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일하며 살면서 가장 싫어하는 단어 두 개가 있다.
‘오버 부킹 (Overbooking)’ 그리고 ‘범프 오프(Bump off)’
이 두 단어는 항상 세트로 같이 따라다닌다. 오버부킹은 다들 잘 알다시피 초과예약을 말하는 것이다. 범프 오프는 사전적 의미로는 ‘Kill, Murder’와 같은 무시무시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통상적으로 호텔에서는 오버 부킹으로 인해 남는 객실이 없어지면 확정된 예약을 손님을 보상금(또는 추가 베네핏)을 주고 다른 호텔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호텔에서 살면서 불편한 점 중의 하나가 바로 오버 부킹으로 인해 호텔의 인하우스 직원들이 방을 빼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특히 범프 오프는 호텔 매니지먼트의 의한 결정에 크게 좌지우지되는데, 호텔에 따라 한 번도 범프 오프를 당한 적이 없던 곳도 있었고 밥 먹듯 당한 곳도 있다. 실제로 숙박 중에 객실 안에서 다양한 시설적인 문제가 생기기도 하는데, 여유 방 하나 남김없이 객실을 판매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살고 있는 직원들을 (심할 때는 확정된 예약의 손님까지) 밀어내고 만실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욕심을 부리는 호텔 매니지먼트를 볼 때면 서운하고 안타깝다.
호텔 일을 막 시작했을 때에는 짐도 별로 없고 다른 호텔로 놀러 가는 기분으로 룰루랄라 짐을 싸고 방을 뺐다. 하지만 짐이 점점 늘어나니, 이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라스트 미닛으로 예약이 캔슬되어 오버부킹 상황이 정리되는 경우도 꽤 있어 마지막까지 기다려보지만, 결국 상황이 해결되지 못하면 퇴근 전에 방을 빼라고 서프라이즈 통보를 받는다.
물론 호텔에서 임시 거처를 마련해준다. 객실이 한 두 개 정도 모자란 상황이면 성별이 같은 직원들과 방을 합쳐 스위트 객실이나 빌라로 이사를 간다. (이건 땡큐!) 덕분에 성수기라면 하루에 몇백만 원씩은 할 비치 프런트 빌라에서 생활한 적도 있다. 처음에 이 빌라로 이사를 갔을 때에는 다른 호텔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다 불러 모아 함께 테라스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기도 했다.
객실이 많이 부족한 경우엔 인하우스 직원 모두가 자매 호텔이나 주변 호텔로 며칠간 이동을 하기도 했다. 이 경우가 제일 귀찮은 케이스인데, 갑자기 호텔로 출퇴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출근할 때마다 택시가 잡히지 않아 거의 매일 지각을 해서 혼나기도 했다. 다시 한번 호텔에 살면서 얼마나 편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를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최악의 경우, 인하우스 직원들이 방을 다 뺐는데도 오버부킹 상황이 진정되지 않으면 이제 그 타깃은 손님으로 넘어가게 된다. 호텔에서는 되도록 단체고객과 상용고객, 그리고 로열티 멤버십의 상위 레벨 고객은 건드리지 않는다. 대부분 아고 O, 북킹 OO 등의 온라인 여행사를 통해 예약한 고객들을 타깃으로 잡는다. 그리고 1박 보다는 2박, 3박의 연박을 하는 손님들을 먼저 컨택한다. 이들에게 첫날 하루를 호텔에서 미리 예약해 놓은 다른 호텔에서 숙박을 하게 하고, 다음날 호텔에 돌아왔을 때에는 룸 업그레이드, 조식, 런치나 디너, 클럽 라운지 액세스, F&B크레디트 등 다양한 베네핏과 서비스 등 동의해 준 손님이 납득할만한 보상을 제공한다. 물론 다른 호텔까지의 이동도 호텔에서 책임진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사전에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들이 체크인을 할 때 물어보고 진행된다. 이런 날은 호텔도 당연히 만실이라 정신없이 바쁜데, 컴플레인까지 더해지면서 아주 난장판의 연속이 계속된다. 체크인 카운터 여기저기서 고성방가가 들려오고 몇몇 직원들은 백오피스에 들어가 눈물을 훔친다. 프런트 직원들의 잘못으로 이렇게 된 것도 아닌데 마치 총알받이가 된 기분이다. 만약 내가 여행을 갔는데 이런 상황을 겪는다면 나 같아도 어이가 없어 극대노 할 것 같기는 하다. 화내는 손님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고 프런트 직원들의 마음도 이해된다.
이렇게 범프 오프를 해야 하는 오버 부킹은 왜 되는 것일까? 보통 3가지 이유가 있다.
1) 예약 부서 직원의 실수로 확정된 예약이 시스템에 미입력 되는 경우
2) 객실 세일즈 직원의 실수로 단체 예약 블록이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풀리는 경우
3) 대사관과 같은 정부 기관의 예약을 담당하는 세일즈 직원이 마지막 순간에 델리게이션 그룹을 가지고 오는 경우
1) 번과 2) 번의 경우, 직원들도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으니 이건 용서가 된다. 하지만 3) 번의 경우, 같은 세일즈 직원으로서 용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이 이 그룹을 가지고 오면 호텔의 매니지먼트에서 절대로 ‘노’라고 말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객실이 없더라도 다른 그룹을 불도저처럼 밀어내서라도 델리게이션 그룹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
한 번은 갑자기 일정이 바뀐 미국의 델리게이션이 온다고 해서 호텔이 뒤집어진 적이 있다. 이미 거의 만실인 상황에서 미국 델리게이션 그룹을 받겠다고 체크인 이틀 전 객실 상황이 ‘-80방’이 된 것이다. 호텔의 그룹 블록 팀에서 나에게 전화가 왔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담당하는 패키지 그룹을 4성의 자매 호텔로 바꿀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너 이날 그룹 15방 있잖아, H호텔(자매 호텔)로 옮겨야 할 것 같은데.”
“안돼, 옮기기 너무 늦었어”
“Why?”
“그리고 그거 지금 다운 그레이드 하자는 거잖아, 절대 안 돼 ”
“Why?”
“Why 무슨 why!! 넌 그럼 5성에서 4성으로 바뀌는 데 괜찮을 것 같냐!!!!!!!!”
이때부터는 기싸움의 시작이다. 통보가 아닌 묻는 단계에서는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이니. 이 그룹을 옮김으로써 어떤 후폭풍이 올 것임을 끊임없이 강조해야 한다. ‘확인해 볼게’와 같은 일말의 희망을 주는 문장을 절대 써서는 안 된다. 결국 나의 그룹은 지켜졌지만, 내 그룹보다 요금이 싸고 세력이 약했던 대만 여행사 패키지 그룹이 보상금을 받고 다른 호텔로 옮기게 되었다.
S 호텔 그룹에서 매년 열리는 해외 로드쇼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엑스팟 직원들을 만나서 서로의 범프 오프 경험을 마치 무용담처럼 서로 꺼내놓은 적이 있다. 어떤 이는 허니문 고객을 공항에서 컨택해 상황을 설명하고 공항 로비에서 멱살을 잡힌 적이 있다고 했고, 어떤 이는 본인이 일하는 호텔뿐만 아니라 호텔이 위치한 도시 전체의 호텔이 만실이 되어 다른 도시의 호텔까지 손님을 범프 오프 시킨 적도 있다고 했다. 무릎을 꿇은 직원도 있었고, 손님이 호텔 로비에 드러누운 적도 있다고 했다.
진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후덜덜하다. 내가 이런 상황들에 처해보지 않았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범프 오프는 하는 것도 당하는 것도 영원히 사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