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프릴 Apr 11. 2021

객실 바꾸기 대작전

두 번째 하노이 호텔 생활을 시작하기 전, 최종 면접을 보기 위해 마닐라에서 하노이로 잠시 건너갔다. 면접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호텔의 총지배인이 궁금한 것이 있냐고 물었다.  질문은 없었고 객실을 직접 볼 수 있을지 부탁했더니 흔쾌히 직원 한 명을 붙여주었다. 


호텔 객실을 인스펙션 하며 앞으로 내가 팔아야 할 객실이자 동시에 내가 살아야 할 객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꽤 오래된 호텔이었지만 리노베이션을 한지 몇 해 지나지 않았던 터라 객실 컨디션이 꽤 좋은 편이었다. 이런 객실이라면 팔 자신도 살 자신도 있었다. 


마닐라로 돌아가 필리핀 생활을 정리하고 베트남 비자 준비를 마치고 다시 하노이로 왔다. 두 번째 하노이 라이프의 시작이었다. 이번 호텔의 경우 보조금을 받고 호텔 밖에서 살 수도 있고 인하우스 생활도 가능했는데, 처음 3개월은 수습(Probation) 기간인지라 무조건 호텔에 살아야 했다. 그리고 수습 평가(Probationary review)를 통과하면 호텔에서 살지 나가 살지를 최종 결정하는 것이었다. 나야 뭐 언제나처럼 호텔을 택하겠지만. 


밤 비행기를 타고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빠르게 체크인을 마치고 앞으로 나의 보금자리가 될 객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헐…’ 방이 너무 작았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지난번 면접이 끝나고 인스펙션 할 때 보았던 그 객실 크기가 아니었다.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객실 타입을 물었다. 디럭스룸이라고 객실 타입을 확인해주었다. ‘디럭스라면 전에 인스펙션 했던 객실 타입이 맞는데… 내가 착각을 한 건가… 다른 방을 보았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갔지만 워낙 밤도 늦고 아직 첫 출근도 차지 않았으니 우선 조용히 있기로 했다.


첫 출근을 하고 트레이닝 스케줄을 살펴보았다. 둘째 날 바로 객실 인스펙션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객실을 확인해 보기로 하였다. 다행히 별로 바쁘지 않았던 시기라서 호텔의 전 객실 타입을 볼 수 있었다. 장장 2시간에 걸쳐 인스펙션을 하였는데, 백퍼 내 방이 작은 것이었다. 인스펙션을 마치고 객실 카드키를 반납하기 위해 프런트의 객실 배정을 담당하는 직원을 찾아 내가 머무는 방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았다. 그리고 내 방과 같은 번호로 끝나는 모든 층의 XX24 객실이 다른 객실보다 조금 작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통 호텔의 코너 객실이 다른 방들보다 조금 클 때가 있는 것처럼 반대로 작은 방들도 있다. 


한 주를 무사히 마치고 주말이 되자마자,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객실 변경을 요청했다. 꼭 XX24라인은 피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랬더니 직원이 클럽 라운지가 있는 층의 XX30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말을 바꿀까 봐 바로 프런트로 내려가 새로운 객실의 키를 받아왔다. 짐도 그냥 싸는 둥 마는 둥 트렁크에 막 집어넣고 새로운 객실로 향했다. 


‘클럽 룸이라면 욕실이 더 럭셔리했던 거 같은데…’ 부푼 가슴을 안고 객실 문을 열었는데, 여긴 또 뭥미?’ 전 객실 중에 이 객실만 욕조가 없는 곳이었다. 대신 이 객실엔 일반룸과 클럽 룸 중 유일하게 베란다가 딸려있는 곳이기도 했다. 덕분에 전체 객실의 크기는 전 객실보다 커졌지만 욕실과 테라스만 엄청 커졌다. ‘이것들이… 진짜 나 물맥이려는 건가?!’ 


첫 번째 주말을 마치고, 월요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호텔 시스템으로 자료수집을 시작했다. 전투를 하려면 칼을 갈아야지. 그리고 호텔의 모든 인하우스 직원의 객실과 나와 같은 포지션이었던 전임자와 전 전임자까지 프로파일을 찾아 현재 어떤 방에 숙박하고 있는지 그리고 과거 숙박기록까지 전부 확인해보았다. 보아하니 프랑스 국적의 직원들은 타이틀을 불문하고 전부 스위트룸에 살고 있었고, 중국인 셰프와 일본인 게스트 릴레이션은 나와 같은 일반 객실에 살고 있지만 XX24라인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프랑스 계열의 호텔이었는지라 프랑스 직원들의 입김이 세고, 총지배인까지 프랑스인지라 맨날 지들끼리 모여서 쏼라쏼라, 분명 특혜가 있었으리라. 


