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 나라의 괴물들

영화 <괴물>

by 초록지붕 B사감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연말의 끝자락이 되었다. 일 년을 보내면서 별일 없이 지루했던 대부분의 날들이 떠올라 쓸쓸해지다가도 무탈하게 한 해를 보냈으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한없이 관대해지다가 한없이 허무해졌다. 느슨하게 가까운 사람들과는 잘도 끈끈한 인사를 나누다가도 매번 질척이던 가족과는 한없이 냉랭한 말을 주고받았다. 감정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온탕냉탕을 오가는 이 시기에 맞이하는 생일이란.


하나도 반갑지가 않았다. 매번 그랬다. 받고 싶은 선물도 없었고 먹고 싶은 음식도 따로 없었다. 겨울 햇살이 가득한 창가에 앉아 늘어지게 게으름을 피우며, 몸을 녹일 따듯한 차를 함께 나누면서 작지만 평온한 순간을 용케도 찾아내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연말이면 어김없이 이런 순간이 찾아왔다. 반백년을 살아낸 사람의 생일, 그래도 생일이니깐, 뭔가 특별한 일은 아니더라도 뭐라도 하자는 생각에 움직였다. 영화를 보고 사촌을 불러내 밥을 먹고 쇼핑몰을 돌아다니면서 화려하게 반짝이는 것들을 눈에 넣으며……


개봉관이 아무리 많아도 보고자 하는 영화는 아주 이른 아침이나 아주 늦은 밤에 한 번씩 상영하고 있었다. 그나마 동네 근처 영화관에서는 볼 수 없어 버스를 타고 대형 쇼핑몰 안에 있는 영화관으로 향했다. 상영관이 무려 20여 개가 되는 이곳은 언제나 사람으로 넘쳐난다. 쇼핑몰을 가득 채운 사람들과 조금은 지나친 난방으로 실내 공기는 탁하고 텁텁했다. 상영관을 찾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또 타고, 사람의 파도를 헤치고 상영관 앞에 도착하니 드디어 한산해졌다.


엄청나게 소박한 상영관을 차지한 영화 <괴물>, 그마저도 군데군데 좌석은 비어있어 팝콘냄새의 공격은 덜했다. 오랫동안 봐서 익숙한, 기막히게 노련한 배우들과 처음 보지만 영화를 충실히 이끌어가는 어린 배우 둘, 그리고 거의 모든 영화가 만족스러운 감독의 연출은 여전했다. 영화는 크게 세 개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미나토의 엄마가 바라보는 사건의 조각, 호리선생이 바라보는 사건의 조각, 소년 둘이 겪는 사건의 실체가 모여 사건의 전모가 완성되었다. 소년들은 진실을 말할 수 없었고 부모나 교사는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아이들이 진실을 감추고 있는 동안 어른들은 오해와 억측으로 그들과 점점 멀어진다.


흙모래가 가득한 수통, 한 짝만 남은 신발, 마구잡이로 자른 머리, 한부모가정의 아이 미나토의 변화는 엄마를 놀라게 한다. 상처 난 귀를 치료하러 병원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그는 여러모로 불안해 보이나 엄마에게 시원하게 털어놓지 않는다. 담임교사에게 학대를 받았다는 정황을 포착한 엄마는 학교에 찾아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자 하지만 학교의 대응은 부모를 더욱더 감정적으로 치닫게 하고 불신하게 만든다.


”교사의 지도에 잘못이 있었던 점을 깊이 뉘우치며 유감의 뜻을 전하며 이후로 이러한 일이 없도록 교원 모두가 학생 지도에 만전을 기하도록 노력할 것을….., 와 같이 아무런 감정 없는 문장을 반복적으로 읊어대는 극도로 무성의한 교장의 태도에 엄마는 폭력적으로 변한다. 엄마는 교장을 비롯해 가해자로 지목된 호리선생에게서 반성과 사과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다. 미나토 엄마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 학교와 교원들은 모두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괴물 그 자체였다.


