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민트는 향기로 말한다
나태하지만 자발적인 식집사가 된 지 5년여의 세월이 지났다. 예전부터 있던 거대 식물 3개는 자의 반 타의 반 우리 집으로 분양되었고, 거의 방치에 가까운 상태로 베란다에 놓여있었다. 동생이 개업식 기념으로 받은 킹벤자민(정말로 크기가 킹이다), 인삼 판다고무나무, 그리고 이미 초록나라로 돌아간 자스민이 그것이다. 킹과 인삼은 이미 10년을 넘게 우리 가족의 보호수처럼 함께 하면서 베란다를 열면 으레 그 자리에 우뚝 서있다.
이들은 삽목해서 뿌리를 내려 다른 집으로 자손을 퍼뜨렸다. 자스민은 매년 몇 차례씩 보라색과 하얀색 꽃을 피우며 8년 정도를 함께 했지만, 어느날 갑자기 떠나버렸다. 생각해 보면 그때까지 분갈이(흙갈이) 한 번을 해주지 않고 생각나면 기분내키는 대로 물만 주곤 했다. 베란다 청소할 때 옆에 있으니 잎사귀 샤워도 해줄 뿐, 귀하게 대접하지는 않았다. 킹과 인삼은 먼저 곁을 떠난 쟈스민 덕분에 새 흙을 맞이할 수 있었다.
모든 식물은 고유의 향기가 있다. 애플민트는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에 천 원짜리 허브 포트 서너 개와 함께 사들였다. 모두 기가 막히게 좋은 각자의 향을 가지고 있었다. 일찍이 과습이나 일조량 문제로 떠나버린 로즈마리, 페퍼민트와는 달리 애플민트는 이파리를 똑똑 손으로 뜯어 흙 속에 꽂아만 줘도 줄기가 올라오면서 살아났다.
생명력이 강한가 싶지만, 너무 작고 연약하기도 해서 지나치다 잘못 건드리면 뚝 부러졌다. 꺾인 잎을 치워내는 손가락에 남은 신비한 향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자세히 들어다 보면 놀랄 만큼 섬세한 무늬를 가진 애플민트는 쉽게 번식되는 탓에 오히려 자기 화분을 제대로 차지하지 못했다. 이래저래 꺾인 이파리를 킹벤자민 화분에 몇 개, 인삼 고무나무 화분에도 몇 개 꽂아놓았다가 어느새 부쩍 자라난 모습을 발견하면 깜짝 놀랐다.
겨우내 추운 베란다를 피해 실내에 입성한 애플민트는 창문가로 들어오는 햇빛 덕분인지 많이 웃자라있었다. 높이 10센티 남짓한 직사각형 화분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도 못할 정도로 작고 비루했었는데 겨울을 지나면서 화분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 정도로 키가 컸다. 여린 뿌리를 흙 속에 내리고 겨우 잎 서너 개를 붙이고 있던 애들이 열 개는 넘는 이파리를 달고 조금은 당당해졌다. 손바닥으로 살살 문지르니 역시 기막힌 향기가 난다.
쉽게 세를 확장하는 신기한 효자 식물 애플민트를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웃자란 부분을 조심스럽게 자르기 시작했다. 새로운 잎과 줄기가 꽤 많이 나왔지만, 정리하다 보니 약한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손톱만 한 이파리는 숫자만 많을 뿐이었다. 더 이상 놔둘 필요가 없는 부분, 개체를 위해 잘라내야 하는 부분이다. 아름다운 수형을 위해 가지를 잘라내기도 하지만 흙에서 나오는 영양을 나눠 가져가는 곧지도 튼튼하지도 않은 잔가지들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는 씁쓸한 사실.
고무나무 잎사귀를 자르면 하얀 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잘린 잎의 끝단과 잎이 달려있던 줄기 부분 양쪽에서 모두 떨어지는 하얀 방울을 보면 처연한 기분에 휩싸인다. 모든 식물이 눈물 같은 수액을 흘리는 방식으로 확실한 존재감을 뿜어내며 사라지지는 않지만, 작은 줄기 하나를 잘라낼 때마다 주변에 뿜어내는 싱그러운 내음은 절로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게 한다. 아직 살아있는 것을 정리하는 대가이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굵고 곧은 부분을 살리는 일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애플민트를 정리하던 손은 그렇지도 않았다.
하나하나에 애정을 보이며 흙 속에 꽂으려고 나란히 뜯어놓은 이파리는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조금 누렇게 변한 잎, 튼튼하지 않은 애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작은 줄기를 가진 애들로 화분을 채우다 보니 이미 화분은 가득 찼다. 이제 앞만 달랑 남은 애들이 꽂힐 흙이 더 이상 없었다. 조금 망설이기는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낱장으로 떨어져 버린 이파리를 모두 손에 모으고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본다. 애플민트의 신선한 향은 여전했다. 그러고는 휴지통에 넣고 그 애들을 보냈다.
이파리마다 하늘을 향해 줄기를 뻗고 있는 나무 모양이 보인다. 잎 주변은 작은 솜털로 뒤덮여 폭신폭신하고 담요처럼 부드럽다. 손바닥으로 살짝 문지르면 달큼하면서도 시원한 박하향이 퍼진다. 오늘 원터치 휴지통을 누르고 한 번에 버린 이파리는 아직 살아있던 생명이었다. 하지만 잠깐 스치는 감성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죄책감을 남기지는 않았으니까. 그전에 이보다 더 생명력이 남아있던 뿌리식물들도 여럿 보냈으니 무뎌질 수도 있다. 그냥 평균의 인간이 가지는 포악함과 무관심, 무책임 같은 것을 느끼면서 올해 봄에는 절대로 식물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할 뿐이었다.
집안 식물은 차가운 외기를 이겨내며 살아낼 수 있는 식물이 아니다. 억지로 인간 곁으로 끌어들인 식물을 반려할 방법은 자연스럽지 않다. 10년 가까이 곁을 지키는 애플민트도 조금만 방심하면 떠날 것이다. 게다가 작고 귀찮은 존재라는 마음이 커지면 주저없이 휴지통으로 처박는 잔인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
봄이 오면 지천에 꽃망울이 터진다. 산수유가 강렬하지 않은 은은하고 희미한 노란빛으로 삭막한 겨울 풍경을 지우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곧이어 매화가 밤길을 훤히 밝힐 것이다. 초록 잎이 미처 나오기도 전에 봄을 알리는, 따듯한 기운을 알리는 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잔잔한 활기와 기운을 얻을 수 있다.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