그런데 칼은 갈았지만 칼을 쓸 수가 없었다. 당시 호텔이 S브랜드에서 P브랜드로 리브랜딩 하게 되면서 호텔 분위기가 너무 어수선했기 때문이다. 총지배인을 포함한 프랑스인들이 하나둘씩 빠지고 중국계 싱가포르인과 말레이시아인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며 교체되기 시작했다. 또한 S브랜드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이들도 이동했던지라 나를 제외한 모든 엑스팟 직원들의 대거 이탈이 일어났다. (내 경우엔 입사 전부터 리브랜딩에 대해 알고 시작했던지라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너무 유난 떤다는 말이 나올까 봐 수습평가를 할 때까지 참아보기로 했다. 3개월 정도는 금방 갈 테니… 


수습 기간이 끝나갈 무렵, 나와 같은 레벨의 직급임에도 불구하고 스위트 룸에 살던 프랑스인 직원이 마지막으로 그만두면서 그가 살았던 스위트 룸 객실이 공중에 붕 뜨게 되었다. ‘객실 위치도 바로 내 앞방인지라 이사하기도 딱 좋은데, 이 객실로 옮겨달라고 말해볼까’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며칠 후 다음번 엑스팟 직원의 예약이 들어왔다. 타이틀을 확인하고 바로 꼬리를 내렸다. 새로 오는 부총지배인이었다. ‘진정 나는 이 객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가요…, 나가 살 집을 알아봐야 하는 건가요...’ 


수습 평가를 위해 마련된 새로운 총지배인과의 면담시간에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얘기를 꺼내보기로. 그는 처음으로 이 호텔에서 총지배인 타이틀을 달았었는데, 직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자 했는지 사기를 북돋아 주려고 했는지 항상 의욕이 넘쳐 흐르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매우 리즈너블 하고 친절한 사람이기도 했다. 면담을 마치자 역시나 그가 해외생활이 힘들지 않은지, 가족은 그립지 않은지, 호텔 생활에 불편한 것은 없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이 질문을 기다려왔어!’ 그가 진심을 담아 질문을 했던 안 했든 간에 나는 이 질문의 답을 지난 3개월 동안 준비하고 있었다. 마치 구구단을 외우는 것처럼 대답을 했다. 


“해외생활은 힘들지 않아, 아니 오히려 재밌어, 가족이랑은 뭐 20살 때부터 따로 살고 있는지라 이제 무덤덤해, 호텔에서 사는 것도 좋아해서 나는 인하우스로 선택한다고 인사과에도 이미 전했지, 그. 런. 데 나 방 좀 바꾸면 안 될까? 내가 짐이 너무 많아서 말이지… 내 방은 레이아웃도 이상해서 방도 엄청 작아, 거기다 욕조도 없어.”


“뭐, 우리 호텔에 욕조 없는 방이 있다고?” 


“나도 이 방에서 살게 되면서 알았어, 우리 호텔 팩트 시트 나갈 때 전 객실 욕조 있는 걸로 나가는 거 알지?! 그런데 욕실 없는 방이 하나 딱 있어. 그게 내방이야” 


“오, 노!” 


수화기를 들더니 갑자기 객실 부장과 통화를 했다. 그리고 당장 코너 스위트 객실 하나를 블록 잡으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객실을 이동하고 나면 이전 객실은 ‘Last to room sell’로 사용하라고 말했다. 마음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또 한 번 느꼈다. 역시 뭐든지 Speak out!! 말 안 하면 절대 모른다. 입 다물고 있으면 불만이 없는 줄 안다. 


총지배인의 객실을 나서자 바로 앞 사무실에 있던 객실 부장이 나를 불러 세웠다. 언제 객실을 옮길지, 주말이 좋겠느냐고 물었다. 주말까지 기다릴 마음속 여유 따위가 없었다. 


“아니, 오늘 밤에~” 


이전 06화 나의 모든 로망은 호텔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