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와 앨리스>_ 함께였기에 우리의 봄은 찬란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척한 적이 있다. 그때의 난 중학생이었고 상대는 학생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했던 남학생이었다. 학업 성적도 우수했고 운동도 잘하고 성격까지 온순하여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평판이 좋았던 아이였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면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 자주 떠올랐고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 아이의 오늘 일과를 줄줄 나열하기 바빴다. 당시의 나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 늦은 편이었고 무엇보다 조금은 마이너한 취향 탓에 모든 아이들의 관심을 받는 아이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새삼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친구들 때문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친구들은 그 아이에 대한 공통 관심사가 있었고 나는 그 대화에 끼지 못해 은근히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참 친구들과의 관계에 예민해질 나이였으므로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견디는 것보다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갖는 편이 더 나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아이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호들갑을 떠는 친구들 사이에서 함께 설레는 시늉을 하거나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을 때 뭘 그리 보냐는 친구의 물음에 때마침 운동장에서 뛰고 있던 그 아이를 보고 있었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밤늦게 그 아이 때문에 속앓이 하는 친구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당시의 나에겐 굉장히 중요하고 진지한 일이었다.
하나는 어릴 때부터 단짝 친구인 앨리스가 점찍은 남자애를 보여준다며 끌고 간 곳에서 마음을 콩닥뛰게 만드는 꽃미남 소년 미야모토를 발견한다. 몰래 뒷조사를 통해 확인한 바로 미야모토는 한 학년 선배이자 만담동호회 회원. 하나는 만담동호회에 가입해서 미야모토의 관심을 얻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는 마침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된다. (이런!)
머리 다친 선배에게 기억 상실이라 뻥친 것도 모자라 '나한테 사랑 고백했잖아!'라고 외치는 귀여운 스토커 하나. 그리고 친구의 애정사기극(?)에 거침없이 동참한 앨리스. 그러나 그들의 우정은 미야모토로 인해 예기치 않은 삼각관계로 발전하는데...
영화는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하나와 앨리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아직 찬기운이 가득한 바람을 맞으며 걸음을 옮기던 두 사람은 한산한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햇살이 가득 쏟아지는 지하철에서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하나는 갑자기 지하철에서 내리는 앨리스를 따라 얼떨결에 지하철에서 내리게 된다. 앨리스를 따라 도착한 곳엔 책을 읽고 있는 남학생 마사시와 그 뒤에 서 있는 핑크 셔츠를 입은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핑크 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앨리스는 두 사람은 분명 형제일 거라며 자신이 핑크 셔츠를 입은 남자와 이어지게 되면 동생처럼 보이는 마사시를 갖게 해 주겠다며 장난을 친다. 앨리스의 말에 처음에는 별 반응 없이 짓궂은 농담을 하며 대화를 나누던 하나는 앨리스의 말 때문인지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에게 반해버렸는지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하나 둘 담아두기 시작한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누군가가 툭 던지는 말 한마디에 전혀 관심에도 없던 상대에게서 호기심이 생겨날 때가. 하나는 장난처럼 툭 던진 앨리스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홀린 듯 마사시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마사시와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된 하나는 그가 가입한 만담 동아리에 가입하여 그와 더욱 가까워질 기회를 엿본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읽으며 걸어가는 마사시의 뒤를 따라가던 하나는 그가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을 목격하게 되고 사고로 어리둥절해있는 마사시에게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었다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충동적으로 저지른 거짓말에 하나는 그에 대해, 더불어 자신에게 대해 이야기하고 알게 될 계기를 마련하게 되고 더욱 거짓말을 교묘하게 만들기 위해 앨리스의 도움까지 받게 되며 세 사람은 사랑과 우정에 대해 더 나아가 아직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에 대해 배우기 시작한다.
