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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Jul 19. 2023

이사를 한다는 건

이사를 한다는 건

식물들을 안전히 피난시키는 일

약한 개체를 과감하고 무자비하게 정리하는 일

조금 안일한 생각으로 식물을 얼게 하는 일


이사를 한다는 건

짐이 빠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오만가지 더러움을 맞이하는 일

누렇게 더께가 앉은 변좌를 용감하게 들추고 욕을 입에 장전하는 일

“*새끼 앉아서 싸지”

변기 속 무수한 실핀을 손을 넣어 꺼내는 일

마룻바닥 상처에 익숙해지는 일


이사를 한다는 건

잘 넣어둔 물건을 하루종일 찾는 일

다음 이사에서는 버릴 물건을 다시 창고에 쌓는 일

여유가 생긴 공간을 새 물건으로 욕심스럽게 채우는 일


그래도..

이사를 한다는 건

내 집에 들어간다는 건

이 동네에 맘껏 정을 주고 찬찬히 바라보는 일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동네길을 가지는 일

100회 필라테스를 주저 없이 등록하는 일

아무 이유 없이 뛰어다니며 친구를 부르고

머리를 휘날리며 씽씽이를 타는 작은 사람들을 실컷 보는 일

전봇대 등불밑에서 이름 불리기 전까지 놀던 날을 떠올리는 일


사진: https://instagram.com/js_vfinder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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