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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Apr 11. 2021

호텔에서 먹고 살기 2

프런트에서 근무하다 보면 장기 출장자 손님들과 점점 친해지게 된다.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3달까지 장기출장을 나오는 손님들이다. 이들과 친해지게 되면 좋은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할 때마다 한국에서 가지고 왔지만 다 소진하지 못하고 남은 식료품들을 한국 직원에게 주는 것이다. 외국인 직원들에게 주면 아무래도 한국인 직원보다는 리액션이 덜하니 주는 기쁨이 떨어진다고 하면서 꼭 한국 직원을 찾아서 나눠주는 것이다. 종종 남은 것을 주고 가는 것 같다며 미안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난 언제나 웰컴이었다. 


즉석밥, 즉석국, 3분 요리, 참치, 스팸, 김, 밑반찬들까지 종류도 참 다양하다. 요즘 한국의 즉석조리 음식들이 워낙 잘되어 있어 별별 메뉴를 다 맛보았다. 이제는 어느 나라를 가나 한인마트가 있어 해외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지만, 공짜는 언제나 즐겁지 아니한가! 아무튼 다 받아두면 급할 때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어떻게 보면 장기 출장자들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호텔에서 살면서 거의 매일 비슷한 메뉴로 나오는 호텔 조식 뷔페에 이미 질릴 때로 질리고, 룸서비스 메뉴에서도 먹고 싶은 음식을 더 이상 찾지 못할 때라면 3분 카레에 김치와 먹는 밥이 훨씬 더 만족지수가 높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무거워도 캐리어 가방 하나 가득히 한국음식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오는가 보다. 


특히 한국에서 인기 있는 라면이나 과자들까지 일부러 공수해서 가져다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한국에서 허니버터 칩이 대란이 났을 때, 장기 출장자 한 분으로부터 선물로 받아 한국에 사는 친구보다 외국에 있는 내가 먼저 맛본 적도 있었다. 호텔의 규정상 보통 100달러 이상의 물품은 손님들로부터 받을 수 없고, 100달러 이하더라도 인사과에 보고를 해야 하지만, 이런 스낵이나 음식류는 호텔 측에서도 감안해 주기 때문에 부담 없이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전수받은 아주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장기 숙박을 하는 동안 호텔 조식을 최대한 질리지 않고 오래 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 조식은 하루에 꼭 한 가지 메뉴만 먹는 것이다. 오늘 아침 쌀국수로 로컬식을 먹었으면, 내일은 아메리칸 블랙퍼스트 스타일로, 모레는 시리얼에 우유 말아 컨티넨탈 스타일로. 

매번 뷔페에서 식사를 하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접시에 이것저것 가득 담게 된다. 처음으로 호텔 뷔페에서 무료로 식사를 할 수 있는 엑스팟 베네핏을 얻게 되었을 때, 정신 못 차리고 이것저것 먹다가 딱 일주일 만에 질리게 되었다. 오늘 못 먹으면 내일 먹을 수 있고, 모레도 먹을 수 있으니 항상 과욕은 금물이다. 무조건 한 메뉴만 파야 길게 갈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없는 메뉴를 만들어내는 능력도 있다. 조식 뷔페의 에그 코너에서 계란 프라이 두 개를 써니 사이드 업으로 요청하여 그 위에 밥, 참기름, 간장을 뿌려 간장 계란밥으로도 만들어 먹고, 쌀국수 고깃국물에 국수 대신 밥을 말아서 고수 대신 쪽파랑 깍두기를 넣어 국밥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나도 한번 이들을 따라 해 보고 꽤 만족스러워 종종 써먹던 레시피이기도 하다. 


역시 장기 출장자들은 한 수위다. 


장기 출장자 외에도 친해지면 호텔 식생활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이들이 있다. 바로 셰프다! 


보통 동남아 호텔의 엑스팟 직원들은 호텔의 메인 다이닝의 뷔페나 단품 메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데, 대부분 서양식 메뉴와 그 나라의 로컬 메뉴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일식이나 중식 등 호텔 안에 위치한 다른 퀴진의 레스토랑의 경우 보통 50% 할인된 금액으로 이용할 수 있다. 


뷔페도 질리고, 외부의 식당으로 나가기고 귀찮고, 방에서도 손 하나 까닥하고 싶지 않을 때면, 내돈내먹이더라도 이곳들을 종종 이용하였다. 이때 각 레스토랑의 셰프들과 친해지면 서비스가 아주 팍팍 나온다. 시키지도 않았던 메뉴들이 테이블에 올라오고, 메뉴에 없는 것들마저 종종 테이블에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신메뉴를 개발하거나 해외 초청 셰프와의 프로모션을 진행하기 위해 테이스팅이 필요할 때면 항상 먼저 불러 맛 보여 주기도 했다. 거기다 이들은 셀 수 없이 많은 타 호텔의 와인 디너나 와인 수입업자가 진행하는 와인 테이스팅과 같은 행사에도 자주 초청되기에 이들의 +1으로 종종 참석하기도 하였다.  


같이 일하는 엑스팟들도 중요 인물이다. 엑스팟들은 보통 2년 정도의 계약직의 노마드 호텔리어가 대부분이라, 계약을 마치고 나라를 이동하는 이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 다들 짐을 줄이기 위해서 애를 쓴다. 그래서 이들과 미리미리 친해지면 호텔 생활을 하는데 유용한 물건들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고가의 물건이라면 싼 가격으로 살 수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엔, 300불 정도 하던 밥솥을 50불에 구매하기도 했고, 전자레인지를 무료로 받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블렌더, 커피머신, 에그 쿠커까지 다양하게 득템 하기도 하였다. 덕분에 내 방은 점점 가정집처럼 변해가는 부작용이 살짝 생기기도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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