마사시에게 푹 빠져있는 하나를 위해 앨리스는 마사시의 전 여자 친구인 척 연기를 하기 시작한다. 핑크 셔츠를 입은 남자 앞에서 책을 읽던 사람이 마사시였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던 앨리스였지만.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겠다며 두 사람 사이의 추억을 묻는 마사시에게 실제로 함께 한 적이 있었다는 듯 앨리스는 꽤나 생생하게 추억을 반추한다. 앨리스 자신도 스스로가 만들어낸 기억에 헷갈려할 정도로. 마사시를 먼저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함께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며 케이크를 나누어먹었다는 사실도, 함께 바다 여행을 가고, 바람에 흩날려진 카드를 함께 주었다는 사실도. 너무나 생생하게 추억을 이야기하는 앨리스의 모습이 전개될수록 앨리스가 누구와의 추억을 반추하고 있는지 우리는 조금씩 깨닫게 된다. 딸의 인생보다 연인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 여기는 엄마와 살고 있는 앨리스는 뭐든 혼자서 해내는 것에 익숙하다. 혼자 밥을 챙겨 먹고, 혼자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비 오는 날 혼자 운동도 즐기면서. 마음을 표현하는 일보다 마음을 삭히는 것을 먼저 배운 앨리스는 오랜만에 만난 아빠 앞에서도 기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아빠와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을 마음속에 꽁꽁 숨겨두던 앨리스는 대뜸 추억을 묻는 마사시에게 아빠와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을 마치 마사시와 함께 한 일인 냥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면 아빠와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다는 듯이.
마사시를 사이에 두고 묘한 신경전을 부리던 하나와 앨리스는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앨리스는 서로 사귀었던 적이 없었다고 고백하고 더불어 마사시에게 느끼고 있는 호감의 마음을 하나를 위해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하나는 자신에게 고백했다는 사실도,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사실도, 자신이 마사시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두 고백하기로 한다. 그토록 바라던 첫사랑도 엉망이 되어버리고 앨리스와의 관계마저 어색해지고 만 하나는 발레 학원을 함께 다녔던 친구를 통해 과거 앨리스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확인하게 된다. 서로의 몸에 기댄 채 환한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곤 뒤늦게 깨닫게 된다. 집 안에서 홀로 외로이 지냈던 자신을 발견해준 사람도, 처음 발레를 배울 수 있게 이끌어 준 사람도, 언제나 자신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 사람도 모두 앨리스였다는 사실을. 앨리스 역시 오디션 장에서 우연히 추게 된 발레를 통해 하나와의 추억을 복기한다. 그리고 스스로가 진정 사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앨리스가 표지 모델이 된 잡지를 껴안으며 걸어가는 하나의 모습 뒤로 뒤따라 걷는 앨리스의 모습 보인다. 아직 서로에 대한 어색한 감정이 남아 있는지 하나를 지나쳐 가려던 앨리스는 하나를 보며 웃음을 터뜨리고 하나 역시 앨리스에게 쉬이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 잡지를 숨기며 장난을 친다. 서로를 바라보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던 두 사람은 기대에 찬 얼굴로 함께 표지를 확인한다. 코에 난 여드름 하나에도 즐거워하며 두 사람은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함없이 웃으며 함께 걸어 나가겠다는 듯이.
단편 시나리오집 <하지 못한 말이 있어> 구매 안내
1997년, 13살 두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을 담아낸 시나리오집입니다. 빨리 어른이 되기를 꿈꾸면서도 변화하는 자신의 몸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평생 함께 할 거라 자신했던 친구와의 관계는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합니다. 언젠가 헤어질 거라 생각했던, 서로를 몹시도 싫어하는 줄만 알았던 부모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랑과 믿음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보여주기도 합니다. 너무도 가까워서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낸 시나리오입니다. 독립출판으로 만들어낸 책이기에 독립 책방과 제가 직접 보내드리는 구매 신청 폼에서만 책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책 판형 : 120mm X 165mm
페이지수 : 120p
양식 : 시나리오
제본 : 무선제본
가격 : 9500원
줄거리 : 연희는 혜선과 함께 교환일기를 쓰기로 한다.
판매처 안내
<온라인과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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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스토리지북앤필름 해방촌
느림의 미학 (강원)
하우스 북스 (잠실)
후란서가 (홍대)
북티크 (홍대)
<사월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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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말로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꾹꾹 눌러 담아냈습니다.
부디 독자님들께 그 마음이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