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토토로(隣の トトロ)
벌써 2주가 지났다니… 도서관에서 대출 기한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또 2주가 지났음에 놀란다. 급히 반납 연기를 신청하고 또 한숨 돌린다. 이렇게 연기에 연기를 신청하다 보면 한 달이 훌쩍 지나기도… 사실 옆에 오래 끼고 있는 책의 완독 가능성은 낮다. 아직 다 읽지 못했다는 서운함과 죄책감으로 곁에 두지만 한번 끊긴 흐름이 다시 돌아오기는 쉽지 않더라. 아파트 단지에 딸린 작은 도서관, 지하철 역사에 비치된 도서들. 요즘은 도서관에 찾아가거나 직접 구매하지 않아도 책을 읽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주변에 차고 넘친다.
옛날 사람의 옛날 옛적에는 도서관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관은 고사하고 도서관조차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일본에서는 한국보다는 도서관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삐사감이 살았던 동네가 우연히 그런 차이를 보인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학교 근처에는 구립 도서관이 도보 3분 거리에 있었고 작은 판형의 문고판과 LP, 싱글 CD 등 중고 전문상점도 다수 있었다.
지금처럼 여러 수단으로 반납 기한, 상호대차, 예약 도서 도착을 친절히 알려주는 시스템이 부재했던, 영화 <러브레터>에 나오는 대출 카드를 사용하던, 아직은 아날로그 방식이 지배했던 시절이었다. 휴대전화가 없어 헐벗은 여성 사진으로 도배된 연두색 공중전화박스 안에서 100엔짜리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던 그 시절 사람들은 대출기한을 잘 지켰을까? 분실되는 도서도 꽤 되지 않았을까?
도쿄의 초록색 지하철노선에는 한국인에게 알려진 명소가 많다. 아키하바라의 전자상가, 우에노의 공원, 이케부쿠로, 하라주쿠, 신주쿠 등 이런저런 이유로 유명해진 곳을 서울의 2호선과 같이 순환하는 초록 라인. 그렇게 유명세를 자랑하는 사이에 별 볼 일 없는 지하철역이 하나둘 정도는 끼어있기 마련이다. 삐사감이 처음 일본에서 살던 곳이 바로 그런 곳, 오오츠카역(大塚駅)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 유명한 이케부쿠로를 지나 잠깐 쉬어가는 오오츠카역은 내리거나 타는 사람도 비교적 적고 화려한 건물도 많지 않은 동네였다.
왠지 모르게 자주 배고팠던 가난한 학생은 열심히 요리해서 양이 많은 밥상을 차려 먹었다. 학교와 백엔 샵과 코인세탁방, 청과 가게를 주로 드나들었고 공중목욕탕에 가끔 찾아가는 단조로운 생활이었지만 처음으로 경험하는 외국에서 생활이 만만치는 않았다. 당시 엔화는 지금처럼 싸지 않았고 어떤 메뉴에든 반찬이 함께 제공되어 그것만으로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한국의 밥상과 달리, 일본은 주문한 음식 이외 다른 곁다리들을 기대할 수 없어 박정하게 느껴졌다. 심리적인 공허함 탓인지 야식 탓인지 알 수 없으나 그곳에 있는 동안 가장 동글동글하게 볼살이 올랐다. 생존을 위해 비축해 둬야 한다는 위기감에서였을까?
미련하게 아꼈고 자신에게 인색했다. 소형 전자제품을 폐기물로 내놓는 날에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TV, 선풍기, 전자레인지 등 자취방에 부족한 가전을 들어 옮겼다. 생각보다 춥고 건조했던 기후인 데다 온돌난방이 아니라서 집안은 항상 추웠다. 중고 밍크 이불을 백엔 샵 같은 곳에서 냉큼 사다 코인세탁방에서 빨아 덮었다. 찝찝했다.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고 문을 억지로 닫은 것처럼 작디작은 세탁기에 두꺼운 담요를 구겨 넣고 겨우 뚜껑을 닫아서 돌린 담요가 너무 찝찝했지만, 그것도 금방 익숙해졌다. 그냥 살아졌다.
역을 나서면 으레 자리 잡고 있는 파친코의 요란한 소리와 원색 조명이 번쩍번쩍했다. 홍보용 화장지를 열심히 받아 들면서 주택가로 접어들면 아담한 집과 깨끗한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한적해진 거리 곳곳을 밝히는 편의점이 언제나 반가웠고 늦은 시간이면 큰 봉지에 담아 싸게 팔았던 빵집이 고마웠다. 압도하는 듯한 신식 건물이 눈을 사로잡지 않았지만, 이 마을은 자그마한 놀이터와 도서관이 가까이에 있었다.
시간이 뜰 때마다 아직 미숙했던 일본어 공부를 위해 신문을 읽고 쉬운 책을 찾아보면서 시간을 보내기에 학교 근처 도서관은 좋은 공간이었다. 몇 번 다니다가 대출증을 만들었고 그나마 읽을 수 있는 책을 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웃집 토토로 제1권>. 전권이 아니라서 이야기는 중간에서 뚝 끊겨버린다. 여러 사람이 빌려 본 탓에 겉표지와 속지는 따로 떨어지고 여러 군데 테이프로 수선한 곳이 많았다. 지금은 테이프를 붙인 부분마저도 누렇게 변색되고 접착력도 사라져서 모든 페이지가 낱장으로 뜯어지고 말았지만, 그 세월감마저도 맘에 든다.
고백하자면 절도에 가까운 짓이었다. 아라카와 구립 닛뽀리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반납하지 않고 커다란 이민 가방 한구석에 모르는 척 넣어 한국으로 돌아온 것에는 약간의 고의가 있었다. 도쿄에서 치바로 이사하면서 짐에 섞여 들어간 것을 아무런 연락이나 경고가 없으니 차일피일 미루다 한국까지 모시고 오게 된 것이다.
이렇게 무해하고 귀여운 생명체로 가득한 애니메이션은 없었다. 아무리 기억해 봐도 악당이라고 할만한 인물은 없었으며 갈등 요소라곤 엄마의 병환뿐이었다. 게다가 어느 하나 심각하거나 자극적인 표현 없이 지극히 동화적이고 순수한 믿음으로 가득한 이 영화와 애니를 좋아하는 마음과 이 책을 쓱싹하는 마음 사이에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크게 모순적인 구석이 있었다.
우리는 대체로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지만 우리 모두는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다.
< 신형철, 정확한 사람의 실험 >
삐사감도 복잡하게 나빴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 이후에도 절도는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비열하고 음흉하게 뭉개면서 살고 있다. 가끔 엄청난 대의를 떠들거나 정의로운 척할 때면 낡고 곰팡이 난 만화 한 권을 떠올리며 자신의 실체를 상기시킨다.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 정도는 꿀꺽할 정도의 인간이라는 자각.
이유 없이 많은 생각이 얽혀 오히려 아무 생각도 제대로 못 하는 연말이 되면 영화 <이웃집 토토로>를 본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라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선명해서, 초록이 가득한 화면 속에서 현실감 없이 순수하고 천진한 생명들이 웃고 뛰어다녀서, 그것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보는 순간 다 낡아서 낱장으로 흩어지는 책이 불쑥 떠오르고 아슬아슬하고 묘한 경계선에 있던 그때를, 여전한 지금을 생각한다.
이 글에 사용한 사진은 모두 스튜디오 지브리가 무료로 제공하는 것들이다. 도용이 아님을, 상식선에서 자유롭게 사용하였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