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월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 Apr 15. 2021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 흘릴 자격도 없다

<동경 이야기>_ 너무나 염치없으므로.

동경 이야기

엄마와 성격유형검사를 한 적이 있다. 유행이 한참 지난 검사였지만 문득 엄마의 유형이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성격유형검사라는 것이 있으니 한번 해보자는 나의 말에 엄마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엄마의 눈은 여전히 TV에 고정되어 있었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문항을 하나씩 엄마에게 읽어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 관심 없이 대답하던 엄마는 질문이 거듭되자 검사에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보다 조금씩 시간을 들여 대답을 하던 중 이러한 질문이 나왔다. '부모로서 자녀가 똑똑하기보다는 착하게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문장을 읽어주자 엄마는 고민 없이 바로 질문에 대답했다. 아주 동의한다고. 왼쪽 제일 끝 동의 칸에 체크를 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려다가 엄마에게 물었다. 내가 똑똑하지 못하고 그래서 돈도 많이 벌지 못하게 돼도 착하기만 하면 진짜 괜찮겠어? 엄마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대답했다. 엄마는 똑똑하고 잘 나는 것보다 착한 게 더 중요해. 돈 많이 못 벌어도 괜찮아. 착하고 행복하게만 살면.


2차 세계대전 후.
결혼하여 도쿄에 살고 있는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노부부가 상경한다.
의사 장남과 미용실을 운영하는 둘째 딸은 곧 부모님의 방문을 부담스러워하고
바쁜 일상을 핑계로 소홀히 대한다.
전쟁 중 남편을 잃은 며느리 노리코만이 노부부를 극진히 모시는데…



영화는 짐을 챙기는 노부부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느긋하지만 내내 설레는 손길로 짐을 챙기는 노부부는 소풍 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오랜만에 자식 얼굴을 볼 생각에 한껏 들떠 있다. 찬찬히 짐을 챙긴 노부부는 구불구불 길을 내며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자식들이 살고 있는 도쿄로 향한다. 노부부를 맞이하기 위해 자식들 역시 분주히 움직이지만 어쩐지 노부부의 마음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큰 손자는 말도 없이 치워버린 책상에 버럭 화를 내며 투덜거리고 막내 손자는 언제 만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날 생각에 어색한 마음이 먼저 솟아오른다. 큰아들은 오랜만에 만난 부모에게 형식적인 안부를 묻기 바쁘고 작은 딸은 인사드리러 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남편의 물음에 어차피 며칠 지나면 얼굴을 보게 될 테니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며 번거로운 마음을 내비친다. 그런 자식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부부는 그저 오랜만에 본 자식과 손자들의 얼굴에 연신 환한 미소를 짓는다.


언제부터 부모의 품을 불편하게 느끼게 되었을까. 사려 깊게 챙겨주던 손길이 언제부터 괜한 참견처럼 다가오기 시작한 걸까. 어렸을 때는 더 가까이하지 못해 애가 탔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거리를 두고 싶어 애가 탄다.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말이 괜한 잔소리처럼 느껴지고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말이 한없이 귀찮게 다가오기도 하고 예전과 다른 더딘 모습에 버럭 화를 냈다가 금세 후회하고 만다. 언제나 곁을 지켜줄 거라 생각했던 부모가 세월의 무상함 앞에 조금씩 약해지고 둔해지는 모습을 보게 될 때 덜컥 솟아올랐던 생각 하나가 있었다. 부모의 쇠약해진 몸보다 먼저 들었던 생각. 부모가 나를 두고 떠나가버리면 어쩌지라는 두려움. 혼자가 되어버리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 부모의 건강보다 앞서서 떠오른 건 내 앞날에 대한 걱정과 불안뿐이었다. 이리도 이기적인 자식임에도 부모는 혹시나 당신이 짐이 될까 염려하고 미안해하기 바쁘다.



둘이 함께 떠났던 여행에서 혼자가 되어 돌아온 노인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친 자식보다 더 살뜰히 챙겨주었던 노리코가 노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자 노인은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덤덤히 말한다. 오늘도 날이 덥겠구나. 모두가 떠난 빈 집에 홀로 남겨진 노인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곳에서 모든 것이 바뀐 듯한 느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난하게 이어질 생을 덤덤히 받아들이겠다는 듯 집 안을 가만히 바라본다. 우리의 삶은 이리도 덧없고 고귀한 것. 지루하고 생생한 것. 단단하고도 한없이 연약한 것. 그럼에도 삶은 그 모든 것을 기꺼이 감내할만하다는 것을 영화는 담담한 어조로 전해준다. 영화의 담담하고도 강력한 생의 아름다움을 믿어보고 싶어 졌다.



사월 인스타그램 





단편 시나리오집 <하지 못한 말이 있어> 구매 안내

1997년, 13살 두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을 담아낸 시나리오집입니다. 빨리 어른이 되기를 꿈꾸면서도 변화하는 자신의 몸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평생 함께 할 거라 자신했던 친구와의 관계는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합니다. 언젠가 헤어질 거라 생각했던, 서로를 몹시도 싫어하는 줄만 알았던 부모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랑과 믿음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보여주기도 합니다. 너무도 가까워서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낸 시나리오입니다. 독립출판으로 만들어낸 책이기에 독립 책방과 제가 직접 보내드리는 구매 신청 폼에서만 책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책 판형 : 120mm X 165mm

페이지수 : 120p

양식 : 시나리오

제본 : 무선제본

가격 : 9500원

줄거리 : 연희는 혜선과 함께 교환일기를 쓰기로 한다.


판매처 안내

<온라인과 오프라인>

스토리지북앤필름 강남점 - 스토어 바로가기

에이커북스토어(전북) - 스토어 바로가기

올오어낫싱(독산동) - 스토어 바로가기

관객의 취향 (관악구) - 스토어 바로가기

재론북스 (신림) - 스토어 바로가기


<오프라인>

스토리지북앤필름 해방촌

느림의 미학 (강원)

하우스 북스 (잠실)  

후란서가 (홍대)

북티크 (홍대)


<사월 배송>

제가 직접 포장하여 배송해드리는 구매 신청 링크

 <하지 못한 말이 있어> 구매 신청 


그동안 정말로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꾹꾹 눌러 담아냈습니다.

부디 독자님들께 그 마음이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의 계절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