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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Aug 17. 2023

힙한 곳은 어려워

그래도 가끔은 듀란듀란

  2023. 7. 27. 오후 6시

  서울 곳곳을 걸어 다녀보고 싶지만 날씨가 여의치 않다. 도로 위에 서있으면 녹아내릴 것 같은 더위를 피해 겨우 지하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찾아온 이곳은 예전에 한창 음악을 찾아 듣던 기억을 떠오르게 했지만…

이제 그 시절 내가 아니라는 것도 확실히 알게 했다. 가게 안 음악소리는 지나치게 커서 옆 사람과 대화를 방해했고 어둡고 시끄럽고 다소 더웠다. 아는 가수의 친숙한 노래, 라이브무대, 비디오클립으로 이어질 때는 잠시 예전으로 돌아가려고, 이 시간을 즐겨보려고 애를 써보았다. 애써야 했다.


  손님은 대부분 20대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SNS게시물 촬영에 집중하는 이들은 같이 왔지만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부공간과 음식을 찍고 그것을 즐기는 멋진 자신을 기록하느라 손에서 휴대전화를 놓지 못하는… 나도 그 안에서 분발하면서 예스러운 인테리어를 몇 장 담으면서 브루노마스, 오아시스, 토니베넷을 들었다. 잘 모르고 주문한 칵테일은 너무 달았고 테이블은 끈적했다. 습한 여름이니까. 4년여 만에 내한공연한다는 오아시스, 일주일 전에 돌아가신 토니베넷, 그리고 며칠 전 내한한 부르노마스… 아, 요즘 뉴스를 반영한 나름의 선곡이었나!


  듀란듀란 혹은 두란두란은 몇십 년 전에 처음으로 좋아했던 영국 그룹이다. 난 보컬 사이먼 르본을 특히 좋아했다. 지금처럼 아이돌을 만날 매체가 사방에 널려있지 않았던 그 시절, 지방에 몇 안 되는 시립공연장에서는 저화질의 뮤비와 공연영상을 상연했다. 뮤비나 공연실황을 녹화해서 발매한 테이프를 가지고 다니면서 틀어주면 그것이라도 보면서 열광하던 10대들이 있었다. 그 안에 나도 있었다. 비디오자키 김광한 아저씨가 여러 팝스타의 콘서트를 보여주던 비디오 순회공연을 기다리는 것이 나의 가장 적극적인 덕질이었다. 브로마이드를 사들이고 LP나 음악잡지를 사는 것은 언니가 하고 있으니 옆에서 덕을 보면 될 터였다.


https://youtu.be/J5ebkj9x5Ko


  지금 같으면 앨범발매와 동시에 공개되어 스트리밍 조회수가 몇억 뷰를 넘길 정도로 하루종일 눈으로 귀로 충족되는 뮤비, 콘서트실황 등을 녹화된 비디오라도 보면서 만족하던 시절이었다. 직접 보는 것도 아닌데 적잖이 전율하면서 눈물까지 흘렸다니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게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만으로도 크고 벅차게 느낄 줄 알았다.


  더블데크라디오, 컴포넌트오디오, 마이마이, 휴대용 CD플레이어, 아이팟까지 여러 기기를 거쳐가며 음악을 곁에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모으던 길거리 카세트테이프는 몇 번의 이사로 없어지고 LP는 책장 속 책들과 함께 20여 년을 플레이되지 못한 채 꽂혀있다. 기념으로 남긴 아이팟을 억지로 충전해 그 시절 플레이리스트를 들어보니 새록새록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낯설기도 하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한가한 카페 안 음악실에서 커다란 스피커를 증폭하며 들려오던 음악을 즐기던 나는 이제 없다.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도 쉽게 머릿속이 소란해지고 가사가 달린 노래는 집중을 방해한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잘 놀래고 가전이 쉼 없이 돌아가는 소리, 가구나 마룻바닥이 내는 찌그덕 소리,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풀벌레소리까지도 크게 귀에 울려 심란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오늘 상당히 힙한 음악실에서 전력을 다해 끌어올리던 음악스피릿은 돌아오는 길에 무심히 구름을 바라보면서 쉽게 사그라졌다. 하늘을 반쯤은 덮은 거대 구름을 보면서 포근히 잠잠히 조용히 차분히… 가라앉았다.



사진: https://instagram.com/js_vfinde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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