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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Jul 18. 2023

세상의 모든 기도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언젠가 어딘가에 적었던 말. 간절할 때 마음속에서 혼자 또는 누군가에게 중얼거리는 말들, 그게 다 기도란다―기도하는 법을 배운다. 나를 위해서, 또 타자들을 위해서……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아이의 대학입시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위한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여덟 번의 등록금을 내면서 절반 이상을 전염병으로 학교에 가지 않았지만, 고등학교시절과 마찬가지로 시험 기간에는 밤을 새워 공부했다. 방학에도 모두가 말하는 스펙 쌓기를 고민하면서 여유롭지만, 불편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요즘 청춘들에게 진정한 쉼이 있기는 할까?  예전처럼 잠시나마 방탕하게 허세를 부리는 일로 세월을 보내는 청년을 찾기 어렵다.


  대학 공부가 더 이상 순수한 학문 탐구에 있지 않다는 인식이 많지만, 다행히 아이는 선택한 학과 공부를 즐기는 모습이라 보기 좋았다. 하지만 취업은 전혀 다른 차원의 준비가 필요한 일이다. 마지막 학기를 남기고 일주일 내내 수업을 꽉 채워 듣고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 이번 학기 과제였다. 그런데 막상 채용공고가 나오자,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이번 해를 시작으로 몇 년 동안은 취업 빙하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다음 기회에 하겠다는 느긋한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또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운에 매달려 모든 기업 공고에 대비하도록 종용했다. 한 단계를 통과할 때마다 학교 공부와 병행하는 것을 걱정하면서도 합격 메일은 짜릿하기만 했다.


  아이는 재미 삼아 한해 토정비결을 보면서 올해 대운이라며 웃었다. 이름을 날리는 해가 될 것이라고. 좋은 말만 믿으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론 나도 제발 그렇게 되라고 기원했다. 최종면접을 보러 가던 날, 아이는 오늘도 운세가 좋다며 긴장한 얼굴에 애써 웃음을 살짝 보였다. 생전 신지 않던 구두를 겨우 질질 끌고 온몸이 각 잡힌 옷 안에서 굳어 있었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자 온갖 걱정, 불안과 함께 맘 한 귀퉁이가 기대로 차올랐다. 이렇게 졸업 전에 한 방에 끝내 버리면...  행복한 상상으로 가슴이 벅차고 세상 곳곳이 모두 희망으로 가득했다.


  면접을 끝내고 돌아온 아이는 홀가분하게 저녁을 먹고, 나는 아이가 받아온 ‘웰컴키트’를 찍어 가족 대화방에 올렸다. 립밤, 핸드 로션 등 잔잔한 물건들과 왕복 교통비로 채워진 키트 사진을 올린 것이 사단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 삼 주 동안 결과를 묻는 가족에게 시달려야 했다. 아이는 우리 가족 중에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로 모든 대소사를 제일 먼저 치렀다. 조부모나 이모, 삼촌이 모두 주시하고 축하할 일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나는 너무나 난처했다. 내가 소식을 알린 의도와 달리 섣불리 결과를 낙관하는 소리에 결국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며 와락 화를 쏟아냈다. 결과가 나오자, 기대한 만큼 실망했고 작은 절망을 느꼈다.


  아이는 일기 쓰기로 마음을 달래고 나는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결과를 낙관하는 것을 김칫국 마시는 일이라고 장난 삼아 말해왔지만, 사실 나는 몇 주간 달뜬 상태에서 평소보다 50퍼센트 정도 더 낙관적인 사람이었고 말투도 조금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아이는 결과가 나온 당일 혼자 삭히더니 취업 지원팀 선생님이 쓴 위로의 글로 떨쳐내는 모습이었다. 하루만 쉬고 다시 시작하자는 선생님 글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위로는 하겠지만 하루밖에 쉼을 줄 수 없는 게 현실인가 보다. 하지만 선생님의 학생들을 향한 기도의 마음은 절절해서 감동적이었다.   



집안에 신나는 일도 없고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런 거지, 다른 뜻은 없어.

   엄마에게 제일 먼저 알리자 풀 죽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몇 주 동안 이미 내뱉은 말과 행동을 후회하며 다시는 절대로 그렇게 경솔한 짓은 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말을 들으며, 내가 성당에 가거나 절에 갈 때마다 아픈 조카와 가족의 안녕을 빌 때 품었던 마음이 떠올랐다. 촛불을 밝히고 누구 하나 빠뜨리지 않고 마음속으로 호명하며 합장했던 간절함을. 내가 그런 것처럼 우리 가족 모두가 몇 주 동안 숨 쉬는 것처럼 응원하고 밥 먹듯이 기도하는 마음이었던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사진: https://instagram.com/js_vfinder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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