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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Jul 20. 2023

사라진다는 쓸쓸함

  거실창문 밖으로 보이는 횟집에 걸려있는 대방어 현수막이 정신없이 팔락거린다. 창문을 닫고 있어도 현수막이 마구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이 심하게 요동치는 날에는 조금 더 따듯하게 입고 나선다. 한동안 횟집 현수막은 겨울 날씨를 예측하는 가늠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제 아침까지 팔락이던 철 지난 대방어 현수막이 어느새 철거되고 가게터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밤새 모두 실려나가고 휑해진 것이다. 간판도 집기도 가게 앞 노상테이블도 사라지고 밤늦게 술잔을 나누며 목소리가 높아지던 손님도 사라졌다. 쓸쓸함이 불쑥 차올랐다.


  몇 차례 겪은 동생의 폐업도 이런 모습으로 타인에게 보였으리라. 그저 철마다 오징어나 대방어, 전어 현수막이 교체되고, 어쩌다 내다본 노상테이블에 사람들이 보이면 그 가게가 성업 중일 거라고 짐작해 버리는...

그러다가 갑자기 유리창 안으로 텅 빈 공간이 노출되면 잘되는 줄 알았다며 잠시 안타까워하지만, 곧 그 자리에 어떤 가게가 생길지 궁금해하는... **커피가 들어옴 딱이라며 기대하기도 한다. 그렇게도 열심히 바뀌던 현수막에 담긴 가게 주인의 안간힘을, 폐업을 하기 위해 생돈을 들여 삶의 기반이던 가게를 부수고 원상태로 돌릴 때 느끼는 그 어떤 마음도 알지 못한다.


  동생은 지금까지 세 번의 폐업을 겪었다. 두 번째 가게는 업장 크기에 비해 많은 매출액으로 세무조사대상이 될 정도로 성업인 적도 있지만, 그런 호시절은 1~2년 정도였다. 그 시절마저도 나이 많은 부모님이 인력을 보태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어쩌다가 가게에 들러보면 이를 악물고 철판을 닦아내는 엄마와, 조금은 어설픈 자세로 손님을 받고 신발정리를 하는 몸이 느릿한 아빠가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노후를 보내던 집까지 정리하고 근거지를 옮겨가며 자식이 하는 장사에 뛰어든 부모님은,  가게가 안정을 찾으면 언젠가 되돌아가겠다고 말했고 난 그 언젠가가 막연해서 속이 복잡했다. 개업당일 우리 형제는 전단지를 나눠주러 길 위에 섰고 동네 곳곳에 전단지를 붙였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라면 어디든 붙여보겠다며 나름 동분서주했다. 가까운 곳에서 개업했다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동생가게에서 외식을 해서 매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라며 아쉬워했다. 집에서 동생 가게까지는 차로 2시간 반 거리에 있었고 가는 길은 항상 너무 막혀서 좀처럼 갈 수 없었다.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식당 장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아무리 애써도 항상 돌발상황은 생겼다. 아르바이트 수배나 갑자기 뛰어오르는 야채가격, 가격프로모션을 해도 신통치 않은 매출 등… 얼핏 전해 들은 고충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공교롭게 아르바이트를 배치한 날엔 손님이 없었고 없는 날엔 폭주했다. 간헐적 손님 폭주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종일 직원이 있어야 하지만 영세업자에게는 당치 않은 일이다.


  우리 세 식구는 외식할 때 사람수대로 주문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었다. 당시 나는 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기 때문에 고깃집에서는 항상 2인분을 주문했다. 아이는 많이 먹지 않았고 나는 음식 남기는 일을 피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동생이 식당 개업을 하고 나니 식당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는 종종 적게 시켜놓고 이것저것 리필을 원하는 손님이나 , 밤늦게 가게 문 닫을 즈음에 들어와서 오랫동안 앉아있는 손님을 욕했다.




  몇 달 전 미나리를 넘치도록 리필해 주던 버섯칼국수집이 폐업한 것을 알게 되었다. 꽤 큰 업장에 항상 손님이 가득했고 가끔 기다리기도 했던 식당이라 믿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골목을 잘못 찾아왔다고 생각해서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살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이미 맥주집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버섯칼국수집의 넘쳐나던 인심은 폐업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는 빈 가게터를 보거나 내장공사를 다시 하는 현장을 발견하면 기대감보다는 막연하게 아린 감정이 든다. 타인의 사무치게 서글픈 순간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알 수 있겠는가? 그 쓸쓸한 순간들에 대해서…


사진: https://instagram.com/js_vfinde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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