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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Apr 11. 2021

그래서 호텔에 사니까 좋니?

괌 호텔 인턴십을 시작으로 지난 13년 동안 호텔에서 살기도 호텔 밖에서 살기도 하였다. 호텔에서 사는 것을 인하우스 (In-house)라고 하는데, 일했던 7곳의 호텔 중 4곳, 총 8년 동안 인하우스 생활을 했다. 지인들 중에는 호텔에 살면 좋겠다는 부류와 불편하겠다는 부류가 극명히 갈렸는데, 그때마다 호텔에 살아서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을 마치 외운 듯이 나열해 주었다. 결정은 당신의 몫! 


먼저 인하우스의 좋은 점을 3개만 뽑자면, 가장 먼저 출퇴근 시간이 매~우~ 절약된다는 것이다. 막히는 것이라고는 엘리베이터밖에 없다. 특히 마닐라에 살 때는 교통 정체가 극심해서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헬을 맛볼 수 있다. 10분 거리가 적어도 한 시간 이상 소요되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도시에서 출퇴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이득이었다. 동료들이 오전 7시에 집을 나선다면 나는 8시에 일어나 준비를 해도 너무나 여유로웠다. 출퇴근 비용도 물론 함께 절약된다. 보통 하루 왕복 택시비로 400페소(한화 약 1만 원)를 사용한다면, 한 달에 약 20만 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전기세, 수도세, 인터넷 등 어떤 공과금도 낼 필요가 없다. 일본에서 일할 때에는 원룸을 구해서 호텔 밖에서 생활했는데, 물가 비싼 일본에서 아무리 절약한다고 한들 공과금으로 월급의 10%는 사용했던 것 같다. 특히나 이 당시에는 호텔리어를 막 시작한 단계인지라 월급이 쥐꼬리만큼 작아서 10%는 부담이 컸다. 여름에 에어컨 좀 틀었다가 전기세 폭탄을 맞은 이후부터 집안에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집 주변 맥도널드에서 밤 12시까지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일본 호텔 다음으로는 베트남 호텔로 이동을 하였다. 이 때는 다시 인하우스로 호텔의 레지던스 객실에서 살았기에 원 없이 에어컨을 돌렸다. 여름철 에어컨 전기세 걱정은 개나 줘버려! 사랑해요! 인하우스! 


마지막으로 하우스 키핑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점이다. 직원들이 사는 객실이지만 언젠가는 다시 손님이 사용할 객실이기에 퀄리티 유지를 위해 청소는 물론이며 객실 안의 무언가가 수명을 다하면 재깍재깍 교체를 해준다. 호텔에서 연박을 한 경험이 있다면 객실 안 어느 곳을 청소하고 무엇을 교체하는지 다들 잘 알 것이다. 휴지 하나 물 한병 자질구레한 생활필수품을 하나도 살 필요가 없다. 호텔 욕실 어메니티가 마음에 든다면 샴푸, 린스 같은 것도 살 필요가 없다. 뽀송뽀송한 새 수건이 항상 두둑이 쌓여있다. 쓰레기 분리수거가 뭐예요? 런드리를 요청하면 다음날 객실 안 옷장 안까지 배달되어 있다. 


인하우스의 좋은 점을 읽다 보면 천국 같은 생활처럼 보일 텐데, 세상만사 좋은 점만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렇다면 인하우스라 불편했던 점 3개를 뽑아보겠다. 


먼저 손님과의 만남에 항상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 출장이나 여행으로 호텔을 찾은 짧은 일정의 손님이라면 숙박 중에 무슨 일이 있어도 체크아웃을 하고 나가면 우선 일단락되지만, 장기출장으로 오랜 기간 숙박하는 손님들도 있기에 로비와 엘리베이터에서 항상 긴장의 끈을 놓칠 수가 없다. 특히 이들이 컴플레인을 한 직후라던지…으악…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가끔 밖에서 과음을 하고 호텔로 돌아갈 때에도 택시 안에서는 만취녀지만, 호텔 로비에 도착해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행동해야만 했다. 휴무 때에는 세수도 안 하고 조식당으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혹여나 손님과 마주치게 될까 봐 조식을 포기한 적이 부지기수였다. 꾸질꾸질한 모습으로 조식당 안에서 인사만 기본 10번 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아라. 차라리 그럴 바엔 조식은 그냥 안 먹는 게 상책이다.  


또한 호텔에 비상 상황이 생기면 밤이든 낮이든 언제든지 불려 나간다. 마닐라의 호텔에 살 때 있었던 일이다. 하루는 폭우가 쏟아져 마닐라의 도로 대부분이 물에 잠겨 호텔 안에 고립이 된 적이 있다. 도로가 마비되어 많은 직원 대부분이 긴급 휴가(Emergency Leave)를 사용하고 출근을 하지 않았는데, 당시 인하우스였던 나는 얄짤없이 출근을 해서 당장 직원이 필요한 부서의 부족한 맨파워를 채워줘야만 했다. 


같은 호텔에서 한 번은 한밤중에 화재경보기가 울린 적도 있다. 호텔 바로 옆 건물에서 불이 난 것이다. 자다 말고 당직 매니저의 호출을 받고 정신없이 뛰어나와 손님들을 비상대피소로 안내를 하게 되었다. 이 밖에도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비상 상황 때마다 통역을 위한 전화받기, 컴플레인 핸들링 등 다양하게 호출을 받는다. 쉬는 날에는 전화를 받지 않으면 될 것이 아니냐고?! 휴대폰 전화를 안 받으면 객실 전화로, 정말 급할 때에는 객실 문 앞에서 방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호텔이 가끔 오버부킹 상황이 되는데, 최악의 경우 방을 빼야 한다. 오버부킹이 되는 상황을 안 만들면 되겠지만, 호텔마다 체크인 당일 취소되는 예약을 생각하고 총 객실 수보다 조금 더 많은 예약을 받거나 확정된 예약의 시스템 미입력으로 예약 사고가 날 때가 종종 있다. 


방을 빼야 하는 상황을 범프 오프(Bump off) 당한다고 한다. 괌의 호텔에서는 인하우스 직원 중 인턴이 가장 낮은 직급이었기에 이 범프 오프 대상 1순위였다. 이 당시는 정말 셀 수도 없이 방을 뺐던 것 같다. 시도 때도 없는 이사에 언제든지 쉽게 짐을 꾸릴 수 있도록 빈 박스는 인턴의 필수품이었다. 연차가 쌓이고 직급도 올라가니 범프 오프 당하는 수가 확실히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버 부킹이 되는 날이면 항상 긴장을 해야만 했다. 


가장 이상적인 호텔 인하우스 생활이 있다. 바로 호텔에서 함께 운영하는 레지던스에서 인하우스를 하는 것이다. 특히 이 레지던스가 호텔과 건물이 따로 나뉘어 있다면 최고다. 호텔의 서비스와 어메니티를 똑같이 누리면서 주방까지 있어 요리도 가능하다. 오버 부킹 상황도 없고, 손님과 부딪히는 일도 한밤 중에 불려 나가는 일도 확 줄어든다.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호텔에서 살면 나가 살고 싶고, 나가 살면 호텔에 들어와서 살고 싶다. 내 마음이지만 정말 간사하다. 그래도 내게 두 개의 선택지가 동시에 주어진다면… 


아무튼, 호텔이다 

이전 01화 오늘부터 호텔에서 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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