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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Jul 19. 2023

내가 힘든 건 너 때문이 아니야, 아닐걸!

  그해 여름도  여느 때와 같이 매미소리와 함께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오래된 동네답게 아름들이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지만, 더위를 피해 나무그늘로 피신하면 한철 매미의 가열찬 울음소리에 고막이 터질듯했다. 동네 아이들은 뜰채를 들고 잡기도 전에 저절로 생명을 다한 매미를 모으며 돌아다녔다.

사시사철 줄무늬 저지에 삼선슬리퍼를 직직 끌고 어디라도 종횡무진하던 중고딩은 그런 아이들에게 잠시 눈길을 떨구다가도 노란 학원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두 손은 종이프린트 몇 장을 들거나 샌드위치, 삼각김밥을 입에 쏟아 넣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몇 년 전 그 여름, 학원시간에 맞춰 식당에 미리 가서 음식주문을 마치고 아이를 기다렸다. 하루종일 앉아있느라 아직 뱃속엔 덜 소화된 음식으로 빵빵한 배가 불편한 아이에게 나중을 생각해 한술 뜰 것을 권했다. 억지로 꾸역꾸역 먹고 학원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 다가가자, 모두가 같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검은 덩어리가 되어 서있었다. 문이 열리자 아이들이 차곡차곡 엘리베이터 안으로 쌓인다. 멍하니 문 앞을 쳐다보며 올라가기 시작하는 아이들은 한마디 말도,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검회색 옷을 입고 같은 방향을 멍하니 쳐다보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네모상자에 몸을 싣고 올라가는 모습이 그날따라 소름 끼쳤다.


  고3시절을 포함한 전후의 시간을 ‘치열한 경쟁’이라고 간단히 갈무리하기엔 부족하다. 그렇다고 적확한 말을 찾은 것도 아니다. 표현하기 힘든 오만가지 감정이 혼재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그때를 자주 미련하게초조했으며 가끔 비열하거나 비겁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분명 아이와 감정적 분리를 추구했지만 매 순간 아이와 함께 했고 아이의 성취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일로 괴로웠다.


  대학입시에는 배려 혹은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특별한 전형이 있다. 기회 혹은 결과의 평등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원하는 대학의 좁디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다양해지자 생각이 많아졌다. 시험 문제 하나, 수행평가 1점에 등급이 갈리고 합불합격이 결정되는 입시판에서 누군가에게 무언가의 이유로 가산점이나 응시기회를 부여한다는 것을 편한 마음으로 용인할 수 없었다. 가까운 지인이 그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더욱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불공정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최근 취업을 준비하는 아이는 주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본인이 지원한 회사 합격자가 올린 후기를 드디어 찾았는데 청각장애인이더라는. 합격후기를 보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검색을 해도 찾지 못하던 합격자를 장애인카페에서 찾았고 우연히도 두 명 모두 장애인이었다며 그러면 안 되는데 조금 속상했다고. 그러면서 많이 부끄러워하며 자책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자신보다 우수한 역량이 있어 선발되었을 텐데 그보다는 장애가 오히려 합격조건이 된 것은 아닌지 문득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는 자신의 자리까지 양보하면서 이타적일 수는 없다며 당연히 그런 생각이 올라올 수 있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그러던 중 최근 미국발 뉴스가 떠올랐다.

https://naver.me/FXrM6F71

소송의 원고 측은 대학입학 전형 시 고려하는  "성격 점수(personal ratings)” 카테고리를 아시아계 학생들에 대한 차별의 근거로 들면서 그 이유는 성격 점수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자신감, 호감도, 용기와 같은 항목에서 점수를 잘 받아야 하는데, 그 기준이 주관적일 뿐 아니라 아시아인들은 대개 이런 특성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불리하다는 지적을 했다. 내가 당사자였다면 또 억울한 감정이 올라왔으려나? 그래서 이 결정은 옳은 것인가? 미국법원의 보수적 결정으로 흑인의 입학률은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


  올해 여름도 매미는 어김없이 운다. 새로 조성된 이 도시에는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귀를 찢어놓을 듯한 기세는 느껴지지 않는다. 멀리서 적당히 잔잔하게 청명한 초록나무가 그려지는 아득한 소리가 문득문득 창을 타고 들려온다. 무채색, 무표정으로 한여름 며칠을 힘을 다해 울던 매미 같던 아이들은 원하는 자리에 무사히 당도했을지. 가끔은 배려 혹은 통합이라는 장치 없이도 조금은 뒤로 물러나는 여유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었는지. 자신도 배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고 살고 있는지. 나도 나에게 묻게 된다.


사진: https://instagram.com/js_vfinde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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