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프릴 Apr 11. 2021

온 앤 오프

내 방 안에서 작은여행 떠나기

일하는 곳과 사는 곳이 같아지면서 쉬는 날도 일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매일같이 똑같은 모습이 주위를 둘러싸고 퇴근길은 즐거움을 느끼기에 너무 짧았다. 거기에 쉬는 날은 물론이며 아침이고 밤이고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날아오는 이메일은 나의 소중한 휴무를 망치는 가장 큰 주범이었다. 


호텔리어를 막 시작하였을 때에는 호텔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못해 ‘부재중 전화’라도 남아있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알고, 항상 전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대부분의 전화는 영어를 하지 못하는 손님들과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 호텔 프런트 직원들이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다. 보통 호텔 객실 안의 부족한 물품의 보충이나 객실 키 재발급 등의 간단한 사항들이었지만, 때로는 컴플레인 전화를 돌려받게 되면서 담당부서의 일이 아니지만 그들을 대신해 일을 해결하고 때로는 대신 사과도 해야 했다. 특히나 이런 전화가 쉬는 날에 걸려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의 귀중한 휴무를 통째로 날려버린 케이스도 다분했다. 


자신들의 일을 도와주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감사함을 표시하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어떤 직원들은 손님이 영어를 못해서 그러는 건데 ‘이것은 당연히 부서 상관없이 그 나라의 언어를 하는 직원이 해야 하는 일이다’라고 쉽게 생각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거기다 손님이 영어를 단어라도 조금씩 써가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설명을 해보려고 시도를 하는데도, 이를 귀 기울여 들으려 하지도 않고, 이해하려고 하는 일말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저 “You need Korean?” 이런 식으로 손님의 말을 그리고 노력을 끊어 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나에게 “Guest wants to talk with Korean”이라고 말하며 전화를 돌려버렸다.  


물론 근무 중이라면 어떤 전화든 군말 없이 받아주겠지만, 근무시간 외나 휴무에도 이런 전화가 계속 걸려오면 내가 쉬고 있는 건지 일하고 있는 건지 분간이 서질 않았다. 전화 벨소리만 들어도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아서 결국 나만의 ‘휴무 전화응대 법칙’을 만들었다. 


우선 객실 안 전화기는 모두 코드를 뽑아버렸다. 누구에게 전화가 걸려오는지 알 수가 없어 전화를 가려서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휴대폰이 있으니 객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휴대폰으로 전화가 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휴대폰으로 전화가 온 경우에는 담당 어카운트에서 오는 전화는 전부 받지만 (이들도 주말엔 쉬기 때문에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전화하지 않는다), 호텔에서 오는 전화는 첫 번째, 두 번째 콜은 무시하기로 했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전화할 것을 알기에.


확실히 이 두 개의 법칙을 실천하고 나서부터는 간단한 문의사항 전화와 통역을 요청하는 전화가 대폭 줄어들었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직원들은 구글 번역기도 사용했다가, 바디랭귀지도 사용했다가 어떻게 해서든 커뮤니케이션을 해 나갔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메일이었다. 특히 세일즈로 이동하고 나서부터는 잔업을 아주 밥먹듯이 했다. 평일의 대부분의 시간을 외부 어카운트로 세일즈 콜을 다니면서 보통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밀린 이메일을 하나둘씩 처리하기 시작했기에 오후 6시 퇴근까지 답장을 하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특히 세일즈를 막 시작한 단계에서는 내가 초보라 모르는 것도 많고 일이 아직 숙달되지 않아 그러는 줄 알고 더 열심히 하면 하다 보면 점점 잔업하는 시간이 짧아질 줄 알았는데, 그건 완벽한 나의 착각이었다.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더 일이 늘어나는 것 같은 이 느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답장들. 끝이 없었다. 한 번에 한꺼번에 물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내 성격도 문제였다. 당일에 담당 어카운트에서 받은 이메일을 당일에 답변을 해주지 않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줄 알고 초과근무를 해가면서 전부 답장을 해주었다. 하지만 답장을 바로 해주고 나면 또다시 시작되는 질문들. 그리고 깨달았다. 일은 절대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 그리고 오늘만 날이 아니라는 것을. 


이를 깨닫고 난 후로부터는 폭풍 질문이 예상되는 이메일은 항상 퇴근 5분 전에 보냈다. 그러면 담당 어카운트에서도 알아서 다음날 질문하는 경우도 많았고, 혹시 답장이 바로 오더라도 내 쪽에서 다음날 답장을 하기에도 딱 좋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퇴근을 하고 나서는 절대로! 절대로! 휴대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았다. 눈으로 봐 버리면 쉬면서도 계속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을 할 것을 알기 때문에, 차라리 눈으로 안 보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어느 누구로부터도 방해를 받고 싶지 않다면, 금요일 밤부터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전환해두고 방 안에서 잠수를 타기도 했다. 비행기 모드의 경우 와이파이는 잡히기 때문에 친구나 가족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메신저를 이용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는 주말 동안 근처 해외로 여행을 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회사 휴대폰은 국제전화 로밍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기에, 호텔로부터 오는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하고 정당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이메일은 부재중 자동 응답 시스템으로 전환해두고, 모든 식사는 객실 안에서 다 해결했다. 그러기 위해 금요일 퇴근 후 한국 마트에 들려 주말 동안 소비할 식량을 두둑이 사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객실 방문을 닫고 내 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만끽하기 위해서 평소에 객실 안에서 하지 않는 일을 찾아 하는데, 그중의 하나는 여행 드로잉. 다음번 여행을 위한 쇼핑리스트와 먹방 리스트를 그려보기도 하고, 과거에 여행했던 지역의 여행지도, 그리고 여행 소설의 배경으로 나온 지역을 상상해가며 삽화를 그려보기도 했다. 


또 하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케어하기. 헤어팩, 마스크팩, 바디 스크럽, 손 팩, 발 팩까지 한국에서 공수해 온 뷰티 제품들을 고이 고이 간직해 두었다고 이날 다 푼다. 


이렇게 평소에 하지 않는 일을 찾아서 하다 보면,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어쩔 때는 진짜로 여행을 가는 것보다 더 재충전되는 것 같았다. 마치 작은 여행을 훌쩍 다녀온 기분이다. 


         



이전 09화 욕조와 배쓰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