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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Oct 19. 2023

누군가를 위한 밥상

꼬치와 생선전 그리고 더덕

꼬치가 싫다. 단무지와 맛살 그리고 파와 햄, 버섯이 나란히 이쑤시개에 꽂혀 무지막지한 크기의 플라스틱 락앤락을 가득 채운 꼬치를 볼 때마다 질겁을 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거의 10년을 넘게 명절이나 부모님의 생신같이 가족이 모이는 날엔 꼬치가 빠지지 않고 상에 올랐다. 처음 몇 년은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와 엇비슷해서, 잔칫날 분위기가 나서, 혹은 상차림에 보기 좋아서 등의 이유로 군소리 없이 지나갔으나......


이놈의 꼬치를 상위에 올리려면 디데이 며칠 전부터 장을 봐온 재료를 자르고 평소에 부엌에는 얼씬도 안 하던 아빠까지 동원해서 재료들을 꽂아야 한다. 엄마는 항상 가장 큰 업소용 맛살을 사고 그것에 맞춰 다른 재료들을 준비해서 모조리 꽂아 플라스틱 통을 채웠다. 그러곤 도착하는 자식들에게 따듯하게 대접하려고 바로 구워서 상에 올려놓고 먹기를 기다렸다.


제일 먼저 도착한 가족은 엄마가 구워준 꼬치를 먹게 되는 것이고, 다음 가족의 도착 벨이 울림과 동시에 이미 먹은 자(여자)는 부엌데기가 되어 꼬치에 밀가루를 묻히고 기름에 구워내어 다음 식구를 대접해야 한다. 시가에서 겨우 탈출한 기름 냄새와 연기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제발 이제 그놈의 꼬치 좀 그만하고 향기로운 커피나 마시며 여유롭게 노닥거리자는 제안은 항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명절이나 생신에 먹어야 할 음식은 꼬치만이 아니다. 엄마의 머릿속에는 조카들의 꼬치와 고기 찜, 아이의 더덕무침, 남편의 생선전, 형부의 각종 김치 등 가족이 좋아한다고 언젠가 말했던 음식 리스트가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다. 별다른 기호가 없는 식구는 매번 익숙한 음식을 먹고 또 먹고 15명 식구가 먹고 나면 쏟아지는 산더미 같은 식기를 닦고 또 닦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않은가? 아이들과 남정네들의 기호는 기가 막히게 기억해 내는 엄마는 자기나 딸들의 취향에는 관심이 없다. 본인은 정작 그런 음식을 즐기지도 않는다.


누군가를 위한 음식을 준비하느라 가족이 모이는 며칠 전부터 무리해서 몸을 움직이는 80대 노인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일주일 전부터 김칫거리를 사서 5번은 씻어 담가 적당히 익히고 새벽시장에 가서 신선한 나물과 생선 등을 사서 반찬을 준비한다. 거기다가 꼬치를 한가득 꽂아 먹이고 남은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자식들에게 들려 보내야 직성이 풀리는 그 마음이 불편하고 짜증이 올라왔다.(사실 집으로 돌아가 맥주와 함께 먹는 식은 꼬치가 제일 맛나긴 하다)


물러버린 열무김치, 색이 너무 진하고 질긴 고사리, 시간이 없어 들기름에 굽지 못한 더덕..... 모든 게 맘에 걸리는 엄마는 끝없이 음식에 대한 반응을 살폈다. 음식마다 스토리가 있고 회한이 담겨있으니 다 들어줘야 마땅한데 뭐 하러 그렇게 많이 무리해서 준비하냐는 말만 나왔다.


엄마는 당신이 공들여 준비한 음식을 잘 먹지 않는 식구의 험담을 슬쩍 흘렸고, 고봉으로 쌓아 올린 음식이 남을 때마다 조금씩만 더 먹을 것을 종용했다. 그럴 때마다 요즘 굶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다들 살찌는 게 고민이 세상인데 어쩌고 저쩌고.... 커피나 마시자며 또 커피 타령을 하는 자식 놈을 눈으로 욕하며 다시 할 일을 찾아가 버렸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 꼬치가 빠졌다. 물론 그 자리를 조금 수월한 메밀전병이 차지했지만. 그래도 획기적인 일이었고 내심 기뻤다. 조카도 이제 더 이상 꼬치를 안 먹는다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없는 말을 지어내도 통하지 않던 일이 코로나를 호되게 앓은 직후였는지 차마 꼬치까지 하기는 힘드셨나 보다. 하지만 아마도 다음번 가족 모임에는 그것이 다시 등장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조카의 꼬치 사랑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너무 싫다!




며칠 전 아빠 생신은 자식들의 편의에 맞춰 서울에서 모였다. 아침 일찍 동생의 차를 타고 삐사감의 집에 들러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식사를 하고 바로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조건으로 아빠는 서울행에 동의하셨다. 아침 일찍 도착하시는 부모님께 간단한 생일상이라도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엔 미역국이랑 새로 지은 밥이면 되겠지 싶었지만, 점점 메뉴가 늘어났다.


국물이 많은 서울식 불고기

달큼한 갈치조림

짜지 않은 명란젓

적당히 익은 김치

그리고 머슴밥처럼 많지 않게 깎아 담은 밥.

평소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을 하나씩 떠올리다 보니 아침상 치고는 거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덕션 위 불고기는 국물이 다 졸아 떡갈비처럼 한 덩어리가 되었고 미역국도 국물을 박박 긁어 인색하게 담아야 할 정도로 졸아버렸다. 시간 여유만 있었다면 한소끔 더 끓일 텐데 생각보다 잘 뚫린 도로 탓에 부모님은 들이닥쳤고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갓 지은 밥은 물 조절 실수로 살짝 떡밥이 되었지만, 의외로 냉동고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가 극적으로 발견된 명란젓 한 덩어리가 의외로 구세주가 되어주었다. 이렇게 소수의 상차림에도 이야기로 가득한데 대가족 명절 상차림에는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까!


아, 엄마랑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를 생각한 상차림이란 이런 것이었다. 한 사람을 위한 음식 준비만으로도 충분히 벅찬데 엄마는 그 긴 세월 남의 자식들(사위)과 손주들을 위해 정신없이 바빴다. 냉장고에 묻은 밀가루 손자국을 닫을 새도 없이 한상 가득 누군가를 위한 음식을 준비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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