호리선생은 학급 안에서 폭력적인 상황을 발견하게 되고 그 중심에 미나토가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반 친구 요리가 갇혀있던 화장실 주변에서 배회하던 미나토, 책상과 의자를 던지며 교실 안에서 난동을 부리던 미나토, 미나토가 고양이를 괴롭히는 장면을 목격했다던 학생의 증언 등은 호리선생의 짐작을 확신으로 바꾸고 미나토를 주시하게 만든다. 요리를 괴롭히는 다른 악당(괴물)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호리는 미나토를 지도하는 과정에서 폭력적인 교사라는 오해를 받는다.

교원 한 사람의 잘못으로 원만하고 빠르게만 문제를 해결하려던 교장과 학교관계자들은 진실을 밝히는 데는 관심이 없고 호리선생은 뒤늦게 아이들의 진실에 가까워진다. 호리선생의 시선에서는 세상 어디에나 있는 것 같은 작지만 강력한 악마들(=학교폭력 가해자), 거짓증언으로 선생을 곤란하게 만드는 평범한 다수의 폭력 방관자들, 그리고 가정 내에서 폭력을 일삼는 요리의 아빠가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제3장에서는 미나토와 요리가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미나토는 교실 내 폭력의 희생자인 요리를 돕고 싶지만, 폭력상황을 묵인하는 반아이들의 왜곡된 시선을 이겨낼 정도로 용감하지 않다. 엄마, 교사, 같은 반 친구 등 모두에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면서 오해는 커지고 진실은 영원히 묻힌다. 엄마는 진실을 몰라 불안해하고 호리선생은 가해자로 전락한다.


걸즈바에 출입하는 아빠에 대한 증오로 방화를 저지르는 요리,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거짓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미나토에게서 이기적인 어른의 면모가 보였다면 지나친 걸까. 어린 사람들의 이런 태도가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달라질 수 있을까. 동성을 사랑하는 일이 죄악시되는 사회가, 사회구성원의 편견이 변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감정을 숨겨야만 했던 두 사람은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인간이 겪을 피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게 되지는 않을지. 그래, 모든 잘못은 먼저 세상을 살아간 인간들에게 있다.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은 인간일까, 돼지일까? 이 질문은 돼지가 인간보다 못한 존재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과연 그럴까?

자신의 똥으로 가득한 더러운 우리 안에서 먹고 자면서 한평생을 살다가 인간에게 먹히는 존재, 그들에게 적당한 크기의 장소를 제공하면 인간처럼 변을 보는 곳과 생활하는 곳을 구분하는 모습을 보인다. 고기로 태어난 돼지에게 똥칠을 강요한 것은 인간이다. 이처럼 돼지의 뇌를 가졌다고 비난받는 소수자에게 사회의 대다수가 휘두르는 폭력은 다양할 것이다.


태풍이 지나가고 맑게 갠 하늘 아래에서 미나토와 요리는 이유 없이 웃으며 달려간다. (제작자의 의도는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들은 새로 태어나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있던 세상에는 없던 자유를 누리는 후련한 표정과 시종일관 어둑했던 화면이 밝게 빛나는 것이 지금 세상의 모습은 아니었으므로. 모든 것이 열린 결말의 형태를 취했으니 제작자의 의견을 꼭 따를 필요는 없으리라.





영화 <괴물>을 본 날은, 좋아하던 사람의 죽음으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날이기도 했다. 긴 시간 동안 경찰과 황색언론, 그리고 선정적인 기사를 즐긴 모든 사람들이 괴물처럼 몰려들어 그를 물고 뜯었다. 줄기차게 미확인 사실을 진실로 둔갑시켜 떠들어댔지만 어떤 기사도 눈에 들이지 않고 수사종결을 기다렸다. 그런데 결국 맞이하게 된 결말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씁쓸했다. 모든 일이 사실이라고 해도 마지막에 이런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는 후졌다. 어디선가 괴물력을 발휘하고 있을 우리들. 怪物はだれ?(괴물은 누구? ) 괴물은 어디에나 있었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괴물> 포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