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지붕 B사감 Jul 22. 2023

(잘 모르는) 모로코와 여성주의


이처럼 열 편 남짓 글을 쓰고 나서 예외 없이 글감의 고갈에 직면하는 이유는 삶 혹은 나에 대한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한다. 어쩌면 글감의 빈곤은 존재의 빈곤이고, 존재의 빈곤은 존재의 외면일지 모른다.  <글쓰기의 최전선(개정판), 은유>

  2018년의 마지막 날, 아프리카의 최북단에 있는 모로코라는 낯선 나라에서 겨우 잠이 들었다. 아프리카 대륙을 밟은 것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생경해서 두렵고 불안했다. 오래된 숙소는 현대식 인테리어를 갖춘 5성급 호텔보다 왠지 멋지고 독특한 형식이라 내 눈은 그것들을 탐색하느라 바빴다. 아주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엘리베이터는 서너 명만 타면 무게를 다 채울 것처럼  작았고, 방안 목재 가구들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디자인이었다. 조명은 은은하게 형체를 드러나게 도울뿐 LED조명으로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평소의 광량과는 사뭇 차이가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을 싸잡아 낙후되고 미개한 곳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져서였을까 생각보다 모든 것이 맘에 들었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잘 다듬어지고 꽤나 정돈된 느낌이 든 것은 사방이 다소 어두운 조도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전에 호텔 안에서 벌레가 출몰한다는 경고를 들어서인지 침대에 누울 때는 시트부터 살피게 되었고 천장에서 벌레가 두둑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그날 겨우 든 잠을 어디선가 걸려 온 전화로 깨고 말았다. 여행 전 신청해 둔 교육프로그램에 빈자리가 생겨 등록여부를 확인하는 전화였다. 한국에서 걸려 온 국제전화를 무심결에 받은 나는, 너무나 정중하고 친절한 목소리를 듣고 그러겠노라고 대답하고 급히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국제전화라는 것을 각성한 것이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그 강좌가 무엇이었는지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 결원이 생기면 들어볼까 하고 가볍게 별 뜻 없이 신청한 것이었다. 100시간을 채워야 수료할 수 있는 교육을 신청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리려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교육 참여자는 전원 여성이었다. 남자수강생은 없을 거라 짐작했지만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연이어 수강한 가족폭력상담원 교육에는 남성 사회복지사들이 참석했지만, 역시 먹고사는데 불가결한 교육이라는 인식은 희박해 보였다. 솔직히 의식주 해결에 조금이라도 지장을 느꼈다면 나도 그 교실에 하루종일 앉아 있지는 못했으리라. 성폭력, 가정폭력상담원교육은 굉장한 밀도를 가지고 100시간을 쉼 없이 달려가는 과정이라 피로도가 상당했기 때문에 확고한 목적성 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때 내가 모든 시간을 함께 했던 것은 단순히 몸에 밴 성실성 때문이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교육은 종래 가지고 있던 편견과 고정관념을 끝없이 깨부수는 과정이었다. 다양한 성폭력의 양태와 피해자를 현 제도 안에서 구조하는 방법,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상담기법 등을 배워나갔다. 성평등을 위한 정책과 제도의 부재, 성폭력에 대한 구태의연한 사회인식, 그로 인한 폭력적인 상황의 고착, 잘못을 고치려는 노력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백래시 등등 매시간 분노하고 각성하고 동조하는 마음을 더하게 되었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판례들에 어이가 없었고, 성폭력 근절을 위한 각국의 캠페인을 보면서 전 세계적으로 만연해있는 폭력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강사로 초청된 활동가의 현장경험을 들을 때는 여성의 인권이 수평적 위치에 이르기까지 겪은 활동가들의 고충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성 불평등은 일상적으로 내뱉는 언어(단어)와 행동 속에 이미 자연스럽고 보편타당한 것으로 내재화되어 있었다.


  겨울을 거쳐 초봄까지 진행된 교육을 마치면서 나는 이런 소감을 밝혔던 기억이 있다.

