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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Mar 08. 2021

함께 였기에 우리는 자라날 수 있었다

<미나리>_ 부대끼는 사랑에 대하여.

미나리

우리 집은 여전히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사회생활을 하며 각자 일어나는 시간도 다르고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도 다 다르지만 밥만큼은 항상 시간을 맞춰 함께 먹는다. 학창 시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너네 뭐하니, 빨리 와서 밥 먹어."라는 엄마의 말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밥을 먹는다고 해서 특별히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것은 아니다. 눈뜨면 당연히 보게 되는 존재를 대면 대면한 태도로 TV에 시선을 고정된 채 밥을 먹는 것이 대부분이고 간혹 대화를 하게 되더라도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은 보통 엄마다. 알토란에서 봤던 건강 정보를 공유하거나 뜬금없이 떠오른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장황하게 풀어놓거나 코로나 19 확진자 수가 어땠다는 정도의 이야기들. 이 정도면 각자 먹고 싶을 때 편하게 먹어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함께 밥을 먹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 엄마의 의견을 거의 따른다. 하지만 가끔 배를 쫄쫄 굶으며 우리를 기다리거나 배가 그다지 고프지 않은 데 함께 밥을 먹으려고 할 때면 엄마에게 묻곤 한다. "꼭 그렇게까지 밥을 같이 먹어야 해?" 그러면 엄마는 항상 똑같은 말을 한다. "식구가 뭐니? 밥을 함께 먹는 사이야. 우리는 식구고 가족이니까 같이 밥을 먹어야지. "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
 가족들에게 뭔가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한예리)도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아직 어린아이들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함께 살기로 하고
 가방 가득 고춧가루,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씨를 담은 할머니가 도착한다.
  
 의젓한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여느 그랜마 같지 않은 할머니가 영- 못마땅한데…
  
 함께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이 시작된다!



영화는 알칸소의 한적한 시골 풍경으로 시작된다. 햇살이 쏟아지는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는 컨테이너 하우스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표정은 제각기 다르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집을 보며 망연자실한 모니카와 다르게 농장을 가꿔 성공하고 말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있는 제이콥은 꿈에 부풀어 있고 앤과 데이빗은 그저 새로 이사 온 곳이 신기할 따름이다. 서로를 구원해주자며 떠나온 미국이었지만 단단히 뿌리내려 정착하기에는 쉽지 않았던 그들은 폭우도 막아내지 못하는 작은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한다. 병아리 감별사 일을 하고 있는 제이콥을 따라 모니카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고 심장이 좋지 않은 데이빗과 어린 앤을 돌보기 위해 모니카의 친정엄마인 순자가 미국으로 건너와 함께 생활하기로 한다. 할머니와 함께 지내게 된 데이빗과 앤은 할머니 같지 않은 순자의 모습이 어딘가 못마땅하고 가족들에게 무언가를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농장 일을 시작한 제이콥은 생각보다 농사일이 순탄치 않다. 의지할 곳이라고는 순자 밖에 없는 모니카는 아픈 데이빗에 대한 걱정과 어린 동생으로 인해 의젓한 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제이콥의 농사일로 늘어나는 빚에 내내 마음을 졸인다.


영화는 데이빗의 시선으로 가족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밤낮으로 농장일과 병아리 감별사 일을 병행하는 아빠를 바라보는 시선도, 새로 시작한 일과 가정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콤한 쿠키 대신 쓴 한약을 달여주며 연신 짓궂게 장난을 치는 할머니의 모습도, 언제나 자신의 옆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누나의 모습도 모두 데이빗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어린 데이빗의 눈을 통해 바라본 가족의 모습은 할머니 같지 않은 순자의 모습과 어딘가 닮아있다.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 같던 아빠에게서 무모하다 못해 조금은 철없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언제나 씩씩한 모습을 하던 엄마에게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할머니 같지 않다 느껴졌던 순자는 어느 순간 가족이라는 끈을 단단히 이어주는 존재로 변화하기도 한다. 



엄마에게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그저 피만 섞였을 뿐이지 다른 관계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말이다. 가족이라는 관계의 굴레 속에서 만나게 된 사이. 원하던 원치 않았던 가족이 되어버린 운명. 만약 가족이 아니었다면 이들과 지금처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갔을까 싶은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가족이기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가족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밖에 없어지는 순간이. 차라리 가족이 아니었다면 속시원이 떠났을 그 원망 가득한 마음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랑이 피어오르곤 한다. 쉬이 소화되지 못하고 부대끼는 그 사랑의 마음이. 가족과 함께 하는 생활보다 농장일을 더 우선순위에 두었던 제이콥의 모습에 헤어질 결심을 했던 모니카는 불타고 있는 농장물을 조금이라도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불길 속에 뛰어든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원망 가득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제이콥의 농장물을 구하기 위해. 그가 그토록을 간절히 지키고 싶어 했던 꿈을 지켜주기 위해. 원망스럽지만 그의 절실한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던 모니카는 연신 마른기침을 내뱉으면서도 불길 속에서 쉬이 벗어나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대끼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몹시도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순자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미나리씨를 아무도 찾지 않고 관심도 갖지 않는 땅에 심어 둔다. 뱀이 나오니 절대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던 그곳에. 정말 미나리가 자라긴 할까 혹시나 뱀에 물리진 않을까 조바심을 내며 보던 그곳에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푸르른 미나리가 자라난다. 모든 것이 다 엉망이 되어버린 것 같은 순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을 맛보게 된 순간에도 언제나 희망은 불쑥 다시 자라날 수 있다는 듯이. 함께하는 만큼 부대끼고 버거웠지만 함께였기에 우리는 이만큼 자라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으면 걱정되고 보이면 귀찮아지는 그 마음을 의지하며. 어디에서든 쑥쑥 자라나는 미나리 같은 생명력을 동경한 채.



사월 인스타그램 





단편 시나리오집 <하지 못한 말이 있어> 구매 안내

1997년, 13살 두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을 담아낸 시나리오집입니다. 빨리 어른이 되기를 꿈꾸면서도 변화하는 자신의 몸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평생 함께 할 거라 자신했던 친구와의 관계는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합니다. 언젠가 헤어질 거라 생각했던, 서로를 몹시도 싫어하는 줄만 알았던 부모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랑과 믿음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보여주기도 합니다. 너무도 가까워서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낸 시나리오입니다. 독립출판으로 만들어낸 책이기에 독립 책방과 제가 직접 보내드리는 구매 신청 폼에서만 책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책 판형 : 120mm X 165mm

페이지수 : 120p

양식 : 시나리오

제본 : 무선제본

가격 : 9500원

줄거리 : 연희는 혜선과 함께 교환일기를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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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과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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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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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말로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꾹꾹 눌러 담아냈습니다. 

부디 독자님들께 그 마음이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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