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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Apr 11. 2021

호텔에 살아도 호캉스는 포기 못해!

호텔에 살면 크지 않은 객실 안에서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니 자꾸만 짐이 늘어만 간다. 단정한 호텔 객실이 점점 가정집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다. 보통 새로운 나라의 호텔로 이동을 하면 큰 여행가방 2개 정도로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면서 매번 굳은 다짐 한다. 짐을 늘리지 않기로. 하지만 매번 나의 굳은 의지는 어디로 가는지… 계약을 마치고 다음번 나라로 떠날 때면 보통 2배 심할 때는 3배까지 짐이 늘어나 있다.   


다들 호텔에서 살면 산뜻한 분위기의 단정한 객실에서 사는 줄 안다. 뭐 한두 달 정도 산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년 단위로 넘어가게 되면 아무래도 산뜻한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호텔 방이 주는 그런 산뜻함은 물건이 없는 공간의 여백에서 오는 것임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래서 종종 이런 산뜻함을 느끼기 위해, 살고 있는 호텔에서 누릴 수 없는 서비스를 맛보기 위해 정기적으로 다른 호텔로 호캉스를 갔다. 주변인들로부터 호텔에 살면서 호캉스를 한다며 다른 호텔로 숙박을 하러 가는 나를 보고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역시 호텔에 살아도 호캉스는 포기할 수 없다. 


특히 마닐라와 하노이의 호텔에서 살 때는 호캉스를 자주 했다. 


우선 가장 큰 이유는 호텔 수영장에 가기 위해서였다. 살고 있는 호텔에도 물론 수영장이 있었지만, 역시 수영장에서 손님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은 좀… 역시 사양하고 싶다. 러닝머신 같은 데서 뛰다가 만다면 모를까, 수영장은 역시 아니올시다. 탈의실에서는 더더욱 노노!! 


가장 애용했던 호텔은 마닐라의 ‘소피텔 필리핀 플라자’ 호텔이다. 이곳은 나의 마닐라 최애 호텔이기도 하다. 도심 속 리조트 콘셉트로,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있으면 동남아 리조트로 순간 이동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시끄럽고 복잡한 마닐라 도심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곳이다. 


호텔이 위치하고 있는 마닐라 CCP Complex는 간척지 위에 만든 컨벤션 센터 단지이다. 필리핀이 한국보다 부유했던 시절인 1970년대 후반,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이멜다 마르코스가 마닐라 베이의 ‘바다’를 가리키며 호텔을 갖춘 컨벤션 단지를 만들라고 명령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덕분에 이곳은 마닐라 호텔 중에 유일하게 바다를 눈 앞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닐라 선셋은 덤으로 즐길 수 있다. 


집밥이 많이 그리워질 때면 종종 레지던스 호텔로 호캉스를 갔다. 레지던스 호텔엔 부엌세간 살림이 다 갖춰져 있으니, 한국의 다이소에서 공수해 온 캠핑용 양념통에 필요한 양념을 나눠 담고 마트에 들려 재료를 사서 체크인을 했다. 가끔씩 필요한 양념을 실수로 빠뜨린 경우, 룸서비스로 간단한 음식 하나 주문하면서 필요한 양념을 조금만 가져다주라고 하면 대부분 무료로 제공해준다. 내 경우에는 이런 부탁을 할 땐 보통 죽을 시킨다. 


자주 갔던 호텔 중에는 하노이의 ‘노보텔 스위트’가 있다. 주변에 한인타운이 있어 한국 식료품점에 들렀다 가기에도 좋은 동선이었다. 메뉴는 역시 한식! 김치찌개, 생선구이, 카레 등 냄새가 심하게 나는 음식들도 걱정 없이 맘껏 만들어 먹었다. 동시에 한국 드라마를 시리즈로 보면서 코리안 나잇을 즐긴다. 가끔은 다른 호텔에서 일하는 한국인 호텔리어나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외국인 친구들도 초대해 함께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종종 용산과 동대문의 노보텔 스위트를 갔다. 이번엔 반대로 한국으로 귀국한 하노이와 싱가포르에서 만난 인연들과 함께 각 나라의 대표 음식을 나눠먹으며 추억도 함께 나눴다. 쿠킹 클래스를 다닌 것이 이럴 때 참 유용하게 쓰인다. 싱가포르에서 들어오면서 캔으로 된 싱가포르 슬링 칵테일, 쿠에 파이 티(Kueh Pie Tee)를 위한 타르트 쉘, 바쿠테를 위한 소스를 사 와지고 와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싱가포르에서 만난 지인을 불러 함께 파티를 하기도 했다. 이 때는 한국 드라마 말고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보면서. 


가끔씩 스위트 객실을 빌려 이런저런 파티를 하기도 하는데, 생일 파티나 페어웰 파티 베뉴는 무조건 호텔이다. 아무래도 본인이 일하는 호텔에서는 감시하는 눈들이 많아 쉽게 떠들고 놀 수 없으니 다른 호텔로 원정을 간다. 가장 자주 갔었던 호텔들은 직원가를 사용할 수 있는 자매 호텔. 보통 호텔의 카테고리에 따라서 일반 객실은 박당 40~100불 사이로 숙박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 동료 찬스를 쓰기도 했다. 특히 친했던 동료가 다른 호텔 브랜드로 이동한 경우, 동료의 이름으로 대신 예약해 다른 호텔의 직원가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도 함께 파티에 초대하여 함께 체크인을 하면 문제 해결! 운이 좋은 경우 무료로 업그레이드를 받거나 추가 금액을 내고 스위트 객실로 업그레이드를 해서 원래 가격의 반 정도의 가격으로 스위트를 이용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다시 호텔에 살지 않고 있기에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호캉스를 떠난다. 


다행히도 언제부턴가 호캉스도 주류 여행 트렌드가 되어 호캉스를 즐기는 이들을 바라보던 못마땅한 시선이 확 줄어들었음을 실감한다. 특히 코로나 시대엔 빠질 수 없는 대체 여행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제는 호캉스를 넘어 호텔한달살기까지 다양한 호텔 레저 숙박의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아주 바람직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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