 다 알아줄 거라는 기대감과 믿음. 그들을 더욱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어느 날, 아버지는 실버타운에서 앞으로 남은 생을 살겠다고 선언한다. 가족 그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 듯 단호하게. 아야는 아버지의 선언에 내심 안심하면서도 자식으로서 갖게 되는 부채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버지에 대한 복합적인 마음을 내내 내색하지 않은 채 아버지와 작별인사를 하던 아야에서 이토는 말한다. 나는 도망가지 않아. 어쩌면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 그 말을 이토에게 들은 아야는 내내 마음속에 맴돌았던 것을 이제야 정의 내렸다는 듯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아버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마음속에서 미뤄내고 있었던 그 마음을 고백하기 위해. 당신을 정말 이해하고 싶었다 그 말을 직접 전하기 위해.
단편 시나리오집 <하지 못한 말이 있어> 구매 안내
1997년, 13살 두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을 담아낸 시나리오집입니다. 빨리 어른이 되기를 꿈꾸면서도 변화하는 자신의 몸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평생 함께 할 거라 자신했던 친구와의 관계는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합니다. 언젠가 헤어질 거라 생각했던, 서로를 몹시도 싫어하는 줄만 알았던 부모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랑과 믿음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보여주기도 합니다. 너무도 가까워서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낸 시나리오입니다. 독립출판으로 만들어낸 책이기에 독립 책방과 제가 직접 보내드리는 구매 신청 폼에서만 책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책 판형 : 120mm X 165mm
페이지수 : 120p
양식 : 시나리오
제본 : 무선제본
가격 : 9500원
줄거리 : 연희는 혜선과 함께 교환일기를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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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과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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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말로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꾹꾹 눌러 담아냈습니다.
부디 독자님들께 그 마음이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