며칠 전에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화장실을 정리하다가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예전 집과 다르게 모든 공간에 LED전등이 달려있어 얼굴에 있는 온갖 잡티가 모두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구옥의 어두운 형광빛에서 바라보던 얼굴과는 사뭇 다른 내 얼굴의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교묘하게 숨기고 덮어두어서 문제를 찾기 어려웠는데, 이제 밝은 빛 아래에서 드러나는 온갖 추함을 감당하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이 교육을 수료하며 느끼는 감정도 이와 같다. 그전에 세상을 대충 안이하고 평화롭게 바라보던 시선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새롭게 인식하는 일이 많아졌고 그것이 바른 시각이라는 확신도 생겼지만 이제 어떻게 다른 생각과 시선들과 부딪쳐야 하는지,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일상 곳곳에 내재된 폭력상황이 너무 잘 보여서 오히려 괴롭다.


  교육을 끝내고 정기적으로 전화상담자원봉사를 하였다. 피해자가 기관에 직접 방문하여 상담을 요청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전화상담으로 피해상황을 전하는 피해자들이 많았다. 상담부스에 앉으면 긴장감과 떨림으로 전화를 기다리는 일조차도 쉽지 않았다. 기본적인 상담 매뉴얼이 있고 선배 상담사가 곁에 있어 도움을 청할 수 있지만, 혹여 실수를 해서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지, 바른 안내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사실 전화로는 긴 상담이 불가하여 간단한 피해사실 확인과 기관으로 방문할 것을 약속하고 연락처를 받아내는 것이 다 인데도 말이다. 사실 전화가 빈번하게 울리지는 않았다. 전화로도 피해사실을 전하기가 꺼려져서인지, 피해로 인식하지 못하는 피해자가 많아서인지 생각보다 많은 전화를 받지 못했다.


  상담자원봉사시간은 동료봉사자와 신변이야기로 채워지다가 가끔 울리는 전화에 바짝 긴장해서 자세를 고쳐 앉기도 하다가 끝나버렸다. 그중 취업 준비청년과 함께 자원봉사를 한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긴 출근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다른 기관의 파트타임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데, 먹고 살 정도의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니어서 아직도 취업준비 중이라는 불안정한 상태였다. 하지만 여성폭력을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었다. 회사의 대우나 조건을 우선으로 생각했다면 또래가 스펙을 쌓을 시간에 자원봉사를 하고 파트타임 계약직 사원임에도 열의를 다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청년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무엇이었을까? 그보다 훨씬 많은 여유를 가진 나는 주춤거리거나 두려워했다. 내가 가진 평온한 생활을 덜어내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만 잔뜩 굴리고 있었다. 상담자원봉사도 이사를 하면서 원거리를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고 어느샌가 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기관에 대한 작은 후원과 아무도 알 수 없는 마음속 응원만이 남았다.


  어느 시점엔 모든 피해자에 동기화되어 울분과 슬픔을 느꼈던 내가 분명 있긴 했다. 하지만 자세히 바라볼수록 불편해지는 감정을 떨치기 위해 은근슬쩍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는 내내 교육내용이 떠오르지 않아 버벅거리게 된다. 100시간을 수료한들 치열하게 행동으로 옮긴 적이 없으니 제대로 남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당사자도 아니면서 피해자를 운운하는 글을 쓰려던 나는 어떤 존재를 오롯이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여성주의를 공부하면서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과 행동에 오래된 편견과 위계,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삼가게 되었다. 그 과정은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도 검열을 거치게 되는 고단한 과정이었고, 주변사람들과의 관계가 서먹해지면서 피곤함이 느껴졌다. 마치 비폭력대화를 처음 배우면서 상당히 과묵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 입에서 나오는 단어, 내 몸이 품어내는 아우라가 자주 폭력적이고 비판적, 부정적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 근신하게 되는 불편함과 같았다.


  나는 계속해서 애매하고 어중간하게 새로운 것을 알아가면서 짧게 분노하고 소극적으로 원조하고 불편함으로부터 도망치면서 살지도 모른다. 단체여행으로 1.5일 머무른 모로코여행처럼 말이다. 하룻밤을 보낸 유니크한 숙소, 지독한 냄새가 가득한 페스로 이어지는 미로 같은 골목길, 새벽사원에서 들리던 경전 읊는 소리. 모로코는 신비하고 편안한 느낌만으로 기억될 뿐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았다. 그 느낌만으로 그 나라를 제대로 보고 알았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여전히 여성주의를 잘 모른 채로 살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 말은 아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