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객실 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욕조다. 최근 새로 생긴 호텔이나 리노베이션 한 호텔 중에는 욕실 안에 욕조가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여유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욕조를 설치하지 않은 곳들이 종종 있다. 이런 호텔을 볼 때마다 너~무~ 아쉽다. 청소하기 귀찮아서 그러는 건지, 수도세를 절약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욕조 설치 비용을 줄이려 한 건지…
욕조 없는 집(욕조 떼어버림)에서 사는 1인으로서, 요즘같이 찜질방도 마음 놓고 가지 못하는 상황에 ‘욕조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래서 요즘 호캉스를 갈 때면 무조건 욕조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먼저 확인을 한다. 호텔 홈페이지를 확인했는데도 욕실의 유무를 잘 알 수가 없으면 전화를 해서라도 꼭 알아낸다. 욕조가 전 객실은 아니지만 객실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경우에는, 예약 단계에서 꼭 욕조 있는 방으로 배정을 해 줄 것을 스페셜 리퀘스트란에 요청한다. 보통 로열티 멤버십이 가지고 있는 호텔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을 하는 경우에는 거의 거절을 당한 적이 거의 없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욕조가 없는 호텔에서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이 말은 즉슨, 호텔에서 살 때도 항상 욕조가 있는 방에서 지냈다는 것이다. 심신이 지쳤을 때마다 42도 정도의 뜨거운 물을 받아놓은 욕조 안에 들어가, 향초를 피우고,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술도 마시면서 손끝이 쪼글쪼글 해질 때까지 한참 동안 욕조에 앉아 있다 나오면 어느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 든다.
호텔 욕조에서 이렇게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면 매번 교토의 작은 집에 있던 다리를 다 뻗을 수도 없었던 욕조가 생각났다. 특히 겨울에 집 안에서 ‘후’하면 입김이 나올 정도로 난방이 잘 되지 않는 집이었는데, 다행히 욕조가 있었다. 퇴근길에 사 온 콘비니 벤토를 뜨거운 물을 받아 놓은 욕조 안에서 쪼그라 앉아 먹었다. 조금은 서럽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춥고 배고픈 시절의 기억은 오래가는 법. 아마도 이 기억은 죽을 때까지 욕조 안에 들어갈 때마다 생각 날 것 같다.
또 하나 항상 같이 떠오르는 욕조에 대한 멋진 기억이 있다. 괌의 호텔 동료들이 호텔 객실을 빌려서 종종 룸 파티를 열었다. 스위트도 아닌 일반 객실 룸 하나에 20명~30명 정도로 많은 이들이 파티에 참석하는데, 새로운 사람이 파티에 등장할 때마다 술이 부족하지 않도록 맥주 번들이나 와인을 한 두병씩 사 가지고 왔다. (괌은 평일엔 새벽 2시까지 밖에 술을 구매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욕실로 들어가서 얼음을 1/3 정도 담아 둔 욕조에 가지고 온 술을 꽂아두는 것이다. 욕조가 술장고로 탈 바뀜 하는 순간이었다. 처음 이 파티에 참석했을 때, 시원한 맥주를 찾다가 욕실에 가서 가지고 와라는 말을 듣고, ‘아니 왜 냉장고 말고 욕실에 가라는 거지’라고 반신반의하며 욕실에 들어가 보고는, 아름답게 펼쳐진 우리의 술장고 욕조를 보고 얼마나 흐뭇했던지.
욕조를 애용하는 1인으로서 배쓰밤도 소중한 아이템이다. 호캉스 준비물 제1호이기도 하다. 특히 버블 타입을 좋아하는데, 욕조에 누워서 귓가에 버블이 깨지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자글 자글 자글’ 버블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가벼운 명상을 즐긴다.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잡생각이 절로 없어진다.
한국에서야 어디서나 쉽게 배쓰밤을 구할 수 있지만, 특히 하노이에서 살 때는 (하노이엔 없는 게 참 많아…) Lush와 같은 배쓰밤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상정이 없어 해외에서 놀러 오는 친구들이 필요한 물건이 없냐고 물어볼 때마다 항상 요청한 것이기도 하다. 나 또한 해외에 놀러 가거나 출장을 갈 때에도 항상 쇼핑리스트에 1번으로 배쓰밤을 올려놓고,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매장에 들려서 몇 개씩 사서 몇 개월 치를 쟁여놓았다. 가격이 좀 사악하긴 하지만.
몇몇 호텔 중에는 욕실의 어메니티로 배쓰 솔트를 준비해 두고 있는 곳들도 있지만, 양이 적어도 너무 적다. 절대 성에 차지 않는다. 멋진 욕조가 있는 호텔이라면 로비의 부티크 숍에서 배쓰밤을 판매하면 얼마나 좋을지에 대해 종종 생각해본다. 몇몇 호텔에서는 호텔과 연결된 쇼핑몰에서 배쓰밤을 판매하는 매장을 본 적은 있지만, 호텔 안에서는 배쓰밤을 판매하고 있는 곳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얼마 전 부산 힐튼 호텔의 지하의 서점이자 복합 문화공간인 ‘이터널 저니’에 갔다가 배쓰밤 코너를 드디어 영접하게 되었다. ‘오! 나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있으셨군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배쓰밤을 킁킁거리며 하나씩 살펴보았는데, 아이고야 가격까지 착하다. 파우더 타입은 약 3000원부터 시작한다. ‘Lush하나 값으로 5개는 사겠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이미 바구니 안에는 배쓰밤이 종류별로 두 개씩 담아져 있다. 이런 부담 없는 가격이라면 누구라도 편하게 즐길 수 있겠다.
특히나 힐튼 부산처럼 멋진 욕조가 있는 호텔에서의 숙박이라면, 평소 입욕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절로 ‘오늘은 욕조에나 한번 들어가 볼까’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맹물보다 라벤더나 유칼립투스처럼 스파 냄새 폴폴 나는 입욕제를 넣어 몸을 담가본다면 그 만족도는 훨씬 상승할 것이다. 다만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으니 주